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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그늘 Apr 04. 2023

음식여행

살다 보면 밥을 굶을 수도 있다

살다 보면 밥을 굶을 수도 있다.

밥 한 공기로 인해 서러움에 눈물을 흘릴 수도 있다.

요즘은 밥이 있어도 군살을 뺀다고 밥 대신 야채를 먹기도 하지만, 밥도 없고 돈도 없어 굶어야 할 때는 비참해진다.      

오늘도 갓 지은 밥에 감자 짜글이, 연근조림, 멸치볶음으로 상을 차렸다.

식구들이 출근하고 나니 밥이 남았다. 세 공기 정도 밥을 해도 밥이 남는다. 밥을 많이 먹지 않는 것도 있지만 식구들이 아침만 먹고 출근해 밖에서 식사하다 보니 밥이 남을 수밖에 없다. 내가 먹는다고 해도 다 먹을 수는 없으니 찬밥은 냉장고 신세다.     

 

내가 초등학교 사 학년 때 아버지와 다섯 살 어린 남동생이랑 셋이 살았었다.

아버지는 오징어 잡는 선원 일을 하셨다. 1970년대 묵호는 오징어잡이를 해서 먹고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버지는 배를 타러 가시기 전에 정부미를 됫박으로 사서 두고 약간의 돈을 주시곤 하셨다. 바다로 나가시면 며칠씩 집에 못 오시니까 그동안 밥해 먹으라 하시고 떠나셨다. 동생과 나는 주신 돈으로 군것질하기도 하고 정부미 쌀로 밥을 해서 김치와 먹기도 했다.  

    

일주일이면 돌아오시던 아버지가 오시지 않았다. 남동생과 나는 항구에 가서 아버지가 오시길 기다렸다. 철없는 동생은 “누나 아버지 언제 와?”하고 자꾸 물어 왔지만 나도 모르는 일이라 대답할 수 없었다. 배를 기다리는 다른 사람들도 있었는데 울진 쪽으로 오징어잡이 갔던 배가 고장 나서 돌아오지 못한다고 했다. 배 타러 가시면서 주셨던 돈은 다 썼고 쌀도 다 떨어졌다. 아버지는 오시지 않고 아는 사람도 없고 그저 막막했다.   

   

동네 부잣집에서 식모 일을 하는 언니에게 갔다. 마침 점심상을 치우느라 부엌에 있었다. 언니가 상을 치우며 상위에 있던 남은 반찬이며 밥을 다 버리고 있었다. 내가 놀란 눈으로 쳐다보자 언니는 웃으며 “우리는 반찬 남으면 다 버려”라고 하며 설거지했다. 아깝다. 나는 밥도 못 먹었는데 빨갛게 양념된 깍두기를 버리던 그 손이 지금도 생각난다. 그 손을 잡고 언니 버리지 마! 하고 싶었다. 하지만 쌀 떨어졌다 말도 못 하고 돌아서 나왔다.      


고민 끝에 망설이다가 쌀파는 집으로 갔다.

“쌀 한 됫박만 외상으로 주시면 안 될까요? 아버지 돌아오시면 돈 드릴게요.”

어렵게 말을 꺼냈다.

“내가 널 언제 봤다고 쌀을 외상으로 주니.”

쌀쌀맞게 말씀하시며 바가지에 있던 물을 가게 앞에 홱 뿌렸다. 떨어지는 물처럼 내 마음도 툭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자존심이 산산조각 나는 것 같았다. 부끄러움에 빨갛게 된 얼굴을 떨구고 빠른 걸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초겨울 날씨에 불도 지피지 않은 방바닥은 차가 왔다. 두꺼운 이불을 펴놓고 누었다. 배가 점점 고파 왔지만 초등학교 4학년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엄마가 돈 많이 벌어서 날 찾으러 올 거야 하는 상상도 했다. 남동생이랑 끝말잇기도 하고 놀았지만 배고픈 건 참기 힘들었다.      


쌀독엔 한 주먹도 안 되는 쌀이 있어서 냄비에 물을 많이 붓고 끓였다.

서너 숟갈밖에 안 되는 죽을 만들어 남동생에게 먹으라 했다.

“누나 누나도 좀 먹어”

“아니야 너 먹어 누나 배불러 이거 봐 누나 배 많이 부르잖아” 하면서 물로 가득 찬 배를 두드렸다.

뱃속에서 출렁출렁 소리가 났다.

“누나 뱃속에서 파도치는 소리가 난다.” 동생은 깔깔대며 웃었다. 나도 피식 웃고 말았다.

아버지는 그다음 날 돌아오셨다. 풍랑이 심해서 배가 고장 났다고 했다.

수리해서 오느라 늦었다고 하시며 쌀과 임연수 말린 것을 가지고 오셨다.

그날 저녁 아버지가 지어주신 쌀밥과 임연수 구이는 꿀맛이었다. 동생과 나는 밥을 먹으며 서로 쳐다보고 웃었다. “누나 진짜 맛있다 그지?”     


어릴 적 굶은 적이 있어서인지 음식을 버리지 못한다. 혹자는 억지로 먹는 것보다 버리는 것이 당신의 건강을 위해서 더 낫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도 지구 어딘가에 식량이 모자라 밥을 굶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멀쩡한 음식을 버리는 것은 죄를 짓는 느낌이다. 가능하면 먹을 만큼 요리하고 음식을 남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많은 음식은 과식을 부르고 살을 찌우고 성인병을 생기게 한다. 많이 먹는 것보다 적게 먹는 것이 오히려 탈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친정아버지는 평생 밥을 한 공기 안 되게 드시고 반찬도 많이 드시지 않으셨다.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두어 점 더 드실 뿐 결코 과식하시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건강하게 89세까지 사셨다.


살다 보면 밥을 굶을 때도 있다.

가끔 굶는 것이 과식하는 것보다 건강에 좋다고 하니 가볍게 먹고 건강하게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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