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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그늘 Aug 15. 2023

행복을 부르는 잠옷

동화

학교가 끝났지만, 은별은 집으로 갈 수 없었어요. 

엄마는 어디로 가고 은별 혼자 어두워지는 놀이터에 왔을까요? 

어젯밤 집을 나간 엄마를 찾아 학교가 끝나고, 엄마가 일하시던 곳에도 가봤지만, 엄마의 모습은 볼 수 없었어요. 저녁도 못 먹은 은별은 주머니 속에서 쿠키를 꺼내보았어요. 선생님이 은별이 이번 시험에서 백 점 맞았다고 선물로 주신 거예요. 배고픈 은별은 먹고 싶어 쿠키를 꺼내었다가 다시 주머니 속에 넣었어요. 

“엄마에게 자랑하고 나눠 먹어야지.”     

어젯밤에 아빠가 왔었어요. 엄마에게 돈을 달라고 했어요. 

돈이 없다고 하자 아빠는 그릇을 던지고 엄마를 때리며, 오늘 받은 일당이라도 내놓으라고 했어요. 

엄마는 일주일 동안 식당에서 일한 돈을 빼앗기고 눈에 멍이 시퍼렇게 든 채로 집을 나갔어요.      

‘엄마는 어디 갔을까? 놀이터에서 놀다 보면 엄마가 찾으러 올 거야. 엄마는 내가 집 아니면 놀이터에 있다는 것을 아니까.’


은별이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니 갑자기 눈이 오고 있었어요.

눈길에 작은 고양이 발자국이 보여서 발자국을 조심스럽게 따라가 보았어요. 

아직 초가을인데 눈이라니 얇은 옷을 입고 나온 은별은 추워서 몸을 움츠렸어요.      

골목을 따라 들어가 모퉁이를 돌자, 작은 집이 보였어요. 

마치 인형의 집처럼 예쁘고 긴 굴뚝이 있고 빨강, 노랑, 하얀색 꽃이 핀 화분들이 집안 유리창 안에 있었어요. 커다란 유리창에 달린 하얀 레이스 커튼이 하늘하늘 춤추는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어요. 너무 따뜻하고 포근해 보였어요.

마치 은별을 기다린 듯이 고양이가 그 앞에 앉아 있었어요. 

“어머 예뻐라.” 

쫑긋한 귀는 인절미 색에 검은 꼬리. 

몸은 하얀 턱시도 입은 듯 깔끔한 고양이였어요. 

집 안으로 들어가자고 하는 듯 은별을 보자 일어났어요. 

유리창 안 화분 너머에는 난로가 있고 할머니들이 앉아서 뭔가를 만들고 있었어요. 

은별은 몹시 추워서 들어가고 싶었지만, 슬쩍 보고 몸을 움츠리며 돌아섰어요. 함부로 남의 집을 기웃거리는 것은 예의 없는 일이라 생각했어요.

“야옹야옹 어디가?” 

소리가 들렸어요. 

“고양이가 말도 하나?” 

뒤돌아보니 하얀 털모자를 쓴 할머니가 들어오라고 손짓하고 있었어요. 

“괜찮습니다. 안녕히 계셔요.” 

은별은 정중하게 사양했어요. 

“아니야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면 실례란다. 어서 들어오렴.”

은별은 너무 춥고 배고파서 마음과는 달리 열린 문으로 얼른 들어갔어요. 

방안은 훈훈하고 따뜻했어요. 

할머니들은 천으로 무엇인가 만들고 있다가 반갑게 웃어주었어요. 

“배고파.” 

노란 털모자를 쓴 할머니가 말했어요. 

“금방 밥 먹고 또 먹는 타령이야.” 

파란 털모자를 쓴 할머니가 구박했어요. 

은별도 배가 고팠어요. 아까 학교에서 받은 쿠키가 생각이 났어요. 하지만 쿠키 하나로 다섯? 아니 고양이까지 여섯, 어떻게 나눠 먹지? 생각하면서 쿠키를 꺼낼까 말까 고민했어요.

‘엄마에게 자랑하고 먹으려고 했는데…’     

“배고파요.” 

노란 털모자를 쓴 할머니가 투덜거렸어요. 은별은 그 소리에 얼른 주머니에서 쿠키를 꺼내 할머니에게 드렸어요. 

“어머 맛있는 쿠키네 같이 먹어도 될까?”

파란 털모자를 쓴 할머니가 반가워하며 말하셨어요.

“작지만 나눠 먹어요.”

은별이 수줍은 듯 말했어요.

파란 털모자를 쓴 할머니는 커다란 집게로 쿠키를 잡고 난로 위에 올린 뒤 쿠키를 앞뒤로 굽기 시작했어요. 쿠키는 구수한 냄새를 풍기면서 점점 커졌어요.

“어머 쿠키가 커지고 있어요” 

은별이 놀라자, 할머니들이 웃으면서 은별의 말을 따라 했어요. 

“쿠키가 커지고 있어요!”

은별 손바닥 크기의 쿠키가 커다란 접시 모양이 되었어요. 빨강 털모자를 쓴 할머니는 커다란 도마 위에 쿠키를 놓고 살강 살강 부서지지 않게 빵칼로 자른 뒤 은별과 고양이에게 나눠주고 할머니들도 사이좋게 나눠 드셨어요. 

“맛있다.” 

노란 털모자 할머니가 행복한 표정으로 말했어요.

“맛있는 것을 먹었으니, 선물을 줘야지” 

할머니는 연노랑 색 원피스 모양의 잠옷을 선물로 주었어요.

“나도 줄 거야.” 

하얀 털모자를 쓴 할머니가 잠옷의 목 부분과 밑단에 하얀 레이스를 붙여주었어요. 

“나도 나도!” 

빨강 꽃을 치마에 예쁘게 달아주자, 봄날의 장미처럼 잠옷이 예뻐졌어요. 황금빛 모자를 쓴 할머니가 황금별 모양의 브로치를 하얀 레이스 가운데 옷깃에 달아주었어요.

“이 잠옷을 입고 자면 달콤하고 행복한 꿈을 꾸게 될 거야. 그리고 근심은 사라지고 용기도 생기는 행복한 잠옷이란다”

은별의 가슴에 잠옷을 안겨주었어요. 너무나 기쁘고 행복했어요.

“감사합니다. 잘 입을게요.”

은별은 쿠키 한 조각을 먹었지만, 많은 음식을 먹은 듯 배가 불렀어요.  

   


“은별아, 은별이 어디 있니?” 

어디선가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엄마? 엄마?” 

벌떡 일어나려다 머리를 쿵 하고 부딪쳤어요. 둥그런 터널 같은 미끄럼틀 속에서 잠이 들었나 봐요. 

밖으로 나오니 어두워졌고 눈이 왔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노란 달빛이었어요. 

엄마가 놀이터를 뛰어 들어와 은별을 꼭 안아 주었어요. 

“추운데 왜 여기 있어.” 

“엄마 괜찮아?” 

“응 엄마는 괜찮아” 

“어 잠옷? 내 잠옷 어디 있지?” 

“잠옷? 엄마가 잠옷 사 온 걸 어떻게 알았어?” 

‘꿈이었나? 용기를 부르는 행복한 잠옷을 받았었는데….’

엄마가 꺼내 주는 잠옷을 보니 꿈속에서 보았던 잠옷과 똑같은 잠옷을 엄마가 사 오셨어요.

“엄마 잠옷 너무 예뻐. 오늘 나 학교에서 시험 백 점 받았어. 선생님이 쿠키도 선물로 주셨는데…” 

“그래, 어서 집에 가자.”

신기하게도 주머니 속에 쿠키가 그대로 있었어요.

“이것 봐 쿠키야! 엄마 같이 먹자.”

은별은 꿈을 꾸었나 생각하니 신기했어요.     

아빠가 술 먹고 행패를 부리고 돈을 가지고 나가면 며칠씩 집에 들어오지 않지만, 돈이 필요하면 어제처럼 집에 들어와서 엄마에게 돈을 빼앗아 가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겁이 난 은별은 방 안에 숨어 우는 일밖에 할 수 없었어요. 엄마를 도와주고 싶지만, 아빠가 너무 무서웠어요.

학교에 가도 아이들은 같이 놀자고 하면서 힘없는 은별을 밀치거나 바보 같다고 놀리기도 해서 학교에 가는 것도 싫었어요. 지난번엔 반 아이가 내 목도리를 빌려 달라고 갑자기 잡아당겨서 엎어진 적도 있었어요. 넘어져 바닥에 입을 부딪치면서 앞니가 다치고 잇몸이 찢어져서 피가 났었어요. 힘없고 용기도 없는 은별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울었어요.     

엄마는 은별 손을 꼭 쥔 채 서둘러 집으로 갔습니다.

“은별아, 우리 딴 집에 가서 살자, 거긴 아빠가 찾아오지 못할 거야. 은별이도 아빠 때문에 아주 힘들었지? 엄마가 살 곳을 찾아보느라 많이 늦었어. 아빠가 오기 전에 어서 짐 싸서 나가자.”

책가방에 엄마가 사준 잠옷과 책, 노트, 필통을 넣었어요.

‘뭘 더 넣어야 할까?’

“은별아 너에게 꼭 필요한 것만 가져가자”     

쉼터에서 작은방을 하나 주었어요. 임시 안전 숙소라서 오래 있을 수가 없대요. 엄마는 그곳에서 일하시는 분께 나를 맡겨둔 채 일을 하러 가셨어요. 하루 종일 울면서 방구석에 있었어요. 엄마가 다시 오지 않을까 봐 무서웠어요. 

“엄마가 나를 버리고 간 건 아니겠지.”     

깜깜하고 늦은 밤이 되자 엄마가 왔어요. 

돈을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고 오래 일을 하셨대요. 

그래도 엄마가 와서 너무나 다행이에요. 

엄마가 사준 잠옷을 입고 엄마 품에 안겨 오랜만에 단잠을 잤어요. 


자고 나니 기분도 상쾌하고 행복했어요. 엄마는 아침을 먹고 다시 일을 하러 가셨어요.      

“이제 좀 괜찮니? 언니랑 같이 놀이하러 갈까?” 

어제 울고 있던 나를 달래주던 언니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의사 선생님이 계신 방으로 갔어요. 

“선생님이랑 그림 그리기 할까?”

“네”

“그리고 싶은 거 마음대로 그려봐”

은별은 무엇을 그릴까 곰곰 생각하다가 아빠가 엄마를 때릴 때 생각이 났어요. 엄마는 울고 계셨어요. 입에서 피가 났죠. 아빠에게 맞아서 이가 깨진 날이에요.

그 생각을 하면서 그림을 그리니까 눈물이 자꾸 났어요. 선생님이 휴지를 주시며 

“괜찮아 울고 싶으면 울어도 돼. 그림도 나중에 다시 그려도 돼.” 

하고 달래 주셨어요.

“아빠가 미워요. 하지만 아빠가 엄마를 때리는 건 나 때문일지도 몰라요. 나 때문에 화가 나서 술을 드시나 봐요” 

“그래 아빠가 미울 수도 있지 하지만 네 잘못이 아니란다. 괜찮아 그건 엄마 아빠의 일이야 오늘은 그만할까? 낼 다시 다른 걸 그려보자. “ 

친절하신 선생님은 과자를 주시면서 달래주었어요.

”나가서 친구들이랑 놀아 낼 또 만나자. “ 

다정하게 등을 두드려 주셨어요. 

밖으로 나가서 그네를 탔어요. 엄마가 빨리 오면 좋겠어요. 

밤늦게 엄마가 돌아와서 가방에 옷을 넣었어요 

”엄마 왜 또 어디가? “ 

”여긴 오래 있을 수 없어. “

 엄마는 코를 훌쩍이며 서둘렀어요.

무슨 일이 있었나 봐요. 혹시 아빠가 엄마 일하는 곳으로 찾아온 걸까요? 

예전에도 그런 일이 있어서 엄마가 일하는 곳을 자꾸 옮겨 다녔었는데…
 


갈 곳이 없는 엄마와 은별은 집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엄마와 저녁을 먹고 잠옷을 입은 뒤 엄마 품에 꼭 안겨 잠이 들었어요.

한밤중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들렸어요. 

”어디 갔었어! “

“은별이도 많이 자랐는데 이제 정신 차리고 일을 해야지. 언제까지 술에 취해 잃어버린 돈만 생각하고 있어. 이제 잊어버려요. 이런다고 주식으로 없어진 다시 돈이 생기는 건 아니잖아요. 술도 그만 마시고 열심히 일해서 은별이랑 재미있게 살아요. 예전엔 이렇게 술 마시고 때리고 부수는 건 안 했잖아요.” 

엄마가 울면서 아빠를 설득하고 있었어요.     

예전에 아빠는 일이 끝나면 엄마와 은별이가 좋아하는 통닭을 사 들고 일찍 들어왔어요. 은별이와 놀아주기도 하고 공부하는 것도 봐주곤 했었는데 언제부터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어요. 주식에 투자하다 주식값이 떨어져 투자했던 돈을 잃었고 그 돈을 찾아야 한다며 매일 일도 하지 않고 돈을 빌려서 주식에 투자했어요. 잃어버린 돈은 오히려 더 많은 빚으로 남았어요.

아빠가 예전처럼 다시 다정한 아빠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우리 아빠를 예전처럼 착한 아빠로 돌려주세요. 엄마를 때리지 않게 해 주세요.’ 

은별은 엄마, 아빠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했어요. 

하지만 아빠의 폭력은 멈추지 않고 엄마의 슬픈 울음소리만 들려왔어요.

숨어서 울기만 하던 은별은 엄마의 모습에 용기를 내었어요. 급한 마음에 신도 안 신고 거리로 달려 나갔어요.

“우리 엄마 도와주세요. 아빠가 엄마를 때리고 있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사람들은 서둘러 은별을 지나쳐 갔어요. 이상한 아이 보듯 피해 갔어요.

은별은 엄마를 지키기 위해 경찰서로 달려갔어요.

”우리 엄마 좀 도와주세요. 아빠가 엄마를 때리고 있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

은별은 눈물을 흘리며 경찰관 아저씨에게 말했어요.

찢어진 옷에 맨발로 달려온 은별을 안아서 의자에 앉게 한 뒤 집 주소를 물어보았어요. 구급차를 부르고 출동했어요.     

아빠는 가정폭력으로 감옥에 들어갔어요.

경찰관 아저씨가 은별의 용기를 칭찬해 주셨어요.

”대단하구나! 무서웠을 텐데 신고할 생각을 하다니. 착하구나! 엄마 잘 도와 드리렴. “

할머니들의 환한 미소와 함께”다 괜찮아질 거야 “ 하시던 이야기가 생각났어요.

밝아오는 아침 해을 바라보며 은별은 다짐했어요.

”그래 용기를 내자! 앞으로 모든 일이 다 괜찮아질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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