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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현경 Aug 31. 2023

오늘은 누구와 산책할까?

엽편소설

운동화 끈은 매고 현경 씨는 아파트 현관을 가볍게 뛰어 내려왔다. 그동안 비 온다고, 덥다고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아침 운동을 차일피일 미뤘더니 몸무게도 늘고 혈압도 다시 올라가고 있었다. 어제도 정기검진 갔다가 의사 선생님에게 운동과 식이요법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듣고 마음을 다잡았다. 다행히 오늘은 날이 맑다. 가볍게 산책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아침쌀을 씻어 놓고 공원을 향해 나왔다. 뛰어가고 있는데 앞에 누군가 걸어가고 있었다.     

"민선 씨 오랜만이야. 매일 피곤하다고 하더니 웬일로 아침에 산책을 나왔네. 얼굴이 조금 부은 것 같아.”

“네 안녕하세요?  날이 좀 맑아져서 나와봤어요”

“그래 장마 때라 계속 비가 와서 산책하기 어려웠는데 해가 많이 길어졌네, 5시 30분인데 벌써 동이 트네.”

“그러게요. 별일 없으시죠?”

“별일이야 없지 근데 요즘 들어 이상한 일이 자꾸 생기네”

“그게 뭔데요?”

“며칠 비가 많이 왔잖아 비 오고 어쩌다 개어도 바람도 안 불고. 빨래 마르라고 창문 열어놔도 바람도 안 들어오고, 눅눅해서 거실 창문을 좀 열어 놨었지. 근데 거실 베란다 창틀에 웬 남자 티셔츠가 그것도 다 낡아서 늘어나고 해진 옷이 옷걸이에 걸린 채로 걸려 있더라고 누가 입던 건지 좀 찝찝했지만 어쩌겠어, 우리 집 옷도 아닌데 그래서 관리실에 갖다 줬어”

“뭐 윗집 빨래가 날아와 걸린 거겠죠. 그게 뭐 그리 이상해요?”

“그것만이면 내가 말을 안 하지, 지난번에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던 적 있었잖아”

“그랬나요?”

“그래 자기는 밖에 잘 안 나오니까 몰랐나 보다. 따뜻하다가 갑자기 찬바람이 들어와서 거실 창을 닫다 보니 베란다 창틀 아래쪽에 양미리 한 두름이 걸려 있는 거야”

“양미리요?”

“응 양미리라고 자기는 바닷가에 안 살아서 잘 모르겠구나! 나는 어릴 때 바닷가에 자라서 양미리 말린 거 조려서 많이 먹었었지. 꽁치같이 생겼는데 무 넣고 맵게 조리면 맛있어 기름기가 없어서 좀 텁텁하긴 하지만 우리 어릴 때 양미리 조림이 밥상에 올라오면 서로 먹겠다고 했던 생선인데, 요즘은 보기 힘들더라. 아무튼 그 양미리 한 두름이 걸려 있는 거야 비닐 끈으로 얌전하게 엮어서 말리던 건가 봐."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양미리를 들고 관리사무소로 갔지! 양미리가 위에서 떨어졌나? 요즘도 아파트 밖에 생선을 내놓고 말리는 사람이 있는 건가? 양미리의 출현이 좀 이상하긴 했지만 관리 사무소에 가져가서 주인 찾는 방송이라도 해 달라고 했어. 그랬더니 그런 일로 방송할 수는 없다고 하는 거야. 꼭 필요한 전달 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래. 양미리를 잃어버린 주인은 얼마나 애가 타겠어? 요즘 흔치 않은 생선인데 혹시 누구네 할아버지가 어릴 때 먹었던 양미리 조림을 먹고 싶다고 타령하셨겠지. 할 수 없이 바닷가로 출장 갔다 오던 아들이 한 두름 사가지고 왔으나, 냄새나는 양미리를 방에서 말릴 수는 없었겠지. 비닐 끈으로 정성스럽게 엮어 밖에 널어놨는데 어느 날 보니 없어졌다. 집집마다 물어볼 수도 없고 난감하지 않겠어요?라고 열변을 토했는데 관리사무소에서는 묵묵부답이야. 개인적인 일로 방송할 수 없다고 하는 거야. 최근에 불이 나면 울리는 사이렌이 오작동해서 사과방송을 여러 차례 한 뒤라 시끄럽다는 민원으로 골머리 아프다고 절대 안 된다며 현관에 놔두면 주인이 찾아가지 않겠느냐고라고 다른 제안을 하더라고. 그래서 얼른 찾아가라고 사람들이 드나드는 1층 현관 앞 계단 손잡이 위에 올려놨지. 커피 캐리어에 걸쳐서 잘 보이게. 근데 며칠이 지나도록 꼬리 꼬리한 냄새를 풍기며 현관문 앞에서 말라가고 있었어. 우리 집이 8층이니 위로 8개 층 중에 주인이 있을 것 같은데 왜 안 찾아가는지 궁금했지만 내가 그렇다고 여기저기 다니며 양미리 혹시 잃어버리셨을까요? 하고 문 두드리고 다니면 정신 나간 여자인 줄 알 거 아니냐. 아니면 혹 시어머니가 사다 둔 양미리가 냄새난다고 며느리가 던져 버렸는데 우리 집 베란다에 걸린 걸까? 사오일이 되도록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양미리를 보면서 온갖 생각이 다 들지 뭐야. 날씨가 추워서인지 맛이 없어서인지 길고양이도 많을 텐데 입을 댄 흔적 없이 내가 갖다 둔 그대로 며칠 동안 방치되어 있었어 그 건도 난 참 신기했어. 이런 게 오지랖인가 별 오만 잡생각을 다하고 있다 하던 차에 엿새째 되는 날 커피 캐리어 채로 없어졌어. 청소하시는 분이 오래도록 아무도 안 가져가니까 버린 걸까 아니면 주인이 찾아간 걸까 생각이 많았지만, 왠지 해결된 느낌이라 속은 시원했지, 근데 뭔가 개운치 않더라고 도깨비가 장난을 쳤나?"

“21세기에 무슨 도깨비예요”

“그것뿐이 아니고 또 다른 일도 있었어. 지난번에 운동 나왔다가 들어가는 길에 나무 꼭대기에 뭔가 동그란 게 두 장 걸려 있는 거야 뭔가 하고 자세히 봤더니 회전 물걸레 두 장이 얌전하게 옷걸이에 빨래집게로 집어진 채로 나뭇가지 끝에 걸려 있는 거야 아파트 3층 높이였으니까 아마 10미터는 되겠지? 사람이 일부러 거기 걸어 놓을 수도 없는 자리인데 바람에 날려서 걸린 거겠지 하고 집으로 왔지만 좀 이상하긴 했어. 미루나무 꼭대기에 도깨비 빤스가 걸려 있네 라는 노래가 생각나서 혼자 웃었지, 뭐”

“아이고, 참 현경 언니는 웃기는 소리도 잘해.”

“얼마 전엔 또 깜짝 놀란 적도 있어.”

“이번엔 또 뭔데요. 오랜만에 만나니까 할 얘기도 많네요 하하하!”

“비 오던 날 도깨비 마트에 갔다 오는데 후문 쪽에 있는 나무에 빨갛고 동그란 게 가지도 없는 나무줄기에 붙어 있는 거야. 뭘까 하고 장바구니도 무거운데 가까이 가봤지 멀리서 봤을 땐 소나무 둥치에 빨간 장미가 핀 줄 알았어. 가까이 가보니까 빨간색 이단 접이식 우산이 꼼꼼하게 잘 접힌 채 소나무에 붙어 있는 거야 밑에 줄기가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매달려 있는지 너무 궁금해서 만져 보고 싶었는데 왠지 무서운 생각이 들었지 뭐야, 손잡이도 미키마우스 머리로 빨간색이었고 우산도 빨강 근데 소나무 가운데 기둥에 끈으로 묶은 것도 아닌데 달린 거야 무슨 조화 속인지 원 우리 동네 예전에 도깨비가 살았었다는 전설이 있는데 도깨비가 나타나서 장난하는 건 아닐까?”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세요. 도깨비가 어디 있다고 하하하 얘기 잘 들었어요.”

“아니 진짜 있으면 도깨비방망이로 보물이나 좀 달랠까 하고 호호호!”

“그러시면 메밀묵이라도 사다 주던가요. 하하하! 나온 김에 저는 도깨비마트에서 장 봐서 들어갈게요. 담에 또 봬요.”

실컷 수다를 떨고 다시 달리기를 시작한 현경 씨는 달리면서 공원 한쪽에서 은박지 망토를 맨 할머니가 벙거지를 쓰고 검은 선글라스를 낀 채 등치기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발목까지 오는 반 부츠를 신고 보라색 벨뱃으로 만든 주름치마를 입은 채 거의 매일 운동을 나오신다. 나무가 아플까 걱정될 만큼 힘차게 등치기를 하시고 있었다.


횡단보도에 마침 파란불이 들어오자, 길 건너 공원으로 건너갔다. 앞에 은색 털실 모자를 쓰고 얇고 긴 베이지색 패딩이 꽉 끼어 터질 듯 단추를 채우고 배낭을 멘 할머니가 걸어가고 계셨다. 그 뒤로 비둘기 열두어 마리가 걸어서 따라가고 있었다.

'오늘은 특이하신 분들이 많네.'

 할머니와의 거리가 조금  떨어지면 살포시 날아서 다시 할머니 근처를 호위하듯이 비둘기들이 아장아장 걸어가고 있었다. 다음 횡단보도가 나올 때까지 100여 미터를 따라가던 비둘기들은 할머니가 횡단보도를 건너자, 한꺼번엔 약속이라도 한 듯 날아가 버렸다.

'비둘기 할머니인가?'     

아침 운동을 하면서 별난 생각을 하며 다시 집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어머 민선 씨 마트 간다더니 벌써 갔다가 다시 나온 거야? 운동 열심히 해, 난 들어가서 아침 준비하려고. "

"무슨 말씀이세요? 저 지금 막 나왔는데요."

"뭐?"

순간 현경 씨는 우뚝 선 채로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민선 씨의 뒷모습을 귀신이라도 본 듯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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