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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그늘 Nov 16. 2023

아름다운 이별

행복한 인생

나른한 오후 소파에서 잠깐 잠이 들었다. 우리 집에 있었던 보솜이가 귀여운 분홍빛 손으로 내 팔을 꼭 잡았다. 까맣고 동그란 눈으로 빤히 날 쳐다보고 있었다. 실수로 떨어졌는데 다시 내 팔 위로 올라왔다. 보드랍고 따뜻한 그 느낌에 보솜이가 집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지난 추석날 새벽 4시 큰아이가 급히 나를 깨웠다.

“엄마 보솜이가 떠나려나 봐.”

놀래서 벌떡 일어났다.

작은아이가 손에 보솜이를 조심스럽게 들고 등을 살살 쓰다듬으며 울고 있었다.

“보솜이 괜찮아 무서워하지 마.”

작은아이는 보솜이가 떠나는 것을 두려워할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보솜이는 한쪽으로 누워서 작은아이의 손을 핥고 있었다. 큰아이가 주사기에 분유를 타서 좀 먹여보려고 애를 썼지만 잘 삼키지 못했다.

얼굴에 생긴 작은 혹이 안쓰러워 보였다. 작은 물혹이라 수술하면 되지만 보솜이 나이가 많고 체력적으로 힘이 들어, 그냥 놔두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동물병원 의사의 말을 듣고 보솜이가 좋아하는 먹이들을 많이 주었다. 잘 씹지 못하는 것 같아 우유를 주사기에 넣어 먹이거나 곡식을 갈아 먹였다.


십이 년 전 큰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작은아이가 2학년일 때 학원 선생님이 새끼 햄스터를 분양해 주셨다. 나는 어릴 때 친구집에 놀려 갔다가 커다란 셰퍼트에게 물려 겨울 내복까지 찢어진 기억이 남아 있어 동물 만지는 것을 무서워한다. 그래서 반대했지만, 아이들이 잘 돌보겠다며 졸랐다. 그때는 햄스터를 어떻게 키우는지 잘 몰랐다. 공간이 좁으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데 작은 햄스터 집과 톱밥을 사서 깔아주고 키우기 시작했다. 쳇바퀴도 곧잘 타는 귀여운 햄스터를 보며 아이들은 좋아했다. 리네라는 이름도 붙여주고 정성 들여 키웠는데 어느 날부터 밥을 잘 안 먹었다. 키운 지 2년이 채 안 돼서였다. 동물병원에 가서 진료받았는데 암이라고 했다. 전이되어 수술은 어렵고, 좋아하는 것을 먹이고 잘 지내게 도와줄 수밖에 없다고 했다. 큰아이가 많이 울었다. 며칠 동안 밥도 잘 안 먹고 리네만 보다가 떠나는 리네를 보고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큰 병이라도 날 것 같아 걱정했다. 작은아이도 많이 울었지만, 큰아이가 햄스터에게 많이 미안해했던 기억이 난다. 제대로 돌봐 주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보솜이는 보호소에서 태어났다. 보호소에서 태어난 새끼 햄스터들은 등록이 되지 않아 보호받기가 어렵다. 분양되어 보호자가 나타나면 다행이지만 일정 기간 분양이 되지 않으면 안락사를 시킨다고 했다. 보솜이는 보호자가 없어 곧 안락사가 될 처지에 놓였다. 아이들이 엄마 신경 안 쓰게 잘 키울 테니 허락해 달라고  졸랐다.

“생명을 키우는 것은 그 생명을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일인데 할 수 있겠니?”

예전에 햄스터 리네를 키울 때 생각이 났다. 아이들이 상처받을까 걱정이 되었다. 보솜이를 데려올 때부터 아이들은 보솜이 몫의 생활비를 따로 모아두고 사용하겠다고 엄마는 걱정하지 말라며 허락을 구했다. 곧 안락사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아이들의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웠다.     

 아이들은 햄스터 키우는 법을 인터넷으로 확인하고 먼저 집은 가로 1미터 20센티, 세로 60센티, 높이 70센티 이상 되는 커다란 상자를 주문해서 조립하고 햄스터 집(방)과 쳇바퀴 2개를 설치했다. 물그릇, 밥그릇, 모래 목욕하는 곳까지 습도계와 온도계에 습도조절기, 각종 먹이까지 두 아이의 돈으로 준비해 놓고 보솜이를 데리고 왔다. 여름에는 더울지 싶어 에어컨을 틀어 놓고 모기가 있어도 보솜이가 모기약에 해를 입을까 싶어 모기약 한번 뿌리지 않았다. 기침만 조금 해도 동물병원으로 달려갔다. 두 아이의 정성 탓인지 병원에 가면 털색도 윤나고 건강하다고 했다. 비만이 될까 봐 먹는 양도 조절해 주었다. 처음에는 손바닥을 내밀면 깨물고 두려운 표정이었다. 나중에는 스스로 올라와 먹을 것 없나 핥아보곤 했다. 먹이 먹을 때 엉덩이에 예쁜 하트모양이 보였다. 밤이면 나와서 힘차게 쳇바퀴를 돌고 물도 먹고 모래 목욕도 하고 소변이나 똥은 한 군데서만 보았다. 조그마한 햄스터가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밤에 나와 돌아다니다가 두 아이가 구경하고 있으면 아이들 앞으로 와서 뒷발로 서서 먹을 것 달라고 분홍빛 작은 앞발을 가지런히 포개고 까만 눈으로 말똥말똥 쳐다보곤 했었다.  병원에 건강검진 가면 못마땅해서 톱밥을 파헤치며 화도 냈다. 의사가 진료하려면 입에 넣어놨던 곡식을 총 쏘듯 뱉으며 기분 나쁜 모습을 보였다. 집으로 돌아오면 얼른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좋아하는 밀웜을 슬쩍 건네면 화를 풀고 얼른 낚아채서 먹곤 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사랑스럽고 행복한 기분을 주는 햄스터 보솜이. 어린 햄스터가 감정 표현하는 것도 귀엽고 신기했다.  

   


보솜이가 작은아이 손에 똥을 쌌다.

“우리 보솜이 많이 먹었구나! 언니 손에 똥도 싸고”

계속 흐느끼며 보솜이가 무서워하지 않고 편히 갈 수 있게 부드럽게 쓰다듬는 두 아이의 손이 떨렸다. 전날까지만 해도 기운 없는 뒷다리로 자꾸 넘어지기는 해도 집속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녔었는데 그나마 힘이 없는지 누워있었다. 아침 8시 소변을 보고 난 뒤 차츰 식어갔다. 몸을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해주고 싶은 아이들은 작은 양말에 핫팩을 넣어 보솜이를 올려 주었다. 하지만 영혼이 떠난 그의 몸은 차갑게 굳어져 있었다. 거의 날밤을 새운 아이들이 피곤해 보였지만 나도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해서 강원도로 보솜이를 데리고 갔다. 작은 상자에 좋아하는 해 씨와 밀웜, 곡식들을 넣고 말린 꽃도 넣어 주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 근처에 호미로 깊이 땅을 팠다. 상자를 넣고 그 위에 마른 꽃을 뿌리고 흙으로 조심스럽게 묻었다.


우리 집에 보솜이가 온 지 2년.

그 작고 귀여운 생명체는 아이들과 행복하게 햄스터 나이 90여 살까지 살고 떠났다.

“보솜이 잘 가 다음 생에는 오래오래 살 수 있는 그 무언가로 태어나 행복하게 살길 바라.”

작은 아이의 말이 절절히 사무친다. 오랫동안 이별에 대해 준비를 해온 탓인지 그래도 종일 울고 더 많이 울지 않았다.

“너희가 보솜이 행복하게 돌보아 줘서 보솜이도 행복하게 떠났을 거야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마.”

꿈속에서 보았던 보솜이의 보들보들하고 따스한 느낌이 쉬 사라지지 않았다.

아이들의 각별한 사랑과 보살핌으로 큰 병 없이 잘 지내다가 아름답고 행복한 곳에서 잘 지내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만나면 이별을 생각해야 하지만 이별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아름답다면 이별도 아름다울 것이다. 매일매일 만나는 모든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행복하게 지낸다면 이별이 왔을 때 따스한 마음으로 이별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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