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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그늘 Aug 05. 2023

카페 도전기

행복한 인생

시간을 쪼개 공원을 달린다. 뛰다가 걷다가 힘들긴 하지만 일하기 위해서는 체력을 길러야 한다. 젊은이들과 경쟁해야 한다면 나도 거기에 걸맞게 체력을 키우고 그들만큼 일할 수 있어야 내 자리를 지킬 수 있다.

늦은 나이에 카페 창업이라니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주식회사 경리직원, 마트 경리직원, 출판사 총무 겸 경리, 편집일을 했고, 결혼 후 어린이집에서 주방과 영아반 담당, 작은 일식집을 4번 했었다. 오랫동안 일을 해 왔지만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은 없었다.


 제과 제빵 일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가루를 체 쳐서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 반죽하고 말랑말랑 부드럽고 찰기 있는 반죽의 촉감을 손으로 느끼며 둥글게 만들고 마르지 않게 랩핑 해서 발효기에 넣는다. 발효가 끝나면 다시 가스를 빼고 2차 발효 후 틀이나 철판에 모양을 내고 오븐에 넣는다. 뜨거운 오븐에서 부풀어 올라 팽창하며 노릇노릇 구수한 향을 풍기며 익어간다. 완성된 빵을 뜨거울 때 한 조각 찢어 입에 넣으면 빵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따스함과 쫀득함 빵 특유의 향기로운 냄새 그래서 많은 사람이 빵을 만들고 빵에 열광하는 것 같다.    

  

제과 제빵 과정을 배우면서 제빵기능사 자격증에 도전했다. 이론시험부터 통과해야 실기를 볼 수 있다. 공부와 거리를 둔 지 오래라서 공부해도 돌아서면 까먹는 통에 통과 여부가 불분명했다. 하지만 도전하기로 했으니 일단 해봐야지 미리 겁먹을 필요 없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이동하면서도 강의를 듣고 이론 내용과 문제집이 같이 있는 책을 구입해서 공부했다. 제과제빵에서 나오는 어려운 단어들과 생소한 내용을 위주로 먼저 공부하고 다시 알고 있는 부분을 문제풀이로 익혀나갔다. 드디어 시험 날, 종이 시험지가 아닌 컴퓨터로 시험을 쳤다. 처음으로 컴퓨터로 보는 시험이라 시험을 제대로 칠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시간 안에 겨우 문제를 풀었다. 다행히 72점 합격이었다.

실기시험을 접수했다 시험문제는 버터롤 만들기. 시험감독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빵 반죽을 하고 성형하고 빵을 구우려는데 오븐이 작아 철판이 두 개만 들어갔다. 당황스러웠지만 한판은 나중에 구워야 했다. 시간 안에 제출해야 하는데… 조마조마했지만, 마감시간 몇 분 남기고 제출했다. 69점으로 합격했다.      

자격증 취득은 했지만, 취업이 문제였다. 실무를 배워보고 싶어 카페나 빵집에 지원서를 제출했다. 취직해야 일을 배우고 창업할 수 있을 텐데…. 연락이 없었다. 수십 군데 지원서를 보내고 나서 카페에서 면접 보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혹시라도 나이 들어 보일까 봐 깔끔하고 단정하게 입고 갔다. 카페가 생각보다 컸다. 홀 안에 좌석 수가 4~50석 되어 보였고 오후 2시인데 가게 안에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주방에서 샐러드나 샌드위치 속 재료 준비와 샌드위치, 샐러드 만드는 일을 하면 된다고 했다. 일단 카페 주방에 취업되었으니, 빵을 굽는 일이 아니라도 창업하는 데 필요한 것을 배울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첫 출근을 했다.


주방 실장이 샌드위치에 들어가는 속 재료 준비하는 법을 알려 주었다. 샐러드 야채와 토핑용 재료들을 분리된 그릇에 담아놓고 언제라도 샐러드를 포장하기 위해 항상 채워 놓는 일은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거기엔 병아리콩 삶은 것과 적채 채 썬 것, 블랙 올리브, 파프리카 적색 • 황색 스틱, 통조림 옥수수 등이 들어 있었다. 샐러드 혼합 야채는 비타민, 라디치오, 적근대를 한입 크기로 썰어 씻어서 준비해 놓는다. 스테인리스 양푼과 채반은 사용 즉시 닦아서 제자리에 보관하고 인덕션 전기레인지 사용하는 법, 그릇 정리는 어떻게 하는지, 달걀은 몇 개를 몇 분에 삶는지 달걀 껍데기 빠르게 벗기는 법까지 알려주었다.      

출근하면 제일 먼저 할 일은 샐러드를 만들어 진열하는 것이었다. 야채 50그램에 양상추를 한입 크기로 자른 것을 추가하고 적양파 마리네이드, 토핑 야채를 순서대로 놓는다. 감자와 고구마 구운 것도 담고 닭가슴살 찢은 것과 달걀 슬라이스한 것, 구운 아몬드와 말린 크랜베리를 보기 좋게 올리고 후추와 파슬리를 뿌리면 샐러드 포장 완성이다.

실장은 야채가 너무 가라앉아 볼품이 없다고 했다. 실장은 한번 알려주고 잘못하면 바로 지적했다.

“수세미는 싱크대 안에 놓지 말라고 했잖아요.”

“네 아직 설거지 중이라서…”

“언제까지 설거지만 하실 거예요? 양파도 썰어야 하고 계란도 삶아야 하고 감자도 삶아야 하는데.” 허둥지둥 양파를 까려고 하면

“아니 달걀과 감자 삶을 것부터 불에 올려놓고 양파를 썰어야지요” 또 지적이다.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하는 느낌이 들어서 실수를 반복했다. 내 손이 내 맘처럼 빠르게 따라가지 못하는 게 답답하고 한심했다. 자꾸만 왜소해지고 위축되어 갔다.      

 나는 여기 일을 배우러 온 사람이고 아르바이트로 고용된 사람이다. 뭐라도 시키면 열심히, 빠르게 일해야 한다. 힘들어도 내색해선 안 된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서 빠르게 따라 하지 못한다고 생각할까 염려되어 마음속으로 ‘빨리빨리’를 되뇌며 일했다. 근무 시작한 지 두 시간이 지나자, 다리가 뻣뻣해져 왔다. 잠깐 한가한 틈을 이용해 “화장실 다녀올게요.” 하고 허둥지둥 화장실로 달려가 잠시 변기 위에 앉았다. 다리가 그새 퉁퉁 부었다.

일식집 일을 하면서 피곤하면 다리에 염증이 생겼다. 핏줄을 따라 염증이 퍼지면 다리를 펼 수도, 구부릴 수도 없이 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그때마다 병원에 며칠씩 입원해서 항생제 주사를 맞았다. 그래서인지 왼쪽 발이 항상 부어있다.   

   

실장의 눈총이 서늘하다. 실장은 같이 일할 사람으로 샌드위치만 전문으로 만드는 인력을 원했었는데 사장이 나 같은 왕초보를 뽑아서 일을 가르쳐서 시켜야 하니 못마땅한 것 같았다. 실장도 다른 곳에서 일을 배울 때 지적받으며 일을 배운 탓일지도 모른다고 짐작해 본다. 텃세를 부리는 것일 수도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열두 시가 되었다. 출근한 지 4시간째 카페가 한가하면 밥 먹으러 식당에 다녀올 수 있지만 바빠서 김밥을 시켜 먹었다. 할 일이 쌓여 있으니 빨리 먹어야 한다. 앉아서 먹으라고 했지만, 김밥을 후루룩 마시듯 먹고 일을 시작했다. 칠판에 빼곡하게 적어둔 할 일들을 해놓고 제시간에 퇴근하려면 빠르게 일해야 했지만, 마음처럼 몸이 따라 주지 않았다.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자, 다리에 쥐가 났다. 한동안 주무르고 다리운동을 하다가 소파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두 시간이 지나 있었다. 마음이 흔들렸다. 너무 힘든데 그냥 다른 곳을 알아볼까? 하지만 나이 60이 된 사람을 다른 카페에서 채용해 줄까. 여기에서 계속 일하면서 배워야 하는데 너무 힘들다. 하지만 버티려면 체력이라도 길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픈 다리를 이끌고 집을 나와 뛰기 시작했다. 다리를 드는 것도 힘이 들었다. 뛰다가 걷다가 땀이 나도록 공원을 달렸다.  

    

실장이 이제부터 질문하지 말고 칠판에 적어 놓은 것 확인해서 야채나 계란 삶은 것 등 필요한 재료들을 냉장고에 채워 놓으라고 했다. 재료가 얼마나 소진될지 모르는 데 얼마만큼 준비해야 하지?. 마음이 답답해져 왔지만 우선 진열할 샐러드를 3개 만들어 놓고 다음 할 일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샐러드는 왜 3개만 만들었어? 왜 3개만 만들었냐고?”

실장이 주방으로 와서 언성을 높이며 다그쳤다. 샐러드가 필요하면 더 만들라고 하면 될 텐데 왜 화를 내는지 알 수 없었다.

“우선 3개만 만들었어요. 더 만들면 되지 왜 화를 내는 거예요?”

그동안 실장의 지적질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되었는데 더 이상 참기 힘들었다. 억지를 부리며 트집 잡는 것 같아 화가 났다.

실장은 화를 내며 소리쳤다.

“언니는 중간이 없어. 감자 써는 것도 너무 크거나 작게 썰고 달걀 슬라이스도 너무 많이 해놓고, 로메인이랑 양배추도 통에 너무 많이 채워놔서 자꾸만 망가지니까 사장이 나에게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고 나만 혼난다고! 샐러드도 5개는 만들어 놔야지 말 안 하면 몰라요?”

억울한 마음에 한마디 했다.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하라고 하던가 묻지 말고 알아서 하라고 해놓고 인제 와서 왜 화내는 거예요?”

더 따지고 싶었지만, 그냥 샐러드를 만들었다. 속에서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하지만 매장에서 소리 지르고 싸울 순 없었다. 아마도 실장은 사장과 의견이 서로 맞지 않아 다툼이 있었던 것 같다. 그 후에도 사장과 여러 번 다투던 실장은 그만두었다.     


나는 지금 또 다른 빵집에서 샌드위치 기사일을 하면서 카페 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아직 갈 길은 멀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그래도 노력해 본다. 오늘도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기 위해서 나에게 주어진 시간에 충실하게 살아가려 애써본다. 결과에 대해 미리 걱정하지는 말자. 빵을 만들고 있는 순간만큼은 나에게 즐거운 시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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