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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현경 Jul 13. 2023

바다의 추억

행복한 인생

장마가 시작되었다.

장마가 끝나면 쨍하고 맑은 하늘과 함께 찾아오는 무더위는 바다를 부른다.

강원도 묵호, 바다가 고향이라서일까 늘 바다가 그립다. 여름이면 더 심해진다.


해수욕장에서 빌려주는 커다란 튜브에 몸을 걸치고 바다의 출렁임을 온몸으로 느끼면, 무념무상 자연과 하나가 된다. 그러다가 해변에서 다리를 뻗어 물에 담그고 밀려오는 파도를 느껴보는 것도 좋다.

날씨가 상당히 더워지고 있다. 예전에는 칠월 중순이 지나야 바다에서 놀았던 것 같다. 물이 차갑지만 그래도 햇볕이 뜨거워 물에 들어가면 시원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8월 중순이 지나면서 바닷물도 점점 선뜻해지곤 했었는데 요즘은 6월 말부터 바다에서 물놀이하기도 하나 보다. 여름이 길어지고 있다.  

   

바다에 대한 첫 기억은 짠물을 잔뜩 마셨던 일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여섯 살쯤. 아버지, 언니, 오빠, 고종사촌 언니들과 함께 망상해수욕장으로 놀러 갔었다. 촤르르 촤르르 밀려오는 파도와 고운 모래가 선명하게 반짝이고, 뜨거운 햇살이 쨍하던 여름날이었다.


망상해수욕장은 바닷물에 들어가면 처음엔 수심이 약 1미터 정도 깊어졌다가 1~2미터 정도 걸어가면 무릎높이 정도로 얕아진다. 오래전 일이라 지금은 지형이 바뀌었을 수도 있겠지만 가슴까지 차오는 바닷물이 무서워 건너가지 못하고 물가에서 혼자 놀았다. 언니 오빠가 건너가서 오라고 손짓하는 것을 보고 건너보겠다고 용기를 내었다. 건너는 도중 갑자기 커다란 파도가 얼굴을 때렸고 놀라 물에 빠졌다.


바닷물에 빠진 나를 언니, 오빠가 팔과 배를 잡고 끌어내려했다. 무서움에 버둥거리다 다시  빠지길 여러 차례 아버지가 달려와 나의 머리채를 잡고 끌어내었다. 짠 바닷물을 코와 입으로 토했는데 괴로움에 눈물, 콧물까지 흘리며 울었다. 아버지께서 사이다를 사다 주셨다. 좀 진정한 뒤에 뜨거운 모래 위에 앉아 코로 바다의 짠 내를 느끼며 달콤하고 톡 쏘는 사이다를 조금씩 조금씩 마셨다. 그런 기억 탓인지 발이 닿지 않는 깊은 물이 무섭고, 처음 사이다를 마셨을 때 톡 쏘던 느낌이 새롭다.

   

초등학교 여름방학이면 바닷가 바위틈 사이 기어 다니는 방게를 잡았다. 좁은 바위틈으로 들어가 숨은 방게를 과도로 살살 꺼내면서 손으로 얼른 잡아야지 아니면 물속으로 재빠르게 퐁당 도망가 버린다. 따개비도 따고 조개도 줍고 여름 방학 내내 바다는 나의 놀이터였다. 덕분에 등이 타고 벗겨지길 여러 차례, 밤이면 등이 따가워 바로 눕지도 못하면서 다음날이면 양동이와 과도를 들고 바닷가로 나갔다.    

  

조개 줍기도 재미있었다. 허리까지 오는 바다에서 트위스트 춤을 추듯 발을 비비면 모래 속에 있던 조개가 발에 밟힌다. 손으로 더듬거려 조개를 줍는다. 마치 보물찾기 하듯 조개 줍기를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조개 줍기가 싫증 날 때면 모래성 쌓기를 했다. 물에 젖은 모래를 두 손 가득 담아 물과 함께 조금씩 흘리면 작은 뾰족탑이 생겼다. 젖은 모래로 성벽을 만들고 성 앞에 구덩이를 파서 작은 호수도 만들었다. 파도는 그사이를 못 참고 촤르르르 몰려와서 허물어 버린다. 바다와 노는 재미에 다시 또 성을 만들곤 했다. 그러다가 몸을 파도에 맡기고 바닷가에 다리를 뻗고 앉아 있으면 파도는 내게 다가와 발바닥을 간지럽히곤 했다. 파도 소리가 좋다. 손가락 사이를 흘러내리는 모래도 좋다.     


초등학교 3학년 여름 망상해수욕장에서 아이스케키 장사를 했다. 네모난 나무상자에 작은 뚜껑이 달린 파란색 아이스케키 통엔 붉은 글씨로 얼음 빙(氷)이라고 쓰여 있는 통을 메고 해수욕장을 다니며 아이스케키를 팔았다.

언니와 같이 했는데 수줍음이 많아서 ‘아이스케키 사세요’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없는 곳에 가서 조그맣게 아이스케키 있어요 연습하다가 언니에게 등짝을 맞았다.

“아이스케키 녹으면 어쩌려고 그래 빨리 팔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가면서 “아이스케키 있어요.” 하고 우물쭈물 말했다

 어린아이가 고생한다며 많이 팔아주었다.

한 번은 아이스케키를 팔았는데 잔돈이 없어 바꾸러 갔다 오니 아이스케키 산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다시 가게로 돌아왔는데 왜 잔돈 안주냐고 항의하고 있었다. 잔돈을 늦게야 돌려주곤 언니에게 등짝을 또 맞았다. 왜 빨리 갖다 주지 않았느냐고 해서 좀 억울했다.      


까막바위 근처에서 오빠가 친구들과 놀았었다. 까막바위 아래 큰 문어가 살고 있어서 들어가면 잡혀 죽는다는 소문이 있었다. 물 깊은 곳에서 숨죽이고 누군가 내려오길 기다리고 있다며 누군가 겁을 준다. 그까짓 것 하나도 겁 안 난다고 오빠가 호기를 부리며 바다로 다이빙했다. 잠시 뒤 물 위로 벌건 핏물이 번졌다. 나는 놀라서 오빠가 죽었나 하고 겁을 먹고 있던 순간 오빠는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물 밖으로 나왔다.

“오빠 피난다.”  “에이 바위에 머리 박았네” 하면서 투덜대었다. 이마에선 피가 흘렀고 오빠는 다친 까까머리를 손바닥으로 누른 채 집으로 갔다. 짐을 들고 따라가면서 오빠가 얼마나 아플까 생각하면서도 머리를 누르고 가는 모습이 우스워 웃음을 참았던 기억이 난다.     


여름이 오고 장마가 시작되니 어릴 적 추억들이 줄줄이 소환되어 온다.

바다가 그리워지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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