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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그늘 Jul 05. 2023

나의 글쓰기는 마음 떨림이다

행복한 인생

나의 글쓰기는 마음 떨림이다.     

초등학교 다닐 때 강릉시에서 강원도주관으로 종합예술대회가 있었다.

초등 4학년 엄마가 서울로 떠난 뒤 많이 그리웠고 보고 싶었다. 그 마음을 글로 표현하고 싶어 동시 부에 들어갔다. 강릉으로 기차를 타고 담당 선생님의 인솔하에 종합예술대회 동시 부문에 참가했다.

강릉시 초등학교에서 대회를 열었는데 오후에 결과 발표가 있었다.

최우수상이었다. 얼떨떨했다.

환하게 웃으며 좋아하시던 동시부 선생님의 모습과 아이들의 놀란 표정이 기억난다.   

초등학교 졸업 후 엄마가 계시는 서울로 올라왔다. 엄마에게 노벨문학상을 받아서 선물하겠다고 큰소리쳤다. 주소도 없이 낡은 종이봉투에 신춘문예라고 쓴 뒤 시 한 편을 써서 넣어 보냈다.

주소지 불명 반송이라는 도장이 찍힌 나의 시 한 편을 오빠가 보더니 어이없는 표정으로 “신춘문예 아무나 하는 줄 아니? “ 했다.     

‘나 따위가 글이 다 뭐야.’ 붉어진 얼굴을 숙이고 마음을 접었다.  


식당 일하시는 엄마의 심부름을 하면서 검정고시공부를 위해 공민학교에 다녔다.

엄마는 식당 일하시면서 연탄가스 중독으로 인해 폐가 나빠져 병석에 누우셨다. 오빠는 막노동하고 언니는 미싱기술을 배우느라 한남동 직업학교에서 기숙하고 있었고 나는 집안일을 하면서 학교에 다녔다.      

공민학교 이 학년 겨울방학 병석에서 앓으시던 엄마가 돌아가셨다. 큰 충격이었다.

엄마 장례를 치르고 나서 살고 있던 집이 무허가 건물이라 철거되었다. 우리 네 남매는 모래내 근처 단칸방으로 이사 갔다. 그리고 나는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리 일을 시작했다. 틈틈이 컴퓨터학원에서 컴퓨터 사용법과 출판하는 법을 배웠다.

대학 가기는 어려웠지만 출판사에 다니면 책과 좀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깊은 곳에 심어 놓은 채 잊혔던, 글을 동경하는 마음이 싹이 터서 조금씩 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약학 전문 출판사에 취직되었다. 컴퓨터로 입력하고 출력해서 인화지를 만들고 두꺼운 마분지에 한 장 한 장 한 페이지씩 만들었다. <** *인덱스> 2,650페이지에 달하는 책, 5포인트로 글 간격과 줄 간격을 맞춰서 만들다 보면 힘들기도 했지만 재미있었다.     


출판사에 다니며 일주일에 한 번 원하는 책을 미리 주문하면 원하는 장소로 책을 가져다 빌려주는 서비스를 이용해 많은 책을 읽었다. 주말이면 청계천을 따라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헌책방을 돌며 책을 사다 읽기도 했었다. 만나는 친구도 없었고 유일한 취미라곤 책을 읽는 것이었다. 내가 책 속 주인공이 되어 모험에 빠지는 상상만으로도 재미있었다.      

자취하면서 아버지에게 용돈 보내드리고, 군대 간 남동생의 독립을 위해 매월 2만 원씩 적금도 들고, 전세방으로 가기 위해 돈을 모으다 보니 짠순이가 되었고, 남들과의 만남을 멀리하게 되었다. 책만이 숨 쉴 수 있는 통로였고, 취미였고 안식처였다.      


출판사에 다니다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긴 연애 끝에 결혼했다. 아이 둘 낳고 먹고살기 위해 다시 일하러 나가야 했을 때 큰딸은 다섯 살 작은딸은 세 살,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맡기고 또 다른 어린이집으로 출근했다. 다른 아이들의 간식과 식사를 만들고 걸레질하고 아이들을 돌보며 번 돈으로 내 아이들을 키웠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대학에 가고 취직했다.


나는 어느덧 환갑이 되었다.      

먼 길을 돌아 돌아 이제야 내 마음의 이야기를 써보기로 했다.

살아온 세월 속에 즐거웠던 조각, 행복했던 조각들 그리고 슬프고 힘겨웠던 조각들을 조금씩 찾아 묵은 때를 벗기고 붓으로 먼지를 털어내며 한 줄 한 줄 적어 보았다. 나의 기억 속에서 왜곡되고 잊혔던 일들도 다시 생각하면 또 다른 세월의 흔적들이 화석처럼 드러나고 있었다. 잊고 있었던 작은 기억의 조각들도 큰 기억을 따라 조금씩 흘러나오는 모습들을 노트에 적으면서 내가 많은 것을 잊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종 사이버대학에서 공부한 지 일 년 반, 나에겐 높은 산이었지만 공모전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      

어린 시절 주소도 없이 신춘문예라 써서 보낸 한 편의 시 이후 처음으로 공모전에 응모해 보았다. 한 편의 에세이를 보내며 마음의 떨림을 주체하지 못하고 가슴을 꾹 눌러 진정시키면서 메일을 보냈다.

    

‘귀하의 원고가 접수되었습니다. 응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시작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많이 써야 한다. 이제라도 나에게 이런 기회가 찾아온 것에 감사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라며 학교에 입학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응원해 주고 격려해 준 두 딸과

열정으로 가르쳐 주시는 세종사이버대 교수님들께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읽고 쓰는 자리마다 반짝이기를, 오래 쓰는 사람으로 살아요. “

고수리 교수님 말씀처럼 읽고 쓰는 자리마다 반짝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오래오래 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나는 오늘도 떨리는 마음으로 글을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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