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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개떡과 여우이야기

by 황현경

떡가루 같은 눈이 흩날리고 날이 추워지면 유난히 겨울바람이 더 춥게 느껴집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부는 날이면 어릴 적 추억이 떠오릅니다.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묵호에서 살았습니다. 우리 집은 신작로를 앞에 두고 뒤에는 기찻길이 있는 목조건물에서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목조건물 한쪽을 비워 뻥튀기 장사를 하셨습니다. 뻥튀기 기계 입구를 작은 방에 대어 두고 뻥튀기를 하면 방으로 날아 들어가게 뻥튀기 공장을 만들었습니다. 덕분에 강냉이나 누룽지를 튀기면 한 주먹씩 얻어먹곤 했었습니다. 집에서는 늘 구수한 뻥튀기 냄새가 감돌았습니다. 나는 그 냄새가 구수하고 맛있었습니다.


추운 겨울밤 흐린 전등 불빛 아래 양말을 기우시던 어머니 모습이 떠오릅니다.

해져서 구멍 난 양말을 꿰매고 계셨습니다. 양말 구멍에 알전구를 끼우고 졸린 눈을 비비며 한 땀 한 땀 바느질하시던 어머니. 마른 등을 구부리고 조용히 바늘을 당기면 실이 사르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그런 날이면 저 멀리 신작로에 자동차 굉음이 아련히 들리고 그 소리마저 춥게 느껴졌습니다. 아랫목에 이불을 덮고 누워 있다가 자동차 소리가 들리면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고 이불을 당겨 누에고치처럼 숨어 들어갔습니다.


"망개떡 있어요. 당고."

망개떡 장사의 높고 가느다란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습니다. 문 여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버지가 밖에 나가시면서 들이치던 차가운 바람. 잠시 후 아버지는 당고와 망개떡을 사 오셨습니다. 망개잎으로 싸인 망개떡은 팥앙금이 든 찹쌀떡이었는데 윤기가 반들반들 흘렀습니다.

겨울밤 뜨끈뜨끈한 아랫목에 앉아 처음 먹어본 당고와 망개떡은 달고 쫀득쫀득 맛있었습니다. 젊어서 일본에 잠시 사셨던 아버지는 어린 자녀들에게 그때 먹었던 당고 맛을 보여 주고 싶었던가 봅니다. 뜨끈한 아랫목의 온기와 입안에 가득 느껴지던 달콤함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찻길가 집이라 밤이면 유난히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가 크게 들렸고 가끔 지나가는 기차 소리도 들어야 했습니다. 집 옆은 공터여서 차량이 들어와 주차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습니다. 추운 겨울밤 자동차소리에 잠 못 자고 뒤척일 때면 엄마는 이불 밑으로 손을 들이밀고 어서 자라고 속삭이곤 하셨습니다.

잠이 안 온다고 툴툴거리면 엄마는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하셨습니다.


“엄마가 결혼해서 새색시 적 풍기에 있는 집안 식구들과 같이 살았단다. 그 마을은 아버지 친척들이 많이 살고 계신 동네였어. 어느 날 한동네 사는 돌쇠아범이 새벽에 밭일을 하러 갔는데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대. 돌쇠어멈은 돌쇠아범이 아침 먹으러 올 때가 지났는데도 안 와서 밭으로 찾으러 나갔지. 그런데 돌쇠아범은 밭가운데 서서 괭이를 휘두르며 저리 가 저리 가하고 있더래. 놀란 돌쇠어멈이 다가가 뭐 하는 거냐고 물어보자 여우를 쫒는 중이라고 하더래. 여우가 어디 있냐고 하니까 저기 있잖아, 저기! 하면서 괭이를 마구 휘둘렀대. 돌쇠어멈이 괭이를 잡고 돌쇠아범의 팔을 잡아끌자 픽하고 쓰러지더래. 동네사람들을 불러 집에 데려다 눕혀놓았더니 계속 헛소리를 하고 식은땀을 흘렸대. 저리 가 저리 가 소리 지르며 헛소리 하면서 며칠 앓더니 그만 죽고 말았대.”


나는 무섭기도 하고 엄마말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에이 거짓말이지?”

“진짜야 엄마가 풍기 살 때 있었던 이야기야 사람들이 그러더라 여우에게 홀리면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

여우가 사람 혼을 빼먹으려고 혼자 있는 사람 머리 위를 껑충껑충 세 번 뛰어넘으면 혼이 나가서 얼마 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엄마가 해주는 이야기가 무서워 오히려 잠이 달아 날 것 같았지만 따뜻한 이불속에서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곤 했습니다. 오늘 같이 추운 밤이면 엄마목소리가 더 귓가에 아련히 들리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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