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기억 없는 내 어머니의 손

by 황현경

어머니의 손


이해인

늦가을 갈잎 타는 내음의

마른 손바닥

어머니의 손으로

강이 흐르네

단풍잎 떠내리는

내 어릴 적 황홀한 꿈

어머니를 못 닮은 나의 세월

연민으로 쓰다듬는 따스한 손길

어머니의 손은 어머니의 이력서

읽을수록 길어지네


오래된 기도서의

낡은 책장처럼 고단한 손

시들지 않는 국화 향기 밴

어머니의 여윈 손


-<내 혼에 불을 놓아> 이해인 제2 시집 분도출판사-

아무리 생각해도 어머니의 손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거칠어 모래알같이 꺼끌대던 손. 어머니 손의 감촉만 생각납니다. 잠결에 쓰다듬어주던 어머니의 손길. 새벽길 일하러 나가면서 밥상을 차려놓고 내 얼굴을 살며시 보듬어 주곤 했습니다. 잠결에 거친 손이 싫어 뒤척이곤 했었는데 지금은 그 손길마저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희고 가녀린 손목만 떠오릅니다. 묵호에서 같이 살 때의 손목이었는지 서울에서 자동차 정비소 식당을 하던 때의 손목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소매 끝에 뻗어 나온 길고 희던 손목이 애처로워 보였습니다.

왜 어머니의 손은 기억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는 나이 49살에 이승을 훨훨 떠났습니다. 흰 눈이 밤새 내려 산과 들을 덮고 마당에도 눈이 내려 일부는 녹고 일부는 쌓여 질척거렸지요. 어머니는 직업훈련학교에 간 큰딸을 기다리며 지나가던 장사꾼에게서 고구마를 한 봉지 샀습니다. 눈길에 미끄러질까 노심초사 큰딸을 기다렸지요. 어머니의 곁은 나와 남동생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아랫목에 이불을 덮고 누우면 쏟아지는 기침을 견디지 못하고 몸을 반쯤 접은 채 앉아 있었습니다. 그 모습도 좋았습니다. 그저 어머니가 곁에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 헤어져 이 년이 지나 다시 만난 어머니가 얼마나 애틋하고 좋았는지 모릅니다.

어머니의 손은 어머니의 이력서/ 읽을수록 길어지네// 오래된 기도서의/낡은 책장처럼 고단한 손//

어머니가 계시면 이력서 같고 낡은 책장 같은 손을 잡고 온기를 느껴보고 싶습니다. 거칠어진 손으로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길 길고 하얀 팔목으로 따뜻하게 안아주길 오늘도 바라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가시와이 히사시의 장편소설 <가모가와 식당>을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