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천사의 시> 빔 벤더스감독의 영화를 보고
오래전 독일의 영화감독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를 본 적이 있다. 90년대 초 직장 생활을 할 때 여직원들과 같이 종각으로 놀러 갔었다. 점심 먹고 근처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기로 했다. 주말이라 근처 영화관에 빈자리가 없었다. 지금은 없어진 코아 아트홀에 빈자리가 있는 영화가 있었다. 감독 이름도 영화제목도 처음 들었지만, 영화를 봤다.
영화는 흑백으로 시작한다. 천사 다미엘(브루노 간츠)은 카시엘과 같이 베를린에 내려온다. 태초부터 지구의 생성과 변화 그리고 건물들이 재건되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는 천사들. 천사들은 영원한 삶을 살 수 있지만 인간의 일에 관여하지 못한다. 건물 꼭대기에 날개를 접고 사람 마음의 소리를 듣는 천사들. 슬픔에 젖어 울고 있는 사람을 보면 다가가 위로의 손길만 건넬 수 있다. 자살하려는 사람도 막을 수 없다. 조용한 도서관. 밤이면 천사들이 모여 서로 겪은 일들을 이야기한다. 그중 다미엘은 우연히 서커스단에서 줄을 타는 여인을 보고 그녀에게 반한다. 카시엘은 그를 말리지만 다미엘은 그녀의 꿈에 현신하기도 하면서 마음을 전해 보려 한다.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하게 된 천사 다미엘은 인간이 되기로 한다. 하늘에서 떨어진 다미엘 그 위로 떨어져 내리는 오래된 갑옷. 머리에 맞아 피가 흐르고 피를 처음 흘려보는 다미엘은 신기해한다. 갑옷을 팔고 인간이 된 천사 형사 콜롬보(피터 폴크)에게 인간이 되어 살아가는 방법을 듣게 된다. 사랑하는 그녀를 찾아가 그녀가 타고 있는 줄을 잡아주며 행복하게 웃는 다미엘.
여기 있는 게 얼마나 좋은지 말해 주고 싶어. 시원한 걸 만지는 건 기분 좋은 일이지. 담배와 커피, 이걸 함께하면 환상적이야. 그림도 그래 연필로 굵은 선도 긋고 가는 선도 긋고 그럼 멋진 선이 되지. 손이 시려오면 이렇게 비벼보게 이것 또한 기분 좋지. 좋은 일은 아주 많아. -천사에서 인간이 된 영화스타 피터 폴크의 대사 중에서.
영원히 살면서 천사로 순수하게 산다는 건 참 멋진 일이야. 하지만 가끔 싫증을 느끼지. 영원한 시간 속에 떠다니느니 나의 중요함을 느끼고 싶어. 내 무게를 느끼고 현재를 느끼고 싶어. 부는 바람을 느끼며 ‘지금’ 이란 말을 하고 싶어… 지금… 지금…. - 천사 다미엘(브로노 간츠) 대사 중에서-
아이가 아이였을 때 궁금한 게 너무 많았다. 나는 왜 나이고 네가 아닌가. 왜 나는 여기에 있으면서, 저기에 있을 수 없는가. 내가 아직 나이기 전에, 나는 무엇이었는가. 언젠가는 나란 존재는 더 이상 내가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닐까. - 천사 다미엘(브로노 간츠) 대사 중에서-
내가 기억하는 영화 내용이다. 대체로 조용하고 느린 템포의 영화는 지루한 면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영화다. 거대한 강이 흘러가는 것 같은 감동이 밀려왔다. 인간이기에 여러 가지 감각들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껴지는 영화였다. 이미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그 영화의 장면 장면들이 떠오른다. 줄을 타는 마리온을 바라보는 다미엘의 행복한 미소. 내 마음도 따뜻하고 행복한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