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꽃
이해인
햇살에 눈뜨는 나팔꽃처럼
나의 생애는
당신을 향해 열린
아침입니다
신선한 뜨락에 피워 올린
한 송이 소망 끝에
내 안에서 종을 치는
하나의 큰 이름은
언제나 당신입니다
順命(순명) 보다 원망을 드린
부끄러운 세월 앞에
해를 안고 익은 사람
때가 되면
추억도 버리고 떠날
나는 한 송이 나팔꽃입니다
-<내 혼에 불을 놓아> 이해인 제2시집 분도출판사(1986년 19판)-
청람색의 나팔꽃을 보면 신혼여행 가던 길이 생각난다. 여행지는 제주도였지만 삼십여 년 전 강원도 횡성에는 비행장이 없었다. 남편 친구의 차를 타고 구룡령을 넘어 양양으로 갔다. 낙산 비치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속초로 갔다. 속초에서 서울로 다시 제주도로 가는 코스로 갔다. 삼십 년 전 강원도에서 제주도 가려면 그 노선밖에 없어 힘들게 갔다. 가는 길에 보았던 청람색의 나팔꽃이 예쁘면서도 처연하게 느껴졌다. 엄마도 없이 시댁에서 반대하는 결혼을 치르고 떠난 신혼여행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구월 말 그해 날씨는 늦도록 더워 결혼식장에서도 땀을 많이 흘렸었다. 가는 길에 커다란 나무를 감고 올라간 나팔꽃. 줄기마다 초록 잎을 달고 활짝 피어있었다. 나팔꽃은 아침에만 피고 낮에는 진다고 하는데 활짝 핀 나팔꽃을 어떻게 보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신행을 다녀와서 시댁에서 봤는지도 모르겠다. 나팔꽃의 꽃말은 "결속, 허무한 사랑"이라고 한다.
‘때가 되면/추억도 버리고 떠날/나는 한 송이 나팔꽃입니다’
나의 마음을 노래한 것 같아 자꾸만 읽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