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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손에게 감사하기

by 황현경

손톱이 길어져서 깎다가 오늘따라 더 쪼글쪼글 주름진 손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손등에는 푸른 핏줄이 드러나 보이고 얇아진 손등 피부는 수없이 많은 주름이 잡혀있다.

어릴 땐 손이 예쁘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는데 일을 많이 하면서 손마디가 굵어졌다.

아버지의 의처증으로 많이 힘들어하시던 엄마가 서울로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빠도 언니도 엄마에게 갔다. 남동생과 아버지와 셋이 살면서 초등학교 4학년부터 밥을 해 먹었다.

아버지는 오징어 배를 타러 나가시면 동생과 둘이 밥을 해서 먹곤 했다.

그때부터 집안일을 맡아서 했었다.

그 후 서울에 있는 엄마에게 올라와서도 집안일했었다.

언니는 미싱 일을 배우러 직업학교 기숙사에 들어갔고 오빠는 공장 일을 다녔었다.

아픈 어머니 곁에서 밥을 하고 빨래를 했다.

겨울이면 손이 동상에 걸려서 빨갛게 퉁퉁 부어올랐다.

가렵고 따갑고 손가락을 굽힐 수 없을 만큼 부어올라서 다시는 손을 사용하지 못할까 봐 걱정했었다.

그 후 손가락 마디가 굵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부끄러워 손을 자꾸 감추었다.

일식집에서 일을 하면서 손을 많이 다쳤다.

회칼에 베이기도 하고 채칼에 다쳐서 병원에 가서 꿰맨 적도 있었다.

손가락이 칼에 베여 피가 많이 나면 고무줄로 묶어 지혈을 한 채 일을 했었다.

나중에 묶었던 고무줄을 풀면 손가락이 푸르죽죽하게 죽어 있었다.

그래서 칼질하는 게 더 싫었다.

오른손은 인체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부위인 것 같다.

밥을 먹고 글을 쓰고 음식을 만들고 비가 와서 우산을 써야 할 때도 손을 사용한다.

넘어져서 아픈 곳에도 손이 먼저 아픈 곳으로 달려간다. 슬퍼서 눈물이 나올 때도 손이 먼저 위로해 준다.

즐거운 일이 있어 웃을 때도 입가로 손이 달려가고 손뼉을 치며 파안대소할 때도 오른손이 먼저 다가온다.

다정한 사람과 슬며시 손을 잡고 체온을 나눌 때도 오른손이 먼저 슬쩍 다가간다.

참 착하고 이쁜 아이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마음이 한결같은 손이다.

늘 따스한 손길로 나를 다독여주고 보듬어준다. 씻을 때도 머리를 감아야 할 때도 오른손처럼 열심히 일하는 아이가 없다. 나에게 오른손이 있다는 것은 행복하고 든든한 일이다.


몇 년 전 한라산에 가서 오른손 팔목이 부러졌다.

눈길이 미끄러워 엉금엉금 내려가고 있었는데 미끈하면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얼결에 오른손을 짚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처음엔 아픈 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팔목이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왼손으로 오른손 팔목을 잡고 어쩔 줄 몰라했다.

산악구조대가 와서 앰뷸런스를 타고 근처 병원으로 갔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뼈가 분쇄골절 되어있었다.

아픈 팔을 잡아당겨 팔목 뼈를 맞추고 깁스를 했다.

부러진 팔목을 안고 서울로 올라왔다.


오른쪽 팔목을 수술하고 한동안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밥도 왼손으로 먹어야 했고 모든 일을 오른손 대신 왼손이 해야 했다.

왼손으로 젓가락질하는 연습을 해봤다.

천천히 하면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오른손만 못했다.

옷도 아이들이 입혀줘야 하고 집안일도 왼손으로 하려니 답답했다.

그동안 생각 없이 부려 먹던 오른손이 새삼 귀하다 생각이 들었다.

치료를 받고 핀 제거 수술을 하고 다시 재활치료를 받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다시 손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 팔목이 부러졌을 때 혹 신경에 문제가 생겨 다시 손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면 어쩌나 은근히 걱정되었다. 다행히 근육이나 핏줄, 신경을 피해서 뼈만 부러져서 회복이 빨랐다. 지금은 뛰어난 의술 덕분에 상처 났던 곳은 아물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잘 사용하고 있다. 10cm 정도의 흉만 남아 있다. 늘 가까이에서 가장 먼저 나를 위로하고 온갖 궂은일은 도맡아 하는 오른손에 수고가 많다고 고생하는 네 맘 잘 알고 있다고 인사라도 해야겠다. 토닥토닥 어여쁜 손등을 다독여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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