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여름
오랜만에 카카오톡 친구 목록을 보다가 J를 발견했다. 어느덧 그녀도 20대 후반이 되어있을 터였다. 그녀는 여전히 하얗고 작았다. 눈이 휘어지는 웃음을 짓고 있었고 손의 마디마디가 앙상했다. 아주 잠시동안 몇 년 전 여름이 떠올랐다.
그녀의 사진을 보는 순간 문득 알았다. 알아버렸다. 이제 어떤 시절은 영영 끝나버렸다는 것을. 나는 더 이상 그 여름을 회고하지 않게 되리라는 것을. 어떤 것은 찰나의 순간 종료되기 마련이었다. 내겐 그것이 마치 어떤 침전물 같았다. 가라앉아 있던 것들을 너무 자주 휘저어 떠올렸다. 바닥의 것들은 바닥에 그대로 두어야 한다고. 저 편의 것들을 자꾸 끌어오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깨달음이 무색하게 순간 그녀의 사진을 보고 반가웠다. 병동에서 20대 초반의 여름을 함께 보냈던 그녀는 계절을 막론하고 힘이 들 때면 생각나던 존재였다. 한때 내게 집 같던 사람. 그런 그녀의 사진을 보다가 이젠 내 마음이 실로 괜찮아졌음을 알았다. 더는 습관처럼 그 해 여름을 꺼내보지 않더라도 나는 괜찮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놀라운 일이었다. 몇 해가 지나고 무수한 알약을 먹고 나서야 비로소 사람 하나를 잊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시간과 약의 힘이 이렇게나 위대했다. 꼬박꼬박 병원을 드나들었던 그간의 시간이 쓸모 있었다는 게 나를 무너지지 않게 했다. 어느덧 한 달 반 간격으로 약을 받아오는 게 익숙해지고 있었다. 일주일에 세 번씩 병원을 가던 삶에서 참 많이 발전한 셈이다. 지나가지 않을 것 같던 밤들도 다 지나고 잊히지 않을 것 같던 사람도 잊히고. 사는 게 제법 살만 했다.
매년 습관처럼 보던 신년 운세도 올해는 보지 않았다. 그런 애매한 문장들에 마음을 의지하고 싶지 않았다. 신년 운세를 보고 신년 계획을 짜는 것 대신 그저 착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나가기를 택했다. 지나간 시절을 꺼내보고 생기지 않을 일을 걱정하기보다는 지금 내 앞에 닥친 하루를 더 열심히 살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지나간 여름처럼 다가올 가을도 온몸으로 맞아내는 내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