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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니 Jan 27. 2023

흔들릴수록 더 강해지는 절기

ANTIFRAGILE

오늘은 왠지 조금 울고 싶은 날이었다.  괜찮은 하루였지만 괜히 마음이 여린 날이었다. 이런 날에는 속절없이 입꼬리가 흘러내리고 만다. 턱이 호두 모양이  채로 침대에 걸터앉았다. 이런 마음의 정체는 뭘까.   없는 뒤숭숭한 심정으로 글을 읽었다. 이런 날에 읽는 글들은 하나같이 마음에 와서 콕콕 박히었다. 유난히 마음이 예민할 때에는  해도   같지 않다.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거라며 자위해 보지만 마음이 수면에 가라앉아 있을 때에는 그런 것들이  소용없다.


언제나 사랑을 잘 쓰는 사람이고 싶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는 사랑 때문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것이 이성애의 형태가 아닐지라도 또 다른 무언가에 대한 마음 때문일 거라고 믿기 때문에. 하지만 사랑에 대해 적고자 하는 순간이 오면 나는 언제나 문장 앞에서 부서지고야 말았다. 거대한 것을 거창하지 않게 풀어내는 재주가 내겐 그다지 없었다. 마음은 온갖 것들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찼지만 문장은 늘 결핍을 내포하고 있었다. 가끔씩은 나도 찬란한 문장들을 적어보고 싶었다. 아픔이나 회상 같은 것들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닌, 빛나는 마음에 대한 글을 적어보고 싶었다.


언젠가 가사에만 매료되어 듣던 노래가 문득 사운드가 너무 좋게 들렸을 때, 다시 작곡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걸 기억한다. 그렇게 저편으로 밀어두었던 꿈을 다시 찾았을 때, 삶에 대한 사랑이 조금 더 차올랐다. 삶을 내가 원하는 대로 꾸려나가고 싶다는 마음, 삶이 그저 그렇게 흘러가도록 두지는 않겠다는 의지, 그러기 위해 이번 주말은 작곡 프로그램과 씨름을 해봐야겠다는 결심. 요 근래 느낀 적 없었던 강한 열정이 넘실거렸다. 하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 비로소 내일이 의미가 있었다.


많은 걸 20대에 이루고 싶었다. 한 때 내가 좋아했던 아이돌들처럼. 삶의 전성기를 20대부터 맞이하고 싶었다. 그렇지 못한 삶을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욕심과 조급함으로 점철되어 있던 시절의 이야기였다. 그때의 난 목표만 있고 삶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 내 삶을 아끼지 않았다. 습관처럼 알약을 털어 먹었다. 그때 썼던 유서는 어디에 있는지 아직도 알 수 없다. 20대 초중반을 넘어 후반까지 살아왔으니 이젠 20대가 몇 년 남지 않았다. 그러니 물리적으로 힘든 이야기겠지만 여전히 많은 것들을 20대에 이루고 싶다. 여전히 그런 치열한 마음으로 살고 싶다.


기온이 연일 영하에 머물러 두꺼운 외투를 입어야 하는 시기가 왔다. 장갑이나 목도리, 귀마개 따위를 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릇을 먹은 떡국 덕분인지 마음이 한 뼘 자랐다. 자란 만큼 커진 공간에 문득 무언가 가득 차는 순간이 있다. 그런 순간들이 모여 삶이 된다고, 그러니 그런 순간들을 사랑해야 한다고. 바람이 불며 알게 되었다. 바람이 불수록 옷깃을  여미게 되는 계절처럼 흔들릴수록  강해지는 절기가 왔다. 나는 분명 괜찮다고,  괜찮을 거라고. 되뇌지 않아도 어느 순간 알게 되는 겨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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