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에 여름을 상상하는 일
버스를 기다리며 서있는 동안 칼바람을 맞으며 올해 또 여름이 온다는 사실을 가만히 떠올려 보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단단히 껴입어도 옷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이 너무나 찬데 반팔을 입는 계절이 반년 뒤면 다시 돌아온다니. 한겨울엔 여름을 상상하는 것조차도 쉽지 않다. 어쩌면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은 한겨울에 여름을 상상하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해가 어려운 걸까. 습관처럼 너를 이해한다고 말하던 시절도 있었다. 이해한다는 동사의 의미를 미처 다 이해하지 못하던 시절. 마찬가지로 누군가 이해한다고 말하면 그 한 마디에 전부를 걸었다. 언제나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고 싶었다.
외로움이 병이었다. 그것은 상담으로도, 약으로도 치유되지 않았다. 쉽게 얻어진 것은 언제나 쉽게 사라지기 마련이지만 늘 쉽게 사람을 얻고 싶었다. 외로워서 자주 다쳤다. 그런 이십 대 초중반을 보냈다. 새벽은 자주 하얬고 주로 아이스크림을 까먹으며 밤을 새웠다. 그때 들었던 노래들은 이제 더는 듣지 않게 되었다. 시간이 약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밖에도 시집이나 영화, 전시회 따위의 것들도 내겐 약이었다. 그런 것들로 조금씩 삶을 연명하던 시절이 있었다.
매년 생일을 맞이할 때마다 다음 생일의 존재를 확신할 수 없었다. 뭐든 당연한 건 없다는 말처럼 내겐 내일의 존재가 그러했다. 조금 더 사랑받고 조금 더 이해받았다면 무언가 달랐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땐 아무것도 쉽지 않았고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았다. 늘 모든 것들이 최선이었다. 몇 번의 생일을 더 보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흔들려야만 하는 순간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러한 순간들은 필연적으로 괜찮아진다는 것을. 정확히 28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오늘, 깨닫게 되었다.
겨울의 바람은 세게 불고 내 안의 바람도 거칠게 부는 계절이 왔다. 하지만 이제 더는 외로움에 허덕이지 않으리라. 내 몫의 외로움을 잘 감내해 내는 어른이 되리라. 옷을 여미듯이 마음도 여미어 감정들이 줄줄 새어 나가지 않게 잘 다루어내는 능숙한 어른, 그런 어른이 되리라. 불어오는 바람이 차가웠다. 한겨울에는 여름을 상상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이해하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또 그런 어른이 된다면 누군가에게 이해받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이해받기 위해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준 만큼 받고 싶어 하는 존재들이기에. 받기 위해 먼저 주어야 한다면 기꺼이 먼저 내어주는 어른이고 싶었다. 버스는 한참을 기다려서야 도착했고 기다린 시간이 무색할 만큼 빠르게 사람들을 싣고 떠났다. 풍경들이 바뀌었고 버스는 정거장마다 멈추어 섰다. 멈추어 서는 거리마다 사람들이 오르고 내렸다. 찬 바람이 들어왔고 나는 문득 메모장을 켰다. 한 해의 소중한 순간을 기록할 글을 적기 위하여. 28번째 생일의 절반이 지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