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하디 흔한 코로나 확진자의 이야기
나만은 영영 비껴갈 것 같던 코로나에 걸리고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다. 코로나 청정 구역이었던 우리 가족은 나의 증상을 시작으로 아빠, 엄마, 동생까지 연이어 확진을 받으며 사이좋게 모두 일주일 격리 판정을 받았다. 우리는 매일 같이 굴려오던 일상으로부터 격리되어 시간의 섬에 갇혀버렸다. 일주일을 집에만 있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지루했고 또 생각보다 답답한 일이었다.
매일 같이 목이 아팠다. 그건 마치 울음을 목구멍 끝에 삼키고 살던 시절의 고통과도 비슷했다. 울음은 아니었지만 또 다른 무언가를 목구멍에 삼키고 매일 콜록거렸다. 온 집안이 식구들의 기침 소리로 가득했다. 다른 이들의 고통도 나의 것과 비슷한 질감 일지 궁금했다. 목에 좋다는 도라지 배즙을 주문해 먹었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인터넷으로 주문을 하거나 배달을 해야만 했다. 직접 나갈 수 없다는 작은 제약이 일상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우리는 냉장고 파먹기를 시작했다. 매일 밥을 먹는 것이 고역이었다. 입맛이 없었지만 약을 먹기 위해 밥을 먹어야 했고 밖에 나가질 못해 식재료는 날이 갈수록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평소엔 잠만 자는 공간일 뿐이었는데 모든 일상을 집에서 해결하려고 하니 집이란 공간이 너무나도 비어있었다. 예고 없는 격리는 모두를 조금씩 갉아먹었다.
처음으로 햇빛을 보고 싶다고 느꼈다. 따뜻한 햇빛 아래 산책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코로나 블루가 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낙엽을 밟고 싶었다. 발 밑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질감을 느끼며 걷고 싶었다. 네 가족의 일상이 불어나 집 안은 점점 팽창하고 있었다. 탈출구가 필요했다. 모두가 바깥의 공기를 원했다. 환기를 시킬 때마다 조금씩 차가워져 가는 바람이 아쉬웠다. 도둑맞은 일주일 동안 세상은 얼마나 바뀌어 있을까.
어느덧 격리를 끝내고 맞이하는 오랜만의 출근길. 날씨는 어느새 완연한 겨울이 되었고 발 밑의 낙엽은 모두 바스러져 있었다. 너무 많이 밟혀 부스러기가 되어버린 낙엽들을 보면서 내가 없었어도 세상은 부지런히 흘러갔음을 실감했다. 출근길의 모든 것들이 새로웠다. 이를테면 사람이 가득한 지하철이나 테이크 아웃하는 아메리카노, 오랜만에 앉는 사무실의 내 자리 등. 내가 원래 속했던 곳. 내가 원래 있어야 할 자리. 존재는 부재를 통해 증명된다고 했던가. 뻔한 굴레가 지겨워질 때쯤 빼앗긴 일상 덕분에 소소한 삶의 소중함을 깨달았던 일주일이었다. 이젠 어디로든 가자. 세상 속으로.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어디든 가자. 멀리멀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