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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의 글쓰기

브런치 작가 도전기

by 이도연 꽃노을




알고리즘을 타고 표류하기



어렸을 적부터 초저녁 잠이 심했던 나는 9시가 되면 잠이 쏟아진다. 그러나 졸린 눈에 불을 켜고 한두 시간이라도 나의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육아와 양육을 하는 엄마에게 아이가 잠든 시간은 자신의 시간을 온전히 나에게 쓸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이 기다리는 육퇴시간... 육퇴도 그나마 아이가 유치원생은 돼야 가능한 일 같다. 아이들이 잠든 시간에 나는 특별히 하는 게 없었다.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고 표류하다가 흥미 있는 내용이 나오면 보다가 잠드는 게 전부이지만 정말 금쪽같은 시간이다.



올해 3월쯤 유튜브를 보다가 우연히 브런치 스토리에 대해 알게 되었다. 처음엔 브런치라고 해서 아점에 먹는 휴일의 브런치를 떠올렸다. 하지만 우연이 클릭해서 본 유튜브에는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세상 이야기에 대해 나오고 있었다. 브런치 작가가 되는 방법과 초보자 글쓰기에 대해 실제 브런치 작가님(일과 삶님)이 친절하게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는 방법부터 브런치 기본 사용법에 대해 설명한 유튜브를 보았다. 그리고 브런치 선배 작가들이나 도전을 꿈꾸고 있는 사람들까지 여러 영상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쉬워 보였으나 브런치 삼수생 작가들의 유튜브를 보니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그렇게 도전할까 말까 망설이던 중 난 또 하나의 기가 막힌 유튜브를 발견하게 된다. 바로 25년 기록학 전문가 김익한 교수의 유튜브였다. 기록을 하는 방법과 메모를 하는 습관이 얼마나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 알게 되었다. 김익한 교수님의 잠자기 20분 기록하고 메모하고 적는 습관을 일단 해보기로 했다. 처음엔 단조로운 주부의 일상에 쓸 글감이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도 했었지만, 사소롭고 별일 아닌 것부터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오늘 먹은 것, 산책하다가 생각난 것, 그리고 아이를 키우면서 알게 된 일상을 적었다. 그리고 김익한 교수님의 책을 읽고 기록하고 메모하기에 대한 기법을 시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달간을 빼놓지 않고 매일 하니 제법 책을 읽는 속도도 예전에 한 참 소설책을 읽었던 때만큼 속독을 하면서 중요내용은 더 잘 기억하게 됐다. 요약하며 쓰기, 이해해서 내 것으로 소화해서 내 방식대로 표현해 보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머릿속에 각인된 것으로 글을 써보기는 여태껏 아무도 내가 가르쳐 주지 않은 글쓰기 방법들이었다. 그렇게 나의 기록과 메모는 점점 문장이 되어갔다.







설레는 도전



학창 시절 많은 백일장에도 나가 상도 타보고 시도 쓰는 글 쓰는 것에 진심인 소녀였지만 이렇게 체계적으로 글을 쓰는 방법들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 다시 처음 학생으로 돌아간 것처럼 재미있고 설레기까지 했다. 그리고 나는 2주간 내가 살아오면서 잊혀지지 않았던 순간들을 소재로 글을 썼다. 브런치 작가가 되려면 심사를 받아 된다는 점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2주 동안 열심히 쓴 글이 어떤 수준인지 알아볼 수 있는 기회였다. 물론 브런치 작가가 된다고 나의 필력이나 글 실력을 인정받는다는 생각보다 뭔가 소재나 나의 삶의 대한 이야기를 쓸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는 점이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나만의 비밀 아지트가 생기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심사를 통과해야 가능한 것이었다. 4월 말쯤에 작가 신청을 하고 최종 5월 2일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남편은 당연히 심사에 한 번에 통과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는지 한 번에 통과하면 노트북을 사주겠다는 거한 상품도 내걸었다. 약 올리듯 건 상품에 약간 자존심이 상하긴 했지만 내가 생각해도 한 번에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브런치에서 합격 통보 이메일을 들고 제일 먼저 남편에게 달려갔다. 남편은 몇 분 동안 얼음이었다. 하지만 나는 쿨하게 말했다. " 노트북은 안 사줘도 돼. 내가 출간 작가가 되면 그때 내가 내 돈으로 살래 "라고 말했다. 물론 안다. 출간 작가가 되기 얼마나 힘이 든 지. 그리고 출간을 해도 내가 원하는 애플 노트북은 살 수 없다는 것을... 우연히 유튜브 알고리즘을 보고 도전한 글쓰기로 브런치 작가에 합격하다니 매일 일상이 그날이 그날 같은 나에겐 단비 같은 이벤트였다.






쫄지 말고 닥치고 쓰기



프로필에 넣을 사진과 필명을 정하고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다가 다시 한번 주눅이 들었다. 다양한 직업군이 모여 있는 브런치 작가들이 쓴 글에는 각자 살아온 삶들이 개성 있는 문체로 표현되어 있었다. 내가 브런치 작가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어느새 독자가 되어 여러 작가들을 글을 읽었다. 공감되는 글도 많았고 내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에 새로운 동지들이 생긴 것처럼 마음이 뜨거워졌다. 5월 2일부터 9월 4일인 오늘까지 약 4개월 동안 나는 141개의 글을 썼다. 완벽하지도 않으면서 완벽함을 추구하고 확신이 없으면 도전하지 않는 나의 성격과는 다르게 나는 마구 끄적이기 시작했다. 글을 발행하고 독자들이 읽는다는 점을 감안해서 더 심혈을 기울여 써야 하지만 나의 망상거리고 결정장애인 성격으로 완벽한 글을 쓴다면 1년이 지나도 한 꼭지도 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한 줄 쓰고 고치고 한 줄 쓰고 고치고 하다 보니 시간도 오래 걸렸지만 도대체 완성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래서 모든 걸 훌훌 떨쳐 버리기 위해 닥치는 대로 썼다. 그래서 아직 부족하다. 하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나는 매일 쓰고 있고 매일 어제 보다 나은 오늘을 보내고 있다는 확실히 들기 때문이다. 정확하진 않지만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말했다고 전해지는 '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를 외치며 나는 닥치는 대로 쓰고 실행에 옮겼다. 때로는 독자들에게 미안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이게 내가 발전해 나아가는 중이기에 뻔뻔하게 계속 진행할 것이다. 누구에게는 출간 작가도 아닌 카카오에서 운영하는 브런치 스토리에 글을 올릴 수 있는 개인 게시글 창이 생긴 것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번아웃에 육아에 지켜 자신을 잃어가는 경단녀들에게는 좋은 경험이다. 그리고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말에 더욱더 공감하게 되었다. 침대와 붙어서 한 몸이었던 내가 콘텐츠를 소비하는 입장에서 생산해 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에 다시 쓸모 있는 인간이 되었다는 생각에 눈물이 날 지경이다. 육아에 지쳐 나의 빛을 점점 잃어가는 경단녀들에게 감히 제안한다. 글쓰기로 다시 자신의 빛을 찾아보시라. 자신스스로에게 경단녀에서 작가라는 타이틀 하나를 가슴에 달아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앞으로 여러분이 걸어가는 그 길에 작은 응원과 희망의 빛이 되어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미지 출처: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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