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나를 절대 잊어버렸을 리 없어...
연락을 좀처럼 하지 않던 큰삼촌의 전화번호가 스마트폰 창에 뜨면 반가움 보다 가슴이 덜컹한다. 이번에도 그랬다.
전화벨이 울리고 받자마자 난 뭔가 일이 터졌다는 것을 직감했다.
" 할머니가 치매에 걸리셨어... "
나의 첫마디는 " 누구누구 알아보실 수 있어? "였다.
" 나랑, 막내랑 만 알아봐 "
" 그래? 설마 나는 당연히 기억하시겠지. 내가 할머니 뵈러 갈게. 어디로 가면 돼? "
" 할머니 나 왔어..." 난 개명 전 나의 원래 이름을 대고 할머니에게 떨리는 마음으로 말을 걸었다. 그러나 할머니 입에서 튀어나온 이름은 우리 엄마 이름이었다. 나는 처음에 엄마는 기억하네? 나는 못하고? 하고 생각했다. 그렇다. 할머니는 내가 자신의 딸인지 손녀인지 구분도 안 가시는 것이며 딸도 나도 못 알아보시는 거였다.
나는 믿기 힘들었다. 난 속사포 랩을 하듯이 30년이 훨씬 넘는 이야기들을 할머니에게 이야기했다.
" 남편한테 잘하고 서로 잘살아라." 전혀 문맥에 맞지 않는 대답이 돌아오고 난 면회실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러기도 잠시 할머니가 곡끼를 거부하고 끊으신 상태라고 했다. 나는 다시 일어나서 내 이름을 말해주고 할머니가 나를 알아보든 말든 일단 뭐 좀 드시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할머니, 아직 이빨도 튼튼해서 나만큼 고기 잘 씹어 드시잖아. 고기 좀 싸올까? "
" 나 여기 두고 죽으라고 가둔 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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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소통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난 쉽게 포기하기 싫었다. 나와 같은 기억을 공유하는 유일한 사람이 기억을 잃어버리고 나를 못 알아본다는 것은 더 이상 내 삶과 상처의 목격자가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엄마도 아빠도 모르는 것을 할머니는 다 알고 함께 그 시간을 견뎠는데...
할머니가 나를 계속 딴 사람이름으로 불러도 나는 계속 내 이름을 되새겨 주었다. 이번이 아니면 다음에는 기억이 나면 되니까.
큰삼촌과 엄마는 나의 그런 모습이 더 안타까웠는지 별말 없이 앉아계셨다. 나는 지갑을 들고 면회실을 나와 편의점으로 달렸다. 눈에 보이는 것을 대충 장바구니에 담아 계산을 하고 다시 면회실로 돌아왔다.
" 지혜야, 할머니 잘 못 드셔. 뭘 그렇게 많이 사 왔어. "
큰삼촌이랑 막내 삼촌이 먹여 보려고 이미 많은 노력을 하셨다고 했다.
" 아니야. 할머니는 내가 주면 드실 거야. 그리고 나를 기억하게 될 거야! "
나는 얼른 할머니가 좋아하시던 포도 주스를 따서 할머니에게 내밀었다.
" 할머니 포도 주스 기억나지? 나도 포도 주스 좋아하잖아. 할머니가 좋아하는 포도 주스 내가 사 왔어. 마셔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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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초가 지났을 까? 할머니는 포도 주스를 보면서 이렇세 말씀하셨다.
" 나 이거 좋아하는데 아무도 안 사다 줘서, 저번에 경애네( 옆집 슈퍼) 내가 가서 한 병 사가지고 가바에 감춰서 들고 왔어."
" 왜 숨겨서 가져왔어? "
" 나 늙은이가 애들처럼 포도 주스 먹는다고 할까 봐 누가 흉볼까 봐... "
" 아무도 흉 안 봐. 할머니, 지금 먹자 나랑 짠하고 먹자! "
난 포도 주스 두 개를 따서 하나는 할머니 손에 쥐어드리고 하나는 내가 마시려고 들었다.
순간 집중력이 떨어지시는지 자꾸 딴말을 하는 할머니 손을 잡아서 나는 왜 쳤다.
" 건배! 짠~~ "
이윽고 잔소리가 나고 할머니가 포도 주스를 마셨다.
" 아이고 우리 할머니 착하다. 잘 먹으니까 너무 행복해. 계속 잘 먹고 있으면 내가 우리 아들 데리고 할머니 보러 또 올게. "
" 너 아들 있어? 아들들 낳아도 소용없더라 포도 주스 안 사다 주더라..." 그 말에 큰삼촌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거기서 면회하는 모두 할머니가 뭐를 드셨다는 것이 감격스러웠다.
" 할머니 뭐가 젤 먹고 싶어? "
" 나? 고구마 "
고구마는 없고 카스테라 사 왔길래 카스테라를 까드렸다. 모든 가족은 나와 할머니만 번갈아 보면 진짜 할머니가 저것까지 드실 것인가에 뭐든 관심과 신경이 쓰이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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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한 입 드셨다.
내 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희열을 느꼈다.
나를 기억을 못 하시긴 하지만 내가 준 음식을 할머니는 드셨다. 나는 뛸 듯이 기뻐서 목소리가 절로 커졌다.
" 고마워! 할머니. 먹으니까 너무 좋다. 잘 먹으면 집에 빨리 모시고 갈게 "
면회시간이 끝나고 할머니는 간병인 여사님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라졌다.
면회 장소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나는 그 제서야 눈물이 났다. 할머니가 나를 알아보지 못해서 그게 너무 두려워서 울고 내가 드린 음식은 크셨기에 다행이다 여기며 감사해서 울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찬안에서 모두 다 말이 없었다.
가슴이 구멍이 크게 나고 스산한 바람이 그 구멍을 매우며 지나가는 듯 마음이 시렸다.
' 할머니, 나 기억 안 나? 못 알아봐? 그럼 나를 키워주던 할머니의 기억 속에 나는 이제 더 이상 없네? '
' 내가 얼마나 밤에 불만 끄면 울어 댔고 할머니가 얼마나 은행 청소해서 번 돈으로 포도 주스를 사주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거네? ' 이런 생각들이 나를 머릿속을 꽉 채우자 나는 차라리 내가 기억을 살실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할머니,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내 아이를 낳고 보니 얼마나 아이 하나를 돌보는 것이 힘든지 잘 알아요. 예민하고 겁 많던 손녀를 부모대신 몇 년씩이나 거두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 말을 하기 전에 할머니가 날 알아보지 못하고 치매에 걸리신 건 할머니의 반칙이다.
나는 이제 그 어두운 시절의 기억과 추억을 누구와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할머니는 어쩌면 나를 키워주신 그 시절도 다 잊고 싶으셨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할머니 정도로 연세가 들면 그 선명한 기억들을 다 잊게 되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소망한다. 차라리 기억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시간이 지나 서로를 기억하던 한 사람의 기억은 치매로 인해 지워졌고, 나의 오늘은 30여 년이 훌쩍 지나도 선명한 기억에 마음이 저리다. 코끝이 따갑다.
난 어디서 나온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는지 모르지만 할머니가 나는 꼭 알아볼 것이라고 생각했다.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사이니까. 우린 그런 시절을 함께 보낸 기억 공유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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