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이 단절된 적이 없는 경단녀
신조어를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로 새로운 신조어를 만드는데 특출 난 재주가 있는 국민이 틀림없다. 삼귀다 (사귀기 전단계), 마상 (마음의 상처 줄임말), 내또출(내일 또 출근의 줄임말) 등 줄임말이나 신조어들들이 사용된다. 사회에서 규정하고 많이 사용하는 중임말로 나를 굳이 분류하라면 경단녀이다. 경단녀는 ' 경력단절여성'을 말한다. 결혼, 임신, 출산, 쉼 기타 등의 이유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을 줄여 말하는 단어이다. 최근에는 경단녀를 순화해서 경력보유여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듣는 경단녀는 기분이 좋을 리 없다. 경단녀가 되는 이유는 중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는 결혼과 더불어 여자의 숙명인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 때문이다. 나도 잘 다니던 대기업을 결혼과 동시에 남편과 동반 유학을 떠나면서 퇴사했다. 그때 우리 집은 반대는 어마어마했다. 들어가기도 힘든 대기업을 때려치우고 또 공부를 한다니 공부에 미친 사람이냐는 이야기까지 들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나는 결국 그렇게 내가 원하던 대기업에 합격하고 일을 하다가 돌연 남편과 결혼을 하고 동반 유학길에 올랐다. 뼈를 묻을 것 마냥 영혼을 갈아서 일하던 내가 한순간에 사표를 제출하자 동기들이나 다른 사원들은 내가 사고라도 치고 미국으로 도망하는 것이라고 웃지 못할 오해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그때 나의 대기업 퇴사를 후회하지 않는다. 부모님께서는 내 딸이 대기업 다닌 다는 것이 자랑이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대기업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은 매일 사표를 안주머니에 넣고 다닐 만큼 일과 인간관계에 시달렸다. 누구는 배부른 소리라고 할지 모르지만 평양 감사를 시켜준다고 해도 내가 싫으면 그만인 것이다. 그렇게 나는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다시 학생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15년 동안이나 사회에서 분류하는 경단녀의 삶을 살았다.
2024년 최저시급은 2023년 대비 약 2.5% 오른 9,860원인다. 그럼 기혼 여성이 가사노동과 육아를 한 주에 40시간을 한다고 가정하면 유급 및 주휴수당 8시간을 포함하면 2,010,580원인 셈이다. 그러나 가사노동과 육아 노동비는커녕 독박육아를 하는 여성들의 노고는 쳐주지 않는 분위기이다. 가사노동과 육아는 휴일도 퇴근도 없는데 말이다.
아이를 낳고 키워본 사람들은 안다. 임신 출산 육아가 얼마나 전문적인 일인지. 그런데 그 모든 노력을 경력 단절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경단녀 카테고리에 넣고 경단녀라 부르다니 경단녀란 단어가 달갑지 않다. 심지어 고구마 오만 개쯤을 먹은 듯하다.
육아 경력도 경력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고 하면서 점점 개인의 시간과 자유가 속박당하고 출산으로 변해버린 몸매와 뚝 떨어진 자신감으로 엄마들 스스로가 자신을 경단녀라 인정하고 부른다. 자신의 리즈시절을 돌이켜 보면서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와 비교하면서 절망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사랑해서 결혼했고 새로운 생명을 낳아서 기르는 것은 헛된 일이 아닌 매우 값진 일이다. 사회에 나가 제도 속에서 돈을 벌고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만 사람인가?
나는 내가 신입사원일 때 일을 똑똑히 기억한다. 여성 선임 디자이너가 임신을 했는데 아이를 낳기 일주일 전까지 회사에 출근하고 육아 휴직을 다 쓰지도 않고 회사에 나왔다. 그때 미혼인 나는 의아해했다. 아기가 한 참 엄마가 필요하고 엄마 찾을 시기인데 육아 휴직을 채워서 쓰는 게 낫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아이를 막 출산한 기혼인 선임 디자이너는 이렇게 말했다.
" 회사에 나와서 일하는 게 육아보다 백배는 더 나아. "
그리고 실제로 그 선임 디자이너는 자신의 대기업 월급을 몽땅 보모 비용으로 베이비시터에게 주었다. 나는 참 이해가 안 됐다. 내가 번 돈 거의 전부를 베이비시터에게 낼꺼라면 내가 애를 보고 회사를 쉬거나 관두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젠 나도 결혼을 하고 임신, 출산을 하고 나서 알게 됐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육아는 끝도 없고 누가 인정도 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인간 개인으로써의 성장과 꿈보다 한 가정과 아이의 엄마로 희생은 끝이 없다. 이렇듯 사회가 인정해 주지 않아도 이 세상의 모든 양육자는 우리 스스로는 우리의 전문성과 육아 경력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서히 우리의 힘듦을 서로 응원해 주고 인정해 주자. 그리고 아이가 얼마큼 컸다면 가사와 육아에 올인하지 말고 서서히 개인적인 시간을 갖자. 아이도 커서 어느 시점이 되면 부모보다 친구가 더 좋을 때가 온다. 남편도 남편 나름대로 사회생활을 한다. 우리 스스로가 일어서거나 나를 찾지 않으면 누구도 우릴 돌봐 주지 않는다. 아이 키우다 시간이 다 가고 젊음도 다 갔다고 우울해하지 말고 내 것을 찾자. 꼭 그것이 사회에 나가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닐지라도 우리는 오롯이 나만을 위한 일에 도전하고 경험을 쌓고 어제보다 성장한 나를 마주해야 한다. 그게 글쓰기이건 재 취업이건 혹은 취미활동이던 그 작은 경험들과 노력들이 만나서 나라는 사람을 다시 되찾는 의미 있는 일이 된다. 얼추 끝나버린 육아 경력을 내려놓고 참다운 나를 찾아서 새로운 것들에 도전해 보자.
나에게 스스로 기회를 주다.
누군가 나를 고용하지 않는다면 내가 나를 고용하고 기회를 주는 것도 방법이라 생각한다. 나는 그래서 2021년 9월 퍼플자몽이라는 1인 디자인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뭔가 거창해 보이지만 사업자 등록을 내고 1인 기업을 내가 만들었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그렇게 나를 경단녀라는 이름 속에 남겨 두길 거부하고 셀프로 나를 경단녀라는 카테고리에서 탈출했다. 그리고 다시 조금씩 디자인 외주일을 시작했다. 1인 디자인 스튜디오를 3년간 운영하면서 경험했던 많은 일들은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자산이 되기도 했다. 누구가 나를 재취업할 기회를 주길 바라는 대신 자신의 것을 도전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대기업에 디자이너 일 때와는 상반된 처우를 받는 신세가 됐지만 다양한 사고를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매일 새로운 일에 도전하면서 인생에 대해서 배운 것도 많다. 빨리빨리 나라에서 크몽 디자인 전문가로 일하면서 만났던 독특했던 외뢰인들의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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