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 아웃에서 벗어나게 해 준 개명이라는 자극제
대한민국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약 한 달 전 나는 개명을 했다. 개명하는데 판사보다 더 설득하기 어려웠던 사람은 의외로 남편이었다. 이유인즉슨 가족관계 증명서나 혼인신고서에 다른 여자 이름이 적혀 있는 것 같아서 쫌 그렇다고 했다. 의외로 이해해 줄 것 같은 남편의 반대였다. 개명하는 문제로 23년 올해를 시작하면서 남편과 삐걱거렸던 것도 사실이다. 한 편 그럴 수 있겠다 생각이 들면서도 내가 이름을 바꾸고 싶다는데 왜 반대인가 싶었다.
헌법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쓰여있다. 난 초등학교 때부터 내 이름이 행복하지 않았다. 너무 흔한 이름이라 한 반에 꼭 두세 명씩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지혜 1 지혜 2 그렇게 부르기도 하고 지애도 있었고 헷갈릴 때가 많았다. 50년대 미자 혹은 60년데 은숙같은 유행에 타는 이름이었는지 유난히 내 학창 시절에 지혜라는 이름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지혜, 지영, 지선이가 우리 시대의 유행의 이름이었던 것 같다. 이 이름을 내게 준건 우리 엄마였다. 우리 엄마가 중학교이던 시절에 나중에 커서 여자 아이를 낳는다면 '지혜'라고 지을 꺼라 생각하셨고 엄마는 그 어렸을 때 자신과 한 약속을 굳건히 지킨 것이다.
내 국민학교 시절 (현 조등학교)에는 지금도 마찬가지 지만 이름으로 별명을 만들어 놀리기도 하고 그 꼬리표기 오래갔다. 내 경우에는 아이들이 놀린 건 아니지만 내가 실수만 해도 가족 친지 분들은 이름대로 지혜로워 지길 강요했다. 지혜로운데 왜 그랬을까? 지혜롭게 하면 되지 등. 아마 대학로나 명동에서 지혜야! 하고 부르면 서너 명은 뒤돌아 볼 이름이라고 생각해서 이름이 대한 콤플렉스가 심했다.
행복추구권을 사용하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매년 개명하는 인구가 16만 건이나 된다고 한다. 개명을 하는 사유도 그만큼 가지 각색이었다. 범죄자 이름과 동일하여 개명하는 사람부터 한 때 유행하던 순우리말 이름을 잘 사용하다가 나이를 먹었는데 나이가 연령에 맞지 않아서 바꾸는 사례도 보았다. 예를 들면 '두빛나래','아롱별' 처럼 뜻과 소리가 이쁘지만 병원등에서 진료 시 이름이 불렸을 때 창피하다고 바꾸시는 분들도 계셨다. 이렇듯 개명을 하려는 이유는 각자 다양하고 사연도 다양하다.
작년 연말 크리스마스 때 나는 내 생에서 제일 큰 수술을 했다. 대학병원에서 수술하려고 대기 중인데 동명이인이 같은 날 같은 수술을 받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혈액형 지병 등의 체크를 두세 번 다시 해야만 했다. 나는 그때 생각했다. 몸이 아픈데 이름 때문에 딜레이 되는 것 같은 느낌? 사실 아프고 억울하고 심란한 마음을 이름 탓을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20년 전 대학생 때도 이름을 바꾸려고 알아봤지만 그때만 해도 이름을 바꾸는 것이 어려웠다. 판사가 개명 신청 사유가 타당한지 판결을 내리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개인의 행복 추구권을 보장받을 수 있어서 웬만으면 무리 없이 개명이 된다.
사람들은 그 이름으로 오랫동안 살았는데 이제 와서 왜 바꾸냐고 묻는 사람도 많았지만 나의 생각은 달랐다. 이름은 죽어서도 남게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나는 남편을 설득하게 됐고 남편도 드디어 동의를 한 것이다. 그러면서 남편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 네가 정 개명하고 싶으면 해라. 시간을 두고 생각을 해보니 성전환 수술을 한다는 것도 아닌데 이름을 지어 봐라"라고 말했다. 예상하지 못한 말에 난 푸하하 폭소가 나왔지만 난 그렇게 개명 신청을 하고 약 한 달 반 만에 개명 허가서를 받고 법적으로도 이름을 바꿨다.
번아웃에서 벗어나다.
누구의 딸로, 직원으로 그리고 누구의 엄마로서 살아오다 개명을 하면서 이름을 많이 쓰고 바꾸고 사용하게 되니 내게 새로운 희망과 힘이 생긴 것 같았다. 경단녀라고 혼자 꼬리표를 붙이고 무기력한 생활을 하던 내게 좋은 변화로 다가왔고 난 그 힘으로 브런치 작가에 도전에서 한 방에 작가가 됐다. 나는 어떤 특정이름을 비하하거나 그럴 생각은 없다. 하지만 내 삶에 지혜로 살아오면서 겪었던 안 좋은 일까지 지워지는 것 같아서 좋았다. 그리고 자신감이 생겼다. 내게 다시 생기가 생겼다. 어쩌면 내게 필요한 건 개명이 아니라 번 아웃된 나의 에너지를 한방에 채워줄 무언가의 자극제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 번에는 개명이라는 행복 추구권 찬스로 나는 나의 일상의 활력소를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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