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의식은 1초당 8만 개가 넘는 정보를 처리한다. 매일 아침 행진하라는 당신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조력자가 8만 명이 있다는 의미다. 뇌가 당신의 삶을 보다 더 아름답고 쾌적하게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1초마다 8만 번씩 찾아본다면 삶이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생각해보라
-클라우스 베른하르트 지음, 이미옥 옮김<어느 날 갑자기 공황이 찾아왔다> 흐름출판-
친한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언니, 저 공황장애예요. ……여차여차해서……이러이러하고…… 어쩌면 좋을까요?”
통화 내용과 달리 밝은 목소리였다. 절박한 상황에도 내게 부담을 줄까 조심하고 있었다. S는 감정을 자제하려 애썼다. 그녀는 그런 사람이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타인을 배려하는, 무너지는 마음을 위태롭게 붙잡고 있으면서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 늘 따뜻하고 상냥했다.
S는 최근 두 번이나 응급실에 실려 갔었다. 그럼에도 진행하던 재판을 걱정했다. 자신의 사임으로 사건을 대신할 변호사와 관련자들의 어려움을 염려했다. 그녀의 책임감은 높이 살만 했지만 나는 그녀 자신을 보호하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소송업무를 할 당시가 떠오른다. 언젠가부터 소송서류에서 공황장애 진단서를 보는 경우가 잦아졌었다. 원고의 손해를 입증하기 위한 증거나 피고인의 정상 참작을 위한 참고 자료로 제출되기도 했다. 지난한 소송 과정에서 공황장애가 생긴 분을 보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공황을 경험했다.
공포에 휩싸인 당사자로선 당혹스러운 일이지만 공황의 입장에선 하루아침에 짠하고 나타난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내면에 차곡차곡 쌓인 긴장과 불안이 역치를 넘는 순간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공황이다. 공황은 자신의 직감을 지속적으로 무시할 때 잠재의식이 보내는 마지막 경고신호다. 작은 신호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똑같은 삶을 유지하면 죽을 것 같은 공포가 엄습한다.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으니 내 말을 들으시오!”가 공황의 본질이다.
문제는 두려움이 사고의 패턴으로 자리 잡게 되면 공포가 자동 반복된다는 점이다. 공황과 이별할 방법을 찾다가 클라우스 베른하르트가 쓴 ‘어느 날 갑자기 공황이 찾아왔다’는 책을 보게 되었다.
클라우스는 두려움과 손절하기 위해 우선 공황을 질병으로 보지 말고 다만 자신이 잘못된 환경에 처해있음을 인식하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에게 하는 거짓말을 알아차리고 자신에게 솔직해지면 삶에 필요한 변화를 시도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그밖에 긍정적인 삶의 느낌을 저장하는 시냅스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뇌를 재프로그래밍하도록 권한다.
나는 그가 공황을 바라보는 관점과 생물학적으로 접근한 치료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잠재의식은 1초당 8만 개가 넘는 정보를 처리한다. 매일 아침 행진하라는 당신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조력자가 8만 명이 있다는 의미다. 뇌가 당신의 삶을 보다 더 아름답고 쾌적하게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1초마다 8만 번씩 찾아본다면 삶이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생각해보라”는 문장을 읽을 땐 가슴이 뭉클했다. 8만 명의 조력자가 있다는데……무엇을 못할까. 생각만으로 든든하다.
다시 S에게로 돌아가 보자. 공황이 오기 전 S에게 여러 증상이 있었다. 각종 염증에 시달렸고 늘 피로했다. 내가 보기엔 S가 타인에게 건네준 그 모든 배려는 자신에게 먼저 제공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S는 의무가 앞섰다. 이타적이고 모범적인 삶을 살았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내면이 하는 말을 들어보라고 했다. 가지가지 변명을 대가며 자신을 설득하는 이성이 아닌, 진짜 솔직한 자신의 마음을 보라고.
그녀에게 한 말은 나에게도 해당됐다. 책에 따르면 내가 겪은 현기증이나 벌레 기어 다니는 느낌도 공황 증상의 일부였다. 나는 나에게 솔직했던가.
세상에나! 나의 내면은 이렇게 소리쳤다.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니? 날 좀 이대로 놔둬.”
그러고 보니 나는 지금껏 단 한순간도 나를 인정한 적이 없었다. 나는 늘 내가 부끄러웠다. 더 용기 있는, 더 사랑이 넘치는, 더 마음 넓은, 더 능력 있는, 더 건강한, 더 적극적인, 더 평온한 내가 되길 바랐다.
더! 더! 더! 채찍질하며 자신을 모질게 대했다.
내 삶에도 변화가 필요했다. 이참에 나도 매일 아침 8만 조력자들에게 요청하기로 했다. “지금 이 순간에 뿌리를 내리자. 나는 지금의 나로도 충분하다”라고. 더 이상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나를 갈구하지 않도록, 오늘을 내일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도록…… 단단히 결심해 본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공황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몸과 마음의 필사적인 노력이다. 이를 잊지 않기 위해 책에서 여러 번 인용된 아인슈타인의 말을 상기해 본다.
“바보 같은 짓 가운데 그야말로 최고봉은 항상 똑같은 행동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