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작가 삼락

작가 이락

문학상 공모

by 바람

천지가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듯 작업실에도 가을이 찾아왔다. 일락이가 자신의 몸 일부를 하나씩 베란다 바닥에 떨어뜨린다. 처음 키워보는 낙엽수라 겨울을 준비하는 모습에 가슴이 저릿저릿하다. 첫 만남에 사슴뿔 같던 것이 어느새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지고 하며 다채로운 시간을 선물하더니 다시 사슴뿔로 돌아가려 한다. 마디마디 수문을 닫기 위한 떨켜가 존재감을 드러냈다. 나는 겨우내 일락이의 침묵을 지켜볼 예정이다.

오랜만에 일락이의 안부를 전하는 이유는 작가의 두 번째 즐거움, 집중적인 글쓰기의 보람을 소개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작가 二樂을 언급하기에 앞서 여러분의 심장에 무리가 없길 바라는 마음에서 고백부터 하겠다. 문학상 공모라는 소제목에 오해하지는 마시라. 아직 등단의 꿈을 이루진 못했다. 다만 공모 준비 과정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실망하셨는가? 흑흑. 나도 실망했다. 준비된 자만이 영광을 누린다는 것을 깨닫고 당분간 공모전 참가는 삼갈까 생각 중이다.


내가 응모한 곳은 ‘삶의향기 동서문학상’이다. 공모를 하게 된 계기는 이름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요즘 나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가 ‘어떻게 살 것인가’였고 향기 나는 삶이란 상상만으로 설렜다. 동서 커피를 잘 나타내기 위한 의도에서 만들어진 표현 같지만 ‘삶의 향기’를 보는 순간 앗! 이거다, 라는 기분이 들었다.


더욱이 응모 자격이 여성에게만 주어진다는 장점도 있었다. 경쟁력 측면에서 작가의 반을 이미 제쳤다는 얄팍한 계산이 가능했다. 대상과 금상에게는 등단의 특전도 주어졌다.


나는 단편소설 하나와 시 다섯 편을 응모했다. 단편소설은 A4 9장 분량으로 맞췄다. 글을 쓰는데 총 두 달 남짓 시간을 들였다. 여기에서 작가의 고통이랄지 즐거움이랄지 애매한 상황이 벌어졌다.

초고는 이틀에 걸쳐 썼다. 언제나 첫 독자인 동생 Y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글쎄, 라는 반응이 왔다. 뭔가 소설 같지 않다는 평을 받았다. 소설 같은 소설을 고민하다 집 근처 공원 리모델링에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주인공이 공원의 변화와 더불어 내면의 변화를 겪는 식으로 바꿔보기로 했다. 대략 일주일 정도 초고를 고쳤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할만했다. 그러나……


퇴고의 과정은 말도 못 할 만큼 힘들었다. 이건, 뭐, 정말이지, 할 짓이 못된다.


나는 소설 쓰기에서 에너지의 8할을 퇴고에 쏟아부었다. 단편 소설의 퇴고 과정을 비유하자면 ‘이상한 나라의 백 미터 달리기’로 볼 수 있다. 목적지는 눈앞에 보이는데 그곳으로 곧장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한발 앞으로 내딛고는 그 자리에서 열 번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다음 걸음이 앞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제자리로 되돌아가 다시 열 번 앉았다 일어선다. 이런 행태를 무한 반복하는 것이다. 벽돌 쌓기로 빗댄다면 한 장 얹고, 얹은 걸 빼고, 다시 한 장 얹고, 다른 자리에 얹고, 다시 빼고, 원래 자리에 다시 얹고…… 벗어날 수 없는 굴레에 갇혀 영겁의 세월을 보내는 느낌? 시시포스의 형벌. 딱 요런 상태가 된다.


첫 소설을 써놓고 엄살을 심하게 떠는 것 같지만 퇴고 기간 동안 남편은 나를 가리켜 양극성 정동장애라고 했다. 나도 이 단어에 격하게 동의하는 바이다. 한 치의 섭섭함도 없다. 지나친 고통을 견디기 위해 나는 소송사건 처리보다 낫다는 자기 암시와 매일의 요가를 금동아줄처럼 붙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상 공모를 작가 이락으로 꼽은 이유는 글을 쓰는 동안 내면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쓴 글로 내가 위로를 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소설 속 주인공이 나의 슬픔을 달래주었다. 물론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치유의 힘을 갖지만 공모하게 되면서 치열했던 것이 좀 더 강렬한 효과를 가져왔던 것 같다.


발표 날 주르륵 나열된 대상 금상 은상 동상 가작 입선까지 내 이름이 없었다. 주르륵 눈물이 날 듯. 호호. 하지만 비장의 맥심상. 동서식품은 역시 맥심이지. 수상내역 더 보기를 누르면 내 이름이 나온다.

고시 합격자 발표만큼 짜릿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꺄아악 소리를 질렀다. 누가 봤으면 정말 미쳤다고 생각했을 거다. 부상으로 맥심 커피를 준단다. 격려 정도의 의미지만 이게 어딘가. 두 달의 고통은 안녕, 하고 사라졌다.


맥심상은 수상작품집에 수록되지 않기 때문에 자축의 의미로 간략히 소개하겠다. 주인공은 35세 수학교사다. 가정폭력 환경에서 자란 그녀가 학교폭력을 목도하면서 겪게 되는 정서적 어려움에 관한 이야기다. 그녀는 퇴근 후 공사 중인 공원에서 자신의 과거를 만나게 된다. 옆 그네에 나란히 앉은 과거와 대화를 나누며 앞으로 삶의 방향을 정하게 된다. 공원의 변화 모습은 그녀의 내면이 변화하는 것과 맞물려 간다. 그녀는 자신과의 관계뿐 아니라 타인과도 새로운 관계 맺음을 하며 성장한다.

부끄럽지만 대충 이런 스토리다.


주최 측으로부터 11월 말에 상장과 부상을 보내준다는 전화를 받았다. 누군가의 생명을 구한 커피믹스가 나에게도 힘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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