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작가 삼락

작가 일락 1

첫 만남

by 바람

Y가 위문차 방문했다. 퀭한 눈빛에 푹 꺼진 볼을 하고 허접한 문장을 썼다 지웠다 무한 반복하고 있을 언니가 걱정됐던 모양이다. 먹을 건 안 사 오고 글쓰기에 도움 될 거라며 책을 몇 권 들고 왔다. 둘러볼 만큼 큰 공간도 아닌데 이곳저곳 열심히 살펴보더니 연신 좋네, 한다. 그러다 베란다 문을 열고는 호들갑을 떨었다. “사슴뿔처럼 생긴 저것은 무엇이뇨?”

사슴뿔?

그의 이름은 ‘일락’이다.

공자는 배우고 익히는 것을 기뻐하고, 벗의 방문을 즐기며,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는 성품을 높이 샀다. 공자의 충실한 계승자로서 맹자 또한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을 꼽았다(君子三樂). 부모의 생존과 형제의 무탈, 하늘과 사람에 부끄럽지 않은 것, 영재를 교육하는 것이다. 일락이라 하니 덕이 높은 여러분은 스승들의 고매한 뜻을 좇아 군자삼락 중 하나를 예상했겠지만 그렇게 깊은 뜻을 담지는 못했다. 일락이의 정체는 라일락이니까.

충동구매로 집필실에 배달된 상자. 박스에 붙여진 ‘식물! 절대 던지지 마세요!!’라는 빨간색 스티커 문구처럼 주의해서 다뤄야 할 듯했다. 그래서 고심 끝에 이름을 붙여주었다. 세상의 수많은 라일락 중 나만의 라일락이 된 그에게 어울릴 이름. 상상력이 부족한 나는 라일락에서 ‘라’ 자만 생략하고 ‘일락’이라 지었다. 어여삐 여기는 마음과 달리 허투루 지은 것 같지만 신기하게도 일락이, 일락이, 부르다 보면 운율이 맞고 발음이 착착 입에 붙는 게 아닌가. 게다가 머릿속에 一樂이 아른거리고, 심지어 一樂은 二樂을, 二樂은 三樂을 떠올리게 했다. 언어는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더니 군자뿐 아니라 작가에게도 세 가지 즐거움이 있지 않겠냐는 논리에 이르렀다. 그렇게 형성된 작가의 첫 번째 즐거움은 식물로 분류되는 생물의 관찰일지를 쓰는 것이다. 그다음 즐거움은 차차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 일락이에게 집중하자.

박스의 테이프를 떼어내면서 첫 소개팅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트 모양 잎사귀와 하늘거리는 연보라 꽃을 기대했다. 그런데 웬걸, 플라스틱 화분에 잎 하나 없는 앙상한 가지를 만났다. 나무 회초리처럼 민둥한 줄기만 있는 게 아닌가. ‘죽은 건 아닐까?’ 사기를 당했을지 모른다는 의구심을 떨치며 생존의 증거를 샅샅이 뒤졌다. 희망이 커서 헛것이 보이는지 가지 사이에 드문드문 짙은 갈색 점이 붙어있었다. 이것은 나무의 겨울눈을 싸고 보호한다는 아린일 수도 있겠다. 이러나저러나 나는 가드닝에 진심이었다. 죽은 나무 살려보자는 심정으로 예쁜 토분을 사서 분갈이를 했다. 뿌리가 잘 내리도록 흙을 꾹꾹 눌러주고 물도 담뿍 주었다. 동작 하나하나 진심을 담았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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