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시작

by 바람

힘든 감정으로 마음이 체했을 때 일시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약이다. 선생님은 약을 마음의 소화제라 불렀다.


약은 다리가 부러졌을 때 깁스로 환부를 고정해 두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해준다. 그러나 뼈가 붙고 나면 깁스를 풀고 재활에 들어가야 하는 것처럼 마음은 스스로 소화력을 회복해야 한다.


근본치료는 병이 생기게 된 원인을 해결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선생님은 원인을 찾기 위해 혹시 갑상선 기능에 이상은 없는지 피검사를 했다.


검사 결과 나는 특정 기관의 문제는 아니었기에 상담을 통해 치료를 이어 나갔다. 상담은 주로 선생님이 질문하고 내가 답하는 구조로 이루어졌다.


잠을 잘 자는가, 어떤 꿈을 꾸는가, 주로 어떤 기분을 느끼는가, 식욕의 변화는 없는가 등 일상의 질문부터 가족관계의 어려움이나 업무상 힘든 점과 같은 다양한 부분을 다뤘다.


나는 업무의 부담감, 부모의 희생에 대한 부채 의식, 잦은 죄책감에 관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일에 지나치게 가치를 부여하고 늘 부모에게 미안하며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시달리는 내게 선생님은 “우리 사회가 너무 실적 위주로 평가하죠. 한 인간의 일부인 실적을 전부인양 취급하죠”


혹은 “희생은 그걸 하게끔 하는 것도 선물을 주는 것입니다. 희생을 기꺼이 할 수 있는 대상이 되어 준다는 것은 그 자체로 가치 있습니다”라는 조언을 했다.


그 밖에 스트레스를 정신이 소화하지 못하면 몸이 함께 짊어져 건강이 나빠진다, 몸이 아픈 사람은 살려고 애쓰는데 마음이 아픈 사람은 죽음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이야기로 삶을 달리 바라보길 제안했다.

오래도록 뿌리 박힌 사고방식이 하루아침에 바뀔 리는 없었지만 나는 조금씩 마음의 힘을 키워나갔다.


그러다 선생님과의 신뢰가 쌓여갈 즈음 어릴 적 가정사가 화두가 되었다.


선생님은 내가 지나치게 부모님을 이상화하는 게 아닌가,라는 말을 했다. 선생님의 의도는 달랐겠지만 나는 가족에 대한 비판적 발언으로 받아들였고 몹시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이야기의 주제가 꼬꼬마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힘들었다. 아무리 좋은 선생님이라도 더 이상 정보를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살짝만 스쳐도 재빠르게 입을 다물어버리는 조개처럼 나는 마음의 문을 닫아 버렸다. 결국 선생님과의 인연은 거기에서 그쳤다.


약은 세로토닌 합성과 관련이 있다는 비타민 D로 대체되었기에 굳이 병원에 갈 필요도 없어졌다. 몇 년이 지난 후, 해결하지 못한 과거를 되돌아볼 운명에 처하게 되리란 걸 그땐 예상치 못했다(이 부분은 다음 기회에).

그렇게 선생님과는 안녕했지만 나는 치료 전반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선생님은 진심으로 환자를 대했고 꼼꼼한 진료를 했다.


증상에 따라 주사나 뇌자극 치료기의 도움을 받기도 했고 특별히 긴장할 때만 먹는 필요시 약을 처방받기도 했다.


선생님의 섬세한 처방이 있었기에 나는 우울씨를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토대를 세울 수 있었다.

‘한 달 만에 10킬로그램 감량’처럼 유혹적인 말로 꼬드길 수준은 아니지만 상담을 통해 인생의 첫 전환기를 맞이한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고, 이제껏 앞만 보고 달리며 마침표를 향하던 나의 삶에 쉼표를 찍어볼 용기도 가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운영하던 사무실을 닫기로 결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