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으로 우울증 자가 진단과 치료법을 검색했다. 개략적인 정보를 입수하고 회사에서 가까운 병원을 찾아 전화를 걸었다.
당일 초진은 어렵고 예약도 다음 주나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소송에서도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진단서를 드물지 않게 보았지만, 정신건강의학과가 이토록 호황일 줄은 몰랐다. 한주나 기다려야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웠다.
어쩔 수 없이 가능한 날짜로 시간을 정하고 병원을 방문했다. 일주일을 기다려 간 병원은 첫인상이 좋진 않았다.
나를 맞이한 건 권위적인 간호사와 벽걸이 티브이의 떠드는 소리였다. 접수를 마치고 불청객이라도 된 듯 한쪽 구석에 쭈그려 앉았다.
이미 차례를 기다리는 내원객 여럿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오가는 환자들은 미친 듯이 쾌활한 뉴스의 아우성과 달리 대체로 조용했고 발걸음이 느렸다.
그사이 전화벨이 빈번하게 울렸고 “대기 환자가 많아 오늘은 진료가 어렵습니다. 미리 예약해 주십시오.” 같은 딱딱한 응답이 반복되었다.
예약한 것이 무색하게 대기시간은 한 시간 반을 넘어갔고 나는 점차 피곤해져 그 자리에 눕고만 싶었다.
도대체 예약 시스템은 누굴 위한 걸까. 병원에 온 것을 후회할 즈음 내 이름이 불렸다.
여러 장의 심리 검사지를 받아 들고 작은 방으로 이동했다. 끙끙거리며 많은 항목의 질문지를 작성하고서야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드디어 의사 앞에 앉은 나는 두서없이 지껄였고 선생님은 차분히 경청하더니 약에 대한 설명과 함께 다음 면담 일을 지정했다.
그렇게 매주 한 번 병원을 방문했다. 여전히 대기시간은 길고 수시로 전화벨이 울렸으며 티브이는 소란스러웠지만 진료는 흡족했기에 나는 꾸준히 선생님을 만났다.
이번엔 치료 방법이 없다는 얘기를 듣지 않았고 경과에 따른 다양한 진료가 이루어졌다.
약은 일주일 단위로 처방받았다. 한 주간 복용 후 약의 종류와 양을 조절해 나갔다.
처음 약을 먹었을 땐 지나치게 졸렸다. 구름이 걷히듯 우울감이 사라져 마음은 편안한데 몽롱하니 현실감각이 떨어졌다.
피드백을 통해 수정된 약은 정신을 쨍쨍하게 만들었다. 글자가 선명하게 다가왔고 후루룩 일 처리를 할 수 있었다.
소송자료 검토가 곤란할 정도로 읽기가 힘들었는데 약 몇 알로 집중력이 돌아올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맑은 정신도 뭔가 거북했다. 작위적인 ‘정신 차림’의 상태는 일상의 내가 아닌 것만 같았다. 커피나 녹차를 마셨을 때의 순간적인 또랑또랑한 느낌이 하루 종일 지속되었다.
어느 쪽이든 치우치는 상황은 부자연스러웠다. 다시 수위를 조절해 약을 처방받았다.
그렇게 한두 달이 지나자 증상이 호전되었다. 그러나 약을 먹었다는 느낌이 계속되는 게 불편했다.
진통제를 먹었을 때 두통은 없지만 약 기운으로 볼 수 있는 얼얼하달까, 싸하달까 같은 감각이 있었기에 점차 아침 점심 약을 거르고 저녁 약만 복용하게 되었다.
저녁 약은 만족도가 높았다. 자리에 누웠다가 눈을 뜨면 순식간에 7시간이 삭제되었다. 수면의 질이 좋아지니 아침에 일어났을 때 몸이 개운했다.
식은땀을 흘리게 하던 악몽이 사라지고 누적된 피로가 풀렸으며 식탐이 줄었고 마음도 편안해졌다.
이렇게 많은 장점을 누렸으나 언제까지고 약에 의지할 순 없었다.
게다가 육 개월쯤 되었을 때 생리불순도 생겼다. 이 때문에 나는 비약물 치료와 함께 생활의 변화를 시도하게 되었다.
그러한 노력에 대해서는 앞으로 상술하기로 하고, 오늘은 “아프면 일단 병원에 가보세요”로 마무리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