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씨, 당신은 제 취향은 아닙니다만

by 바람

대체로 내 마음의 바탕화면은 쨍한 가을 하늘로 표현할 수 있다. 가끔 뽀얀 조각구름 한두 개를 첨가하거나 야트막한 언덕에 손톱보다 작은 들꽃의 군락을 그려볼 수 있다. 여기에 실바람이 부는 정도의 변주가 가능하다.


평화로워 보이던 이곳에 슬그머니 우울씨가 등장하면서 기본 컨셉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하늘의 톤이 바뀌었다. 장마철처럼 우중충하니 며칠째 흐렸다. 귀여운 꽃들도 빛바랜 모양으로 시들어갔다.


어? 이게 뭐지?


세찬 바람이 멀리서 먹구름을 데려와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나는 젖어드는 세상 속으로 침잠하고 있었다. ‘기쁨 충만, 긍정긍정’ 모드로의 전환이 어려웠다.


‘가끔은 이럴 수 있지’하며 그려려니 했다. 하지만 간혹 우울한 게 아니라 쭈우욱 짙은 연무사이를 거니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한 해 두 해가 흐르자 아무것도 하기 싫고, 너무 피곤하고, 만사가 무겁기만 한 일상이 되었다.


그즈음 하여 불면의 밤들이 찾아왔다. 줄곧 잠순이로 살아온 내게 수면장애라니…


잠을 잘 자지 못하면서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몸은 피곤한데 의식이 계속 깨어있었다.


눈을 감고 이리저리 몸을 굴려보아도 잠이 들지 않았다. 심장보다 다리를 높이는 게 좋다길래 쿠션에 다리를 올려도 마찬가지였다.


깊은 밤 홀로 정신이 말똥말똥한 채 어스름히 해가 뜰 때까지 누워있었다.


심심해서 중간중간 팟캐스트를 듣기도 했다. 재미있게 듣다가 운 좋으면 설핏 잠이 들기도 했는데, 오~ 마이 갓!


시험 치는 꿈을 꾸는 게 아닌가.


내용은 주로 종료 십 분 전인데 반도 못 풀었거나, 답안지 마킹을 잘못했거나, 시간을 착각한 나머지 작성 중인 답안지를 빼앗기는 상황으로 채워졌다.


맥락은 같은데 스토리만 살짝 변형한 악몽이 반복해서 나타났다.

그러다 눈을 뜨면 온몸이 땀으로 젖어있고 턱이 얼얼했다. 긴장으로 어금니를 꽉 깨물었던 것이다.


어쩌다 다른 버전의 꿈도 꾸었지만 괴롭긴 매한가지였다.


잠시 의식을 내려놓는 순간 무의식은 무거운 보따리를 이고 비탈길을 오르거나 잃어버린 신발을 찾으러 헤매고 다녔다. 이러니 잠을 자든, 못 자든 피곤했다.


덧붙여 수면장애와 짝으로 따라온 증상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불안이었다.


인신구속이나 재물 피해가 생길 수 있는 업무의 특성상 변호사들은 일반적으로 꼼꼼할 수밖에 없다. 작은 실수가 걷잡을 수 없는 결과를 빚을 수 있기에 일을 시작하면서 나는 체크, 또 체크, 한 번 더 체크하는 버릇이 생겼다.


여러 번 확인하는 습관이야 필수적이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그 정도와 범위가 문제였다.

확인하고 또 확인해도 불안이 수그러들지 않아 강박적으로 재차 확인하는 상태가 되었다.


새파랗게 질릴 것 같은 감각이 주위를 맴도는 것 같았고 급기야 ‘이렇게 일을 벌여놓고 갑자기 내가 죽기라도 하면 이 사건들을 어쩌지?’ 같은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불안은 ‘소송이 잘못되면 어쩌나?’에서 ‘집에 불이 나면? 운전 중 사고 나면?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남편이 죽으면?’으로 시시각각 모양을 바꿔서 나타났다.


결국엔 (뭔지 알 수는 없지만) 안 좋은 일이 벌어지고야 말 거라는 망상의 수위에 이르렀다.

내가 제일 싫어하고 힘들어하는 불안에 이어 이번엔 슬픔이 찾아왔다. 지진이나 참사가 벌어지기라도 하면 극도로 슬퍼하고 심리적으로 위축되었으며 충격의 후유증이 지나치게 컸다.


슬픔을 가슴에 달고 사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여기서 그쳤다면 나는 적당히 적응하며 살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울씨는 이웃사촌인 무기력, 수면장애, 불안, 슬픔 외에도 친구가 많았다. 경쾌한 발걸음으로 다가온 다음 타자는 우울씨의 절친, 공황이었다.


공황은 파급효과가 상당했다. 나는 뭐라도 큰 사고를 칠 것만 같은 심각한 두려움에 빠졌다.


문득 다리 때문에 병원에 갔던 순간이 떠올랐다. ‘치료 시기를 놓쳐서 해줄 게 없다’ 던 의사의 차가운 목소리가 고막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