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에 걸리는 원인이야 제각각일 테지만 나는 타고난 성향과 신체 상태, 직종의 특성이 뒤엉켜 우울씨와 만나게 되었다.
시초는 로스쿨 다닐 때로 멀리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1학년 1학기 기말고사 기간에 다리를 다쳤다. 심하게 다친 게 아니라서 병원에 가지 않았다. 원체 다리가 건강한 편이었고 젊은 시기였기에 금방 낫겠거니 했다. 시험 기간과 맞물려 바쁘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지지부진 불편함이 지속되었다. 그럼, 이때는 병원에 갔을까?
안 갔다. 나는 치기 어린 젊은이였다. 앞으로 십 년 넘게 몸으로 고생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이후 같은 곳을 몇 번 더 다쳐 병원에 갔을 땐 치료 시기를 놓쳐서 해줄 방법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치료 방법이 없다니… 충격 그 자체였다.
그 후 통증은 점점 심각해져 학교에 다니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겨우겨우 수업을 들었고 나머지 시간은 기숙사에서 잠만 잤다. 동기들은 그런 나를 신생아라 불렀다.
목발을 짚고 간신히 강의실을 오갔고 친한 언니가 책가방을 들어주었다. 제출해야 할 과제가 많았기에 가장 컨디션이 좋은 새벽에 깨어나 잠깐 할 일을 마치고 잠들길 반복했다.
휴학할까 진지하게 고민도 해봤지만, 중단하면 학교로 되돌아올 수 없을 것 같았다. 이전의 사법시험 준비기간을 포함해 수험생활이 지나치게 길었던 탓이었다. 결국 힘들어도 참기로 했다.
그렇게 노력한 보람으로 학교를 졸업하고 변호사시험도 합격했다. 진원지기를 다 쓰고 얻은 자격증이었다. 기쁘고 감사하고 뿌듯한, 긍정의 수식어를 죄다 붙여도 아깝지 않을 소중한 기회였다.
그러나 통증을 견디며 보낸 수험생활로 나는 이미 에너지 고갈 상태였다. 오 분도 서 있지 못하는 다리로 활동하기엔 무리가 많았다. 잠시라도 쉬고 싶었다.
음~~~ 미련하다고 할까. 어리석다고 할까. 나는 그런 상황에서 사무실을 개소했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한마디로 바보 같은 선택을 했다. 나는 긴 수험생활로 쉬는 법을 잊어버렸고 앞으로 고고고 밖에 할 줄 모르는 인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여기에다 과도한 책임감, 완벽주의적 성향, 좋은 변호사가 되겠다는 지나친 욕심과 구원환상을 종합 환장 세트로 갖추고서 업무 익히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월화수목금금금, 주말에도 쉬지 않았다.
의지력이 강했던 아이는 이때부터 우울씨를 만날 준비로 분주했던 것이다. 자신만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