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일기

님아, 그 사진을 블로그에 올리지 마오!

by 바람

주말 오전 뒷산을 올랐다. 새벽에 내린 비로 공기가 차가웠다. 생기를 머금은 길을 따라 등산로 입구에 들어서는데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선명히 시야에 들어온 산은 그야말로 낙엽 천지였다. “The falling leaves, drift by my window~ The autumn leaves, of red and gold~~~ ”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빗물에 떨어진 나뭇잎들이 융단처럼 깔려있었다. 황금색 잎 사이로 발이 푹푹 빠졌다. 흙길이 모두 낙엽으로 뒤덮여 어디를 디뎌야 할지 몰랐다. 때때로 가는 곳이지만 처음 보는 산처럼 신선했다. 산에 오길 잘했지, 하며 남편에게 동조를 구했다.


지나가던 바람이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잎을 흔들었다. 얼마 남지 않은 잎들이 서로 부딪히며 바스락바스락 마른 소리를 냈다. 아름답고 또 쓸쓸했다. 잊어버린 소중한 기억의 문을 두드리는 것 같았다.

이 와중에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 오늘 점심은 뭐 먹고 싶어?” 꿈같은 장면 속에서도 먹고사는 문제가 제일 중요하다. 뭘 먹을지는 우리 부부가 현실적 문제로 나누는 대화에서 가장 높은 빈도를 차지한다. 집돌이 집순이 성향이 강한 우리는 주로 집밥을 먹던 터라 산책 겸 장보기가 일상이었다.


하산하는 발걸음을 따라 가을 풍경에 대한 감상이 서서히 멀어졌다. 머릿속은 온통 ‘뭘 사서 집에 들어갈까’로 가득 찼다. 간만에 남편이 짬뽕을 사 먹자고 했다. 해물이 먹고 싶었던 나는 해물이 잔뜩 들어간 짬뽕을 상상했다. 의사 합치.


벤치에 앉아 인근 중식당을 검색했다. 남편이 평점 높은 식당을 발견해 지도를 보며 찾아갔다. 도착한 식당은 외양이 근사했다. 건물 입구에 발전을 기원하는 화환이 줄지어 서 있는 걸로 보아 개업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았다. 요리하는 셰프의 사진이 걸린 현수막에 화려한 약력이 적혀있었다. 포장해서 집에 가져갈까 했는데, 식당이 깔끔해 먹고 가기로 했다.


점심시간에 맞춰 온 까닭인지 손님이 많았다. 가게 제일 안쪽에 두 테이블만 비어있었다. 우리는 주방 바로 앞에 있는 제일 작은 테이블에 앉았다. 앞으로 손님이 더 올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깔끔한 메뉴판이 마음에 들었다. 미니 탕수육을 고르고 일반 짬뽕보다 오천 원이나 비싼 ‘특해물짬뽕’을 시켰다. 빨간 식탁보가 식욕을 자극했다.


시간이 꽤 흘렀다. 음식을 기다리며 맛나게 먹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지겨워서 몸을 뒤척이자 주방을 향해 앉아있던 남편이 나를 달랬다. 좀 느리지만 셰프가 정성을 다해 요리하고 있다고, 오너 셰프의 정성이 느껴진다고 했다

셰프가 요리에 진심이라니 기다릴만했다. 짬뽕에 대한 기대도 더욱 높아갔다. 그동안 비어있던 옆 테이블에 손님이 왔다. 나보다 네댓은 나이 들어 보이는 여자였다. 그녀는 큰 테이블에 혼자 자리를 잡고는 목도리와 겉옷을 벗어 다른 의자에 걸쳤다. 마침 주방에서 짬뽕 한 그릇이 나왔다.


우리 차례인가 생각하는데 짬뽕은 옆 테이블로 옮겨졌다. 손님이 많을 걸 예상해서 전화로 예약했나 싶었다. 이렇게 오래 기다릴 줄 알았으면 나도 전화해둘걸. 속으로 툴툴거렸다.


오랜 기다림 끝에 조리대 위에 탕수육 접시가 얹어졌다. 점원이 손님들이 떠난 테이블을 치우느라 정신이 없자 셰프가 알림 종을 눌렀다. 땡그랑, 맑은 금속 소리가 들렸다. 종소리에서 가장 맛있을 때 음식을 제공하겠다는 셰프의 의지가 느껴졌다.


드디어 우리 테이블에 탕수육이 도착했다. 탕수육은 여타 식당과 달리 큰 덩이로 튀겨져 잘라먹어야 했다. 남편이 가위로 탕수육을 자르는 걸 보고 있자니 침이 고였다. 들뜬 마음으로 탕수육 조각을 베어 물었다. 바삭했다.

그런데 탕수육을 거의 다 먹을 즈음까지 짬뽕의 소식이 없다. 이상했다. 아무래도 이건 너무 늦었다. 나도 모르게 옆 테이블로 눈길이 갔다. 그 손님은 조갯살을 빼내 하나씩 입에 넣으며 껍질을 앞 접시에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었다. 그러더니 커다란 낙지를 집어 정성껏 다리를 자르고는 간장에 콕콕 찍어 먹었다. 새우와 버섯, 양파를 차례대로 씹으며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음미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남편에게 속삭였다.

“여보, 저분 해산물을 계속 드시고 있는데 우리 거인 듯. 이렇게 안 나오는 걸 보면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이야기해서 뭐 할라꼬? 설사 우리 거라고 해도 먹고 있는데 뺏어올 것도 아니잖아.”

남편이 정색했다. 내가 옆 손님에게 우리 짬뽕인 것 같다고 말할 거라 오해한 것이다. 순간 도대체 나의 사회성을 어떻게 봤으면 저런 생각을 할까 싶었다. 섭섭한 마음을 누르고 남편의 못마땅해하는 눈빛을 외면하며 점원을 불렀다.


“저기, 저희 짬뽕은 언제 나오나요?”

탕수육 한 점만 남은 우리 테이블을 본 점원은 다급하게 셰프에게 요청했다. ‘특해물짬뽕’을 다른 요리보다 먼저 해달라고 했다.


그러는 사이 옆 테이블 손님은 전복까지 찾아 꼭꼭 씹어 먹고 난 후 젓가락 가득 면을 들어 올려 후루룩 흡입했다. 간간이 천장에 시선을 고정하면서 맛을 느끼곤 했다. 분명 깊은 감동을 받은 듯 보였다. 마지막으로 두 손으로 그릇을 잡고 국물까지 싹 비웠다.

셰프가 다시 알림 종을 쳤다. 점원이 후다닥 다가가 요리를 보더니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짬뽕 말고 ‘특해물짬뽕’이 나와야 하는데요.” 셰프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특해물짬뽕’은 나간 지 이미 오래되었다고 했다.


짬뽕의 배달사고를 명백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옆 손님은 유유히 일어나 카운터로 향했다. 그녀는 점원이 음식값을 계산하는 동안 셰프의 모습이 담긴 현수막을 지그시 바라보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언니. 이 집 짬뽕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성비 최고라고 추천하시면 안 돼요.”


나의 ‘특해물짬뽕’은 언제쯤 오시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