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하고 입안에서 몇 번 굴리다 보면 마음에 둥근 그릇이 하나 생긴다. 좁고 긴 새순을 닮은. 자세히 들여다본 새순은 아주 작고 오목한 잎사귀의 집합이었다. 소중한 걸 감싸는 모양, 혹은 그렇게 감싸는 것 자체가 소중해지는 모양. 봄그릇 안에는 봄빛 몇 방울과 봄꽃 몇 자락이 산다.
노란꽃은 봄빛을 머금은 손 같기도, 봄빛이 머물다 간 흔적 같기도 했다. 아주 투명하고 맑은 채도에 마음 끝이 뭉툭해졌다. 밀도를 잊은 듯 봄그릇 안에 한없이 가득할 것 같은 노란꽃. 봄이 온다는 건 오목해지는 일이 아닐까. 오목해진 공간에 마음을 내려놓는 일, 한 철의 세계가 거기서 낮잠을 자는 일, 코골이를 따라 바람이 부는 일. 봄그릇 안, 꽉 찬 빈칸을 경작하는 일. (202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