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온 시간, 그리고 내가 사랑했던 것들

고형동, <9월이 지나면(When September Ends)>

by JC
영화 <9월이 지나면> 무자막 버전


시절로 남는 영화가 있다. 반복되고 반복되어 영화가 내 삶으로 돌아오는 어느 날, 이 영화는 내게 시절로 남겠구나, 문득 깨닫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시절일까? 영화를 보던 나? 영화를 보던 시기?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더듬더듬 말해볼 수 있는 것은 영화 자체가 하나의 시절이 된다는 것이다. 내 인생의 특정 시기에 점을 찍듯 남아있는 영화라기보다는, 어느 순간부터 포물선을 그리며 나를 쫓아오는 영화. 이 영화 자체가 내게 계절이 되었구나, 다시 이 영화를 보게 되겠구나, 미래를 예비하게 되는 영화.


<9월이 지나면>은 꼭 10년 전에 본 것만 같은 영화였다. 실은 겨우 1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런 영화가 참 보물 같이 숨어있었네, 작년 우연히 보고 생각했다. 너무 좋은 영화네. 아름다운 영화네. 그리고 종종 영화를 생각했고, 들춰보았고, 해가 지났다. 여름이 왔고, 나는 9월을 지나며 <9월이 지나면>을 본다. 다시 한번 계절이 겹쳐진다. 나까야마 미호의 얼굴 위로 지연의 얼굴이 포개지듯.


유튜브에 '9월이 지나면'을 검색하면 나오는 2개의 영상. 고형동 감독이 자기 계정에 올린 10년 전 영상과 5년 전 영상이다. 10년 전 영상의 조회수는 64,401회. 5년 전 영상은 24,541회. 굳이 같은 영화를 5년 전에 한번 더 올린 감독은 그곳에 "The years I've lived. The things I've loved."라는 문구를 써두었다. 영자막 버전이 아닌 무자막 버전을 새롭게 올린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궁금했다. 영화를 다시 올릴 때 그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앞선 문구는 원래 <9월이 지나면>의 연출 의도였던 "내가 살아온 시간, 그리고 내가 사랑했던 것들."을 영어로 옮긴 것이다. 'I've lived'는 '살아온'이 되지만, 'I've loved'는 '사랑했던'이 된다. '사랑해온'이 아니라. 저 문장은 자기도 모르게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살아온 시간에는 내가 사랑했던 것들이 남겨지리라고.






여기까지가 작년에 써두었던 문장이다. 다시 1년이 지났다. 9월은 한참 남았지만, 여름이 왔다. 냄새처럼 생각난 영화. 첫 장면. 승조(조현철)가 과제로 만든 건축모형 뒤로 지연(임지연)이 조명을 비춘다. 태양의 역할을 대신해 지연은 조명을 이동시킨다. 승조는 해가 넘어가듯 움직이는 조명에 따라 모형에 그림자가 지는 것을 사진으로 기록한다. 순식간에 하루, 다시 하루가 지나간다. 저 조명처럼 한 해가 순식간에 지나갔음을 실감한다. 그새 <9월이 지나면>의 조회수는 조금 올라갔다. 누가 또 이 영화를 찾고 있을까?


건축과 학생인 승조는 졸업하면 영화를 하고 싶다고 했다. 건축도 재밌지만 더 재밌는 게 생겼다면서. <9월이 지나면>을 보고 나면 며칠간 승조의 마음을 생각하게 된다. 사랑했던 것을 떠나는 마음에 대해. 승조는 '사랑했던' 것들을 '살아온' 안에 꾹 눌러 담아두는 사람일 것이다. 그 마음을 혼자 오래 간직하며 때때로 아파할 것이다. 실은 여전히 '사랑하는'으로 말하고 싶은 심정을 스스로도 감추며. 지금도 9월이 힘드냐는 지연의 물음에 잠시 뜸을 들이고는 '지금은 그냥 그래' 말하는 승조의 표정을 좋아한다.


영화 후반부, 승조는 훔친 설계도를 다시 돌려놓다가 걸린 지연을 숨겨준다. 승조는 자기가 사람들을 유인할 테니 그 사이에 도망치라고 말하며 지연을 대신해 달리기 시작한다. 그는 곧 학생들과 경비에게 쫓기며 여름밤을 가로른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승조가 지연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구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어쩌면 승조도 도망치고 싶었을 테니까. 9월의 한복판을 뛰어넘어 10월로 단숨에 도착하고 싶었을 테니까. 늘 떠나지도, 머무르지도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승조의 얼굴은 아마도 9월의 그것이었을 테다.


러브레터 포스터 위로 떠오르는 지연의 얼굴과 그를 넋을 놓고 바라보는 승조. 그리고 투박한 발음으로 '9월이 지나면'을 부르는 승조와 슬며시 눈을 뜨고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지연. 서로가 서로의 옆모습에 반하는 순간을 지연과 승조는 숨길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한밤중의 사태 이후, 영화는 각각 완성된 자신의 건축모형을 바라보는 승조와 지연의 옆얼굴을 겹쳐둔다. <9월이 지나면>은 바로 그 옆얼굴의 영화다. 정면으로 응시하기에는 조금 기울고, 낯부끄러운 시절에 관한 이야기. 그러니 9월을 함께 견디자고 말하기보다 9월이 지나면 깨워주세요, 에둘러 말하는 마음에 관한 이야기.


<9월이 지나면>은 승조와 지연 두 사람의 마음을 본뜬 모형을 만드는 듯 천천히 감정을 쌓아 올린다. 그 사이에 별다른 전사 없이도 두 사람에게 드리워진 과거의 그림자를 느끼게 한다. 그리고 이들이 보낸 늦여름의 일주일이, 다른 각도로 비춘 조명처럼 어둠의 모양을 바꿔냈다는 것도. 나는 이 영화를 노을을 닮은 주황빛이 승조와 지연의 뺨에 닿는 장면들로 떠올리곤 한다. 그것이 9월의 빛이라는 듯. 계절은 저도 모르게 이미 저물고 있다.


영화 마지막, 한낮의 정원에 승조와 지연이 앉아있다. 지연은 앞서 완성한 본인의 모형을 승조에게 선물이라며 가져왔다. 건축학과임에도 늘 혼자서 다녔던, 모난 마음 하나 숨기지 못해 선배의 설계도까지 훔쳤던 지연은, 승조 덕분에 처음으로 누군가와 함께하는 일에 대해 생각했을 것이다. 그 일이 자신에게 어떤 위로로 다가왔는지 지연은 앞으로 몇 번의 9월을 거쳐야 알게 될까. 대화 중간 카메라는 잠시 멀리서 두 사람을 찍는다. 그들은 화면 중간이 아닌 오른쪽에 있다. 아마도 그곳은 9월의 자리. 지연과 승조가 가까스로 서로를 바라본다. 지연이 조심스럽게 입을 뗀다. 9월이 지나면…


(24.09 & 2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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