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라의 눈, 아이들의 얼굴

고레에다 히로카즈, <또 하나의 교육>

by JC

나가노현의 이나 초등학교. '봄'반 학생들은 3학년이 되어 키프 목장으로부터 데려온 아기 송아지 '로라'를 키운다. 로라의 첫 생리부터 교배, 임신, 조산, 그리고 태어난 새끼의 죽음까지 함께하며 아이들은 삶의 희로애락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간다. 이 영화에는 카메라를 든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어쩔 수 없는 클로즈업이 있다. 이것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가까이 다가가는 달리 인이 아닌 붙박인 자리에서 줌 인해 들어가는 방식이라는 점은 그가 가진 대상을 향한 거리와 애정을 함께 드러내기에 중요하다.


로라의 1년 치 사룟값을 계산하며 처음 아이들이 두 자릿수 곱셈을 배우는 날이다. 영화는 처음 1개월 치 사룟값인 5,190엔을 10번 더하는 학생을 보여준다. 이틀에 걸친 수업에서 아이들은 저마다 덧셈과 곱셈을 번갈아 가며 계산을 한다. 수업 막바지 곱셈을 몰랐던 가장 처음의 학생이 손을 든다. 다른 학생들이 이런저런 말을 보태는 동안에도 카메라는 움직이지 않고 그가 곱셈의 원리를 깨치는 몇 분의 시간을 그대로 찍는다. 계산 과정에 온전히 몰입해 다른 말 따윈 들리지 않는 저 얼굴에 지금 감독이 매료되어 있다는 게 여실히 느껴진다.


카메라는 결코 아이들에게 직접 다가가지 않는다, 혹은 못한다(처음에는 '않는다'였으나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는 '못한다'에 가깝다고 느꼈다). 다큐멘터리스트로서 고레에다는 상황에 개입하지 않고 대상과 거리를 두려 한다. 하지만 동시에 영화는 끊임없이 얼굴을 찾는다. 고레에다는 학생들이 카메라를 보는 장면을 처음에는 모두 편집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진실을 가리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대로 두었다고 밝혔다. 카메라는 끝까지 공간에 동화되지 못한다. 아이들은 카메라를 의식한다. 하지만 종종 아이들이 눈앞의 상황에 빠져들어 카메라를 잊을 때면 카메라는 여지없이 그 얼굴을 포착한다. 열중의 순간을 깨버릴까 두려워하며 그 자리에서 가만히 줌 인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그런 감독이다.


그중에서도 아이들의 얼굴이 아닌 로라의 얼굴, 특히나 눈은 무척이나 신비롭다. 로라는 카메라를 잊는 것이 아닌, 애초에 카메라를 알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이마저도 편견일 수 있겠지만). 그리하여 로라는 아이들에게도, 영화에게도, 그리고 관객에게도 순도 높은 미지로 남는다. 키프 목장으로 돌아가는 날, 로라는 트럭에 올라타기 전 잠깐 뒷걸음질을 친다. 오랜 시간을 보낸 학교와 학생들을 떠나는 게 아쉬웠던 걸까? 괜히 눈물을 지어보아도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아이들이 로라를 보내는 것이 맞는지를 토론하던 수업에서 끝내 배웠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6학년이 되면 돌볼 시간이 줄어들 거라고, 또 로라는 다른 사람의 소니까 돌려주어야 한다고 말하는 학생들을 선생님은 무섭게 다그친다. "너희에게 로라와 함께한 순간은 그런 거였니?" "너희 생각뿐이잖아. 로라 생각은 하지 않고." 눈치를 보던 학생들이 그제야 울먹이며 진심을 말한다. 아픈 시간을 겪어온 로라의 입장을 조금씩 헤아려 가며. 하지만 그들은 결코 로라의 맑은 눈이 무엇을 말하는지 읽어낼 수는 없었을 테다. 다만 아이들은 로라가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곱씹는다. "로라를 좋아하니까, 로라를 돌려주고 싶습니다." 마지막 아이는 울며 말한다.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그는 정말 이해하고 있었을까. 나는 그냥 이런 순간이 기적 같다.


성장은 다른 입장을 고려하는 것에서 나아가, 상대를 상상하는 일의 무력함 앞에서도 당신이 내게 무엇이었는지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벌어진다. 영화는 로라를 기르던 외양간이 허물어진 빈 공간을 담는다. 남겨진 자리는 고레에다의 짙은 인장이다. 로라가 떠나간 자리에서 아이들은 그들이 다져낸 시간이 얼마나 많은 비밀을 남겨두었는지를 깨달아 갈 것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어 조금은 달라진 아이들의 얼굴이 보인다. 도저히 개입할 수도, 다가갈 수도 없이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세계가 이렇게나 공고하게 만들어졌다.


(23.06)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영화 링크

https://youtu.be/SBeUhZ0L_b0?feature=sha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