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 2

by JC

몸이 하루 종일 안 좋았다. 무심코 카페인이 들어간 라떼를 마셨더니 바로 몸이 엉망이 되었다. 막차를 타고 4호선의 끝자락으로 오다 보면 점점 사람이 없어진다. 왜 이렇게 에어컨을 세게 틀지, 지하철 안에서 시름시름 앓았다. 외투를 입어도 속이 시렸다. 사람이 없어져서 추운 거구나, 문득 깨달았다. 12시가 넘은 시간. 지하철은 너무 환했다. 온기가 없어진 곳에서 창밖의 어둠을 바라보았다.


편의점 생각이 났다. 어두운 골목에서 혼자 환하던 이마트24 시화조은점. 나는 밤새 음료수를 채우고, 바닥을 닦고, 분리수거를 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치우고, 화장실 청소를 했다. 사이사이에 손흥민이 뛰는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보고, 막 알려지던 김초엽의 소설을 읽고, 동아리 공연을 위해 랩 연습을 하고, 시험공부를 했다. 종종 시를 쓰고 가사를 썼다.


일이 새벽에 끝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항상 카스를 캔이 아닌 1.6L 페트로 샀다. 그중 한 아저씨는 나에게 몇 번씩 이름을 물었다. 분명 지난번에도 물었었는데. 그는 늘 처음인 것처럼 내 이름을 한 글자씩 발음하곤 했다. 그리고는 자기 이름을 알려주었다. 이제는 까먹은 이름이지만, 목을 안쪽에서부터 긁어야 했던 것은 기억 난다. 나는 그가 보여주던 시범을 잘 따라 하지 못했다. 그럼 그는 괜찮다는 듯 웃고는, 카스를 들고 바깥 파라솔에 앉았다. 먼 가족과 영상 통화를 하며 술을 마셨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지만 그의 환한 표정을 보면서 저 대화의 온도를 상상하고는 했다. 그가 부르던 내 이름의 형태가 마음에 들었다.


주말 야간 알바를 세 번의 학기 동안 했다. 전역 후 복학을 하며 바로 알바를 시작했고, 그 시기 동안 나는 본가에 전화를 잘 하지 않고 살았다. 엄마는 늘 새벽 5시에 일어났다. 종종 알바 퇴근과 겹치는 시간에 엄마가 전화를 했다. 너는 어쩜 전화 한 통이 없니, 엄마는 서운해했다. 숨이 막혀서 그랬어요. 말하지는 못했다. 형은 가끔 밤에 전화를 해서는 길 가는 사람이 자기한테 욕을 했다, 학교에서 사람들이 자기를 무시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곤 했다. 아빠는 곧 죽을까? 나는 큰 미련이 없었다. 가족을 떼어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엄마한테 미안했다. 피곤한 몸으로 아침 해가 떠오르는 기숙사에서 이랑의 '가족을 찾아서'를 들었던 날, 노래를 들으며 그렇게 많이 운 건 처음이었다.


힙합동아리 단톡방에 올라온 하늘이의 비트에 가사를 썼다. 하늘이는 내 가사를 좋아해 주던 친구였다. 내가 네 비트에 가사를 썼다는 걸 너는 평생 모르겠지만.



얼른 하나님이 자기를 데려갔으면 좋겠다고

당신 여러 번 말을 했지

근데 나 이제 천국을 안 믿어 아빠

미안해 내겐 영혼이 쉴 곳 없나 봐

걍 궁금해 젊음은 다 잊었어 아빠?


늙어가는 건 있잖아 왜 그리도 무력해

갈 길을 재촉하자 우리 발 딛으며 맞춰서 중력에

슬픔을 집어삼킨 허무가 들이닥치기 전에

나는 이제 내 방문을 닫아보려고 해

길었겠지 그 몇십 년의 인생 당신은 뭐를 낚았는지

이런 질문조차 스치는 풍경처럼 사라질지

그리곤 긴 침묵이 영원히 이어지겠지

남은 삶은 박자를 천천히 이어가겠지



가사의 일부다. 앞부분은 옮기지 못하겠다. 지금 이 가사를 처음부터 다시 읽으면 아빠에게 미안한 감정이 든다. 왜 이렇게까지 썼었지. 가사를 쓰며 나는 아빠를 내 안에서 여러 번 죽였다. 아빠도 모르게.


복학하고 다시 돌아간 힙합동아리에서 나는 잘 적응하지 못했다. 트랩이 유행이었다. 예전 공연에서 내가 랩하는 걸 봤다던 선배가 술자리에서 짱유의 'Kiss My Mouth All Day'를 추천해줬다. 너 계속 랩했으면 좋겠다. 그는 나한테 그렇게 말했다. 얼마 뒤 교내 공연에서 무대를 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게 내 마지막 무대였다. 공연이 끝나고 선배는 나에게 역시 네가 제일 잘한다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그날 공연에서 내 무대는 쩌리였다. 하나도 친하지 않았던 다른 애들은 트랩 비트 위에서 신나게 뛰고 놀면서 공연을 했고, 나는 혼자서 단독 무대를 했다. 재지한 붐뱁 비트에 고등학교 시절에 대한 가사를 얹어 뱉었다. 내 무대에 별다른 호응은 없었다.


선배가 알려준 짱유의 앨범을 자주 들었지만, 나는 가사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지, 음악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힙합동아리를 가지 않게 되었다. 학교에서 나는 친구가 없었다. 영화와 책을 좋아하던 나는 취향이 맞지 않던 경영학과 애들과는 별로 친해지고 싶지 않았다(이것도 지금 생각하면 별 의미 없는 치기 같다). 편의점 야간 알바가 끝나고 기숙사나 자취방까지는 거의 40분을 걸어와야 했다.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게 정왕은 그때 걷던 검은 길로 남았다. 천근만근 발을 옮기던 그 어둠이 되게 우울했는데, 평온하기도 했던 것 같다. 4호선의 끝, 서울이 아닌 경기도, 학교에서 한참을 걸어가야 했던 편의점, 새벽에 끝나던 알바. 그때 내 안에 바깥의 감각이 각인되었던 걸까?



술에 취한 아저씨는 비틀거려

추워진 날씨 꽤나 짓궂어서

떨리는 몸 가누기 힘들어 걸리적거리는 외투

카드를 꺼내며 뱉어대는 말 더 좋은 걸로 달라고 4

라이터 하나를 집으며 더 좋은 건 없냐고

연양갱 세 개를 집으며 더 좋은 건 없냐고

생각이 들었어 겨우 그런 거에 더 좋은 게 어딨어

겨우 그런 거에 더 좋은 걸 찾는 당신이 찾는 건 8

아저씨 떠난 자리 남은 시큼한 술 냄새

조금 역해지는 속 그리고 남은 질문들

더 좋은 인생을 찾고 싶던 이에게

더 좋은 라이턴 뭐였을까 별 거 없던 초라했던 그 계산대 12

잠깐의 거처조차 되지 못했을 편의점

마찬가지로 춥고 쓰러질 듯 나서는 거리로

바람은 불고 담뱃불을 우표처럼 붙이는데

그 연기는 사라져 어디에도 닿지 못해 16



그날 술에 잔뜩 취해 편의점에 들어온 아저씨는 나에게 계속 '더 좋은 게 있냐'고 물었다. 그런 게 어디 있겠어요. 아저씨를 상대하며 조금 지쳤는데, 그가 떠나고 나자 약간은 공허해졌던 것 같다. 더 좋은, 더 좋은, 더 좋은 무언가를 찾던 아저씨의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아있다. 나는 아저씨를 그 뒤로 다시 보지 못했다. 꼭 유령처럼 찾아와 진득한 술 냄새를 남겨놓고 담배 연기처럼 사라진 사람. 나는 그가 그날 편의점을 떠나 배회했을 거리가 바깥처럼 느껴진다. 무엇의 바깥이었을까. 정왕에 살면서 나는 내가 앞으로도 바깥에 살게 될까 두려워했다. 영화의 바깥에서, 서울의 바깥에서, 가족의 바깥에서.


왜 선배는 나한테 짱유를 추천해줬을까. 짱유는 바깥이 어울리는 아티스트였다. 그는 힙합의 바깥에서 힙합을 했고, 가족의 바깥에서 가족을 찾았다. <KOKI7> 앨범을 들으며 편의점 바닥을 걸레로 밀던 때, 내가 느끼던 바깥은 외부가 아니라 경계의 어디쯤은 아니었을까. 자유로워지지 못하고 저 안쪽을 주시하며 유리가 흐려지지 않도록 열심히 닦아내는 사람.



관저동의 새벽 말고는 날 안심시키는 건

여전히 없어 떠올려 날 다시 지키는 법

꿈을 묻잖아도 충만했던 내 길 잃은 벗

벗어나지 못할 거야 우린 이 도시로부터 4

가끔씩 떠올리지 우리가 우리를 알 때

꽤 시간이 흘렀네 지금은 우리를 죽이는 잣대가

너무 많아서 항상 숨이 차게 무리를 하네

모두 부리나케 어디로 가는 아침이 오는 게 난 두렵네 8

난 갈 곳이 없어서 그래

어디든 갈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그때

내 발은 동네에 묶여 있었는데도

저 바깥의 세상을 보며 내 화분을 숨죽여 키웠네 12

말라비틀어진 영혼은 이제 어디로 갈지를 몰라

잠깐이면 될 줄 알았던 시간은 또다시 나를 내쫓아

폐허가 된 터전에 싹을 심어도 될까

새벽을 채워가는 밤을 지우는 물감 16



고등학교 때 나는 대전을 너무 벗어나고 싶었지만, 동시에 내가 자란 관저동을 너무 사랑했다. 관저동은 나한테 바깥이자 내부였던 걸까? 그때 소중히 키우던 내 안의 화분을 나는 성인이 되고 다른 동네에 옮겨 심었는데. 내 20대는 그 화분이 죽지 않도록 감싸는 시간이었다. 내가 바깥이 되어서, 너를 지켜주겠다고 나는 살았던 것 같다. 지금도 나는 그렇게 살고 있을까? 졸업 후 나는 서울에서, 영화에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바깥의 바깥으로, 언저리의 언저리를 걷고 있는 기분이다.


내 이름을 이상하게 발음하던 그 아저씨의 얼굴이 떠오른다. 지금도 선명하게 얼굴을 그려볼 수 있는 유일한 손님이다. 맑은 얼굴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뭉클할 정도로. 그런 얼굴을 갖고 싶은 걸까? 나는 그를 잘 모르니 아마도 착각이겠지만, 내가 끼기에 아저씨는 바깥에 있었지만 바깥에 있지는 않았으니까.


너무 짧게만 느껴지는 20대를 돌아보며 느끼는 점은 바깥은 갱신된다는 것이다. 비로소 안에 들어왔다고 생각한 순간, 그곳은 다시 한번 바깥이 되어버린다. 다만 나는 문을 여는 순간의 진동으로 살아가고 싶다. 바깥에서 다시 바깥으로 들어가는 것임을 알면서도, 경계의 문턱을 넘어서는 일의 떨림을 잊지 않고 싶다. 어쩌면 무뎌지지 않아야지, 하는 뻔한 말을 다르게 표현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지금 내 결론은 그렇다.


(24.07 & 25.08)

작가의 이전글가사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