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쓴 가사들을 하릴없이 열어 본다. 요즘도 아주 가끔 랩을 끄적이지만, 뭐라도 적고 싶어 적는 것일 뿐 적고 싶은 것을 적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멀어진 기분이다. 내 무수한 16마디 벌스들. 곡이 되지도, 세상에 나오지도 못한. 들려줄 수 없는 가사를 꺼내놓는 일은 무용하다. 그래서 가사를 어딘가에 올려본 적은 없다. 그렇지만 오늘은 아쉬운 마음이 들어 용기를 내보려 한다. 처음 생각난 가사는 이거.
내가 어디에 어울리는 사람인질 알기 위해 노력했어
때론 날 숨기려 했고 때론 고치려 했어
여전히 어려워 많은 자리 속에서
수십 번 애써 나를 달리하는 게 4
답이 아닌 게 날 밀어낼 때
혹은 편안한 듯해도 전부 채워지지 않는 게
있어서 밤이 되면 외로워서
그대로 뒀어 무기력한 채로 벌써 8
흘러간 시간이 보여 나라는 사람을 정의하는데
좋은지 몰랐어 뭐를 가까이, 또 멀리하는 게
세상, 그리고 관계의 속도
따르지 못해 항상 멀미 났었네 12
몇 개의 노트 수백 개의 메모파일
수백 개의 글 수십 장의 이면지
채워온 글자들은 뭘 위해서였을까
수년이 지난 나는 무엇에 기대서 걸을까 16
그치만 옮겼다. 텅 빈 메모장에. 텅 빔을 쏟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제는 수년이 지난 걸까? 여백 위에 세로줄을 몇 개 그으면 살 수 있다. 부딪히지 않고. 부딪히지 않는 게, 사는 걸까? 도로 위로 차들이 지나간다. 랩을 쓸 때는 항상 손가락으로 마디를 샜다. 왼쪽 새끼손가락에서 왼손 검지까지. 1마디. 왼손 엄지를 넘어와 오른손 중지까지. 2마디. 오른손 새끼를 반환점처럼 지나서 다시 오른손 약지로. 3마디. 오른손 엄지를 한 칸 더 지나 왼손 엄지까지 머리를 내밀면, 4마디. 그게 루틴이었다. 그리고는 다시 왼손 새끼로. 4번을 하면 하나의 벌스다. 그렇게 새벽을 보내면 무언가를 완성한 기분이었다. 실은 아무것도 지어지지 않았는데도. 16은 공교롭게 내가 처음 가사를 쓰기 시작했던 나이다. 마디를 잊지 않으려고 가사 뒤에 숫자를 적어두곤 했다. 이제는 숫자를 적은 지 오래된 기분이 든다. 다시 왼쪽 새끼손가락으로 돌아간다. 16을 넘어가지 못한다. 아니면 늘 16으로 돌아가거나.
그땐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향해
귀가 달처럼 기울었지 별이 빛나는 밤에
아는 건 없었어도 빈곤하지 않았던
내 언어 창문과 창문 사이 눈을 감았어 4
하나둘 꺼지는 아파트의 불빛 나처럼 숨을
죽였을까 궁금해 누군가의 밤도
다 짝사랑을 했지만 몰랐지 사랑은 아무도
지금도 모르겠어 이젠 짝이란 단어도 8
난 지금도 느껴 열여섯의 나
그건 그리움보단 어쩌면 내가 걸어가는 방식
시간을 들여 달여왔던 묵은 문장들에게서
썩은 내가 나지 않길 기도하며 벌어놨던 밤 12
여전히 새벽을 열고 문장이 불어오기를 기다려
현실적인 고민 매캐하게 흘러들 땐 싫다고
내 껍데기를 불태웠을 때 남아있을 무엇
후 불면 날아갈 연기 같은 추억 16
시간을 들여 달여왔던 묵은 문장들에게서는 어떤 냄새가 날까. 나는 오랫동안 벌어놨던 밤을 지금 까먹고 있을 뿐일까? 여전히 나는 시를 쓴다.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가사를 쓴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왜일까? 덜컹하지 않는 걸까? 서울의 심야택시는 종종 심술 난 아이 같이 군다. 고속도로를 금지당한 아이처럼 자꾸 욕심을 부려서 속이 아프다. 속도가 느껴질 때는 속력이 불규칙할 때다. 지금이 그렇다. 잠깐 덜컹한다. 고속도로는 유예의 시간이다. 목적지와 목적지를 잇는 것만이 목적인 기능적인 도로. 그래서 나는 고속도로를 좋아했던 걸까? 엄마가 운전하는 고속도로 위에서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면 종종 비현실적인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도착하는 곳에서부터 다시 시간을 산다. 고속도로는 온통 무용해진다. 그 표백된 시간에 비친 얼굴은 그래서 맑아지고, 동시에 짙어진다. 고속도로를 생각하면 엄마 생각이 나고. 그러면 늘 떠올리는 가사.
가끔 고속도로를 달리는 기분이 들어
어린 나는 잠들어 있고 엄마는 일부러
말없이 운전을 해 노을은 끝없이 지고
몇 안 되는 차들은 도로가 끊어지는 곳을
향해 내달려 앞서가는 그들이 멀어지는 모습
그때 백미러에 적힌 세상은 새하얀 백지
엄마는 같은 USB 되감았겠지 어린 내가 자는 동안
앞엔 두 개의 빛 켜고 거친
침묵을 밀고가지 멈춤 없이
옅어지는 분홍빛
살짝 열어놓은 창문 틈으로 흘러드는 바람은
감긴 눈꺼풀에 잠시 내려앉아
저녁의 푸른 온도 속 파르르 떨리는 눈썹
자란 내가 눈을 떠 yeah
그새 수년이 흘렀지 yeah
세월을 타고 야간주행
자꾸만 더 멀어지네
엄마는 점점 늙어가
눈을 감았다가 뜰 때마다
어디로 가는 거예요 엄마
난 질문을 하고 싶지만
그 순간 내가 운전을 하고 있지
보조석에는 어린 꼬마가 타고 있지
뒷머리 제대로 눌린 채로
졸린 듯 몸을 옆으로 웅크린 채로
그때 난 백미러가 보여
바다처럼 흔들리는 뒷좌석
과 함께 우리가 지나온 풍경
but 낯선 느낌으로 구경
해 많은 것들이 뒤섞여 있지
밤 바람 노을 마을 빛 길
모든 것이 한꺼번에 일렁이는 back seat
그 시를 태우고 한없이 직진
해 어디로 가는진 아직도 몰라
기원과 종말 사이로 밤이 몰려와
엄마도 이렇게 시간을 몰았을까
첫 핸들을 쥐던 그 손은 고왔을까
행성처럼 가로등은 길을 밝혀 까만 우주를 밝히듯
구름이 삼킨 듯 달은 보이지 않네
주름을 다린 듯 아스팔트 도로는 팽팽 느슨하지 않네
아이의 숨소리가 줄어가 곧 깬 다음
실눈을 뜬 그의 눈동자엔 늙어가는 내가
보여 표정은 모르겠지만
잠이 덜 깬 듯 눈을 감는 아이 그때 다시
어린 내가 눈을 떠 yeah
그새 수년을 거슬렀네
세월을 타고 계속 주행
멈춘 듯이 흘러가네
운전석의 엄마가 보여
그녀는 아이의 눈에서 뭐가 보였을까
어린 내 눈에 담긴 물방울
이 건조한 도로 위에서 증발
그대로 난 졸린 듯
눈을 감네 어둠이 깔린 곳
우리 어디로 가는 거예요 엄마
난 질문을 하고 싶지만
질문을 하고 싶지만
운전하는 엄마. 구경하는 나. 고속도로에서는 라디오가 나오지 않는다. 대전월드컵경기장을 지날 즈음이면 라디오가 나온다. 라디오 소리가 들리면, 시간이 들리는 것이다. 엄마는 내가 없을 때 고속도로에서 어떤 시간을 살았을까? 나는 그게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엄마는 노래를 잘 듣지 않는다. 몇 년 전, 엄마가 차 안에서 들을 수 있게 몇 십 개의 곡을 골라 다운로드를 받아 usb에 넣어 엄마에게 줬다. 2개였다. 하나는 이선희 곡만 들어있던 usb. 엄마가 이선희를 많이 좋아했었나? 그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 그나마, 였을 것이다. 그 정도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나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엄마에게 시간을 주고 싶었던 걸까? 엄마, 무용함을 느끼지 마요. 덧없음을 느끼지 마요. 엄마는 한동안 usb를 주구장창 틀었다. 이모들이랑 강원도 놀러 갈 때도 계속 틀어서 이모들이 그것 좀 이제 그만 좀 틀라고 했다고 했다. 지겨워 죽겠다고. 엄마는 왜 그걸 그렇게 틀었어요? 이제 와 나는 그게 슬프다. 가끔은 나도 지겨웠는데. 내가 고른 노래였지만, 내가 듣는 노래는 아니었으니까. 엄마는 노사연의 바램을 좋아했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가사가 참 좋아, 그랬다. 바램이 아니라 바람이라고 써야 하는데. 생각하다가 바람이라고 하면 너무 가벼워 엄마가 휙 없어질 것 같았다. 바램이라고 하니 노란 벽지처럼 엄마가 그 노래에 묻어있을 것 같았다. 엄마, 하지만 엄마는 늙어가고 있어. 아빠는 모두 늙어버려 가루가 되었다. 바람에 휙 날아갈 것만 같았던 흰색 가루. 납골당은 어쩌면 바람을 유예하는 공간. 그러나 바람에게 고속도로는 있을 수 없다. 아무 목적이 없어서 목적으로만 존재할 수 있는 바람. 나는 바람이 될 수 없고, 그래서 아빠를 휙 날릴 수 없다. 엄마는 작년부터 성경 필사를 했다. 집에 혼자 있는 엄마가 사각사각 성경을 쓰는 모습을 떠올린다. 오래 떠올리기는 힘들다. 예레미야 쓰고 있어. 이제 거의 다 썼어. 뒤에 자잘한 것만 쓰면 돼. 엄마는 신약을 먼저 썼고, 이제 구약 막바지다. 1년을 넘게 꼬박 썼다. 지난주 거의 다 썼다는 말을 들었을 때 덜컹했다. 엄마는 이제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까. 성경을 쓰던 시간은 엄마에게 고속도로 같았을까? 정반대였을까? 언젠가 나는 그 필사본을 만지며 아주 오래오래 울게 될 것이다. 엄마의 뼈 같을, 엄마의 글씨들.
(2024.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