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의 나날

by JC

사업 결과보고 위해 일을 하고 있다. 잠을 안 잘 각오로 퇴근을 미루고 책상 앞에 앉아 있는데 집중하기가 어렵다. 오히려 밤을 새우기로 마음을 먹으니 긴장이 느슨해졌다. 하지만 보통 몸은 적절하게 스스로의 마지노선을 찾는다. 어느 시점부터는 정말 놀면 안 된다는 걸 몸은 직감으로 안다. 대학교 때도 늘 그랬다. 어떻게든 장학금을 받아야 했던 나는 학점을 강박적으로 관리했다. 그렇지만 경영학과서 재밌는 과목은 많지 않았고, 나는 딱 학점을 잘 받을 수 있을 만큼만 공부했다. 내가 자의로 조절을 했다기보다 몸이 가까스로 그 양을 맞췄던 것 같다. 덕분에 학자금 대출을 받지 않고 대학교를 다녔다. 만약 내가 서울에 있는 더 좋은 학교를 다녔다면, 그 수준에 맞춰 공부를 더 했을까? 아니면 학자금 대출에 시달리며 지금도 그걸 갚고 있을까?


몸의 습관이란 무서워서 일상화된 마감 앞에서 또다시 무뎌진다. 이러면 안 되는데. 몸이 점점 망가지는 걸 느끼면서도 지금은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는다. 어느새 12월이다. 올해 도대체 어떻게 일을 했지? 이곳에서 일한 지는 3년이 되어 간다. 현재 나는 영화 관련 단체에서 공공기관 지원사업을 운영하는 사업담당자로 근무하고 있다. 여러 사업을 동시에 담당해야 하는 탓에 1년 내내 행사와 마감의 연속이었다. 입찰 준비, PT, 작가 모집/선발, 오티, 작가 관리, 보고서 제출, 예산집행, 중간/최종결과, 예산변경, 회계정산, 행사행사행사, 뒤풀이뒤풀이뒤풀이…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업무량인지 가늠도 못한 채로 어떻게든 다시 1년을 끌고 왔다. 내 능력이 겨우 이 정도라서 더 힘 걸까 자주 생각했다.


번아웃이라는 단어를 쓰는 게 굉장히 조심스럽지만, 아무리 곱씹어도 일상적인 번아웃을 겪고 있는 게 맞았다. 올해 여름을 지나면서는 정말 감당이 되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준비를 위해 화장실에 가는 게 너무 버거웠다. 늘 일이 머리 안에 차 있어서 다른 것에는 아무것도 집중을 하지 못했다. 영화 일을 하며 영화를 보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늘 사면초가 상태로 일을 하는 기분이었다. 사업 중간에 책임자가 그만둘 수도 없었고, 무엇 하나 놓치기라도 하면 결국 내 잘못이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백업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 와중에 나는 일을 떠맡으면 떠맡는 사람이었지 줄이는 사람은 아니었고, 내가 목표한 완성도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일을 하면 자괴감을 느꼈다. 연락이 늦어 죄송합니다, 라는 문장을 달고 살았다.






새벽에 일을 하며 최근에 아래 벌스를 자주 들었다. <쇼미더머니 9>에서 킬라그램이 썼던 벌스다. 시즌 6에서 스타덤에 올랐던 킬라그램은 당시 소속사에 사기를 당해 빈털터리가 된 채로 다시 한번 가사를 적었다. 시즌 9에 나온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겨우 3년의 시간이 어떻게 그를 바꿔놓은 걸까. 나는 이 시즌에 킬라그램이 뱉었던 모든 벌스를 좋아했다. 무언가 바뀌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사람의 결연함이 와닿았고, 감히 조금은 부럽기도 했다.



두번째 벌스가 킬라그램이다 근데 잠비노도 좋음

매일 밤 틀어박힌 방 안에서

펜과 라임노트를 잡고 얼어붙어버린 머릴 에워싸

맥없이 풀린 눈꺼풀이 짓누르는 무게를 버티고

끄덕이지 않아 포긴 안 배웠다

누군가 내게 말했지 저 끝에는 아무도 없다고

왜 아무 뜻 없는 그 거리를 떨리는 맘으로 꿋꿋이 걷냐고

날 견제하는 내 적들의 헛된 단어들에 쓰러졌다가도

일어나네 끝없는 번뇌

반복되는 삶 왜 손 떼는가

내 몸의 습관들이 날 더 움직이게 해

공책을 받치고 있는 왼손에 힘을 주었다가 풀어

그대로 내려놔봤자 결과는 뻔해

힘들어 세상 살아가는 방법 다 따라가는

사람 사는 삶의 바이블 하나만을 믿으며 달려

난 넘어진다 해도 천천히 갈래

점점 빛바랜 멀어진 밤엔 없어 피날레



가사는 래퍼들의 가장 뻔한 레퍼토리 중 하나다. 틀어박힌 방 안에서 펜과 라임노트를 잡고 나만의 가사를 적어 내려간다는 이야기. 하지만 그가 밑바닥에서 적어 내려간 가사에는 투박한 힘이 실린다. 이 벌스를 처음 듣고 반복하던 새벽, 나는 '공책을 받치고 있는 왼손에 힘을 주었다가 풀어'라는 가사를 보며 영상을 멈췄다. 생경하다시피 느껴지는 문장이었다. 그때 나는 이 문장을 곱씹으며 아래와 같은 시를 썼다.



주먹과 발가락과 손끝과 반동


왼 주먹에 힘을

주었다가

핀다


숨을

들이마시었다가

내쉰다


살아가는 일은 단순하지 않지만

단순하다

그게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


오른발을 살짝 앞으로 딛는 것

왼발을 그것보다 조금 더 앞으로 내딛는 것


모든 숨은 치밀어 오르는 것이다

치밀어 오른 뒤 밖으로 나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공기와 뒤섞이는 것이다


태어난 내가

산다 태어난 적 없다는 듯


어떤 공기도 맡아본 적 없다는 듯

어떤 거리도 걸어본 적 없다는 듯


걷고

숨 쉰다


아침이 오는 게 두렵지 않은 새벽이면

문득 살고 싶어진다

살아 본 적 없다는 듯

배꼽 안에서 잠을 잔다


안과 밖

밖과 겹치는


시를 쓴다는 건

손가락 마디마디가 제 기능을 한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일

또는 그걸 확인하는 일


단어 없이도 살아갈 수 있을까

잘 모르겠지만

언젠가 그렇게 된다면

시를 쓰지 않아도 시가 되어 난다면


눈을 감았다가 뜨면

열릴 거다

매번 다른 세상이


그리고는 똑같이 살 거다

매번 똑같이



번아웃의 나날에 이 시를 다시 읽는다. 너무 단순하게 쓴 것인지 그닥 좋은 시 아니지만, 그래도 이 시 덕에 나는 그 시기 며칠을 살았다. 그냥 그렇게 살고 싶었다. 단순하고 단순하게. 도저히 침대에서 몸이 움직이지 않던 아침. 거의 울기 직전의 상태로 떠올리던 장면이 있다. <킬 빌>에서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블랙 맘바(우마 서먼)가 마비된 하체를 끌고 차에 올라타, 어떻게든 발가락을 움직이려 애쓰는 장면이다. 그는 발가락을 향해 혼신의 집중력으로 깨어나라고 명령한다. 발가락은 여전히 멈춰있고, 그때 블랙 맘바는 자신을 이렇게 만든 암살단을 떠올린다. 이윽고 우마 서먼의 오른쪽 엄지발가락이 까딱하고 움직인다. 이제 어려운 건 끝났어, 맘바는 말한다.


내게 이 장면은 길고 긴 <킬 빌>의 복수극 중 가장 중요한 순간로 다가온다. 그 '까딱'으로부터 모든 것이 새로 출발하기 때문이다. 블랙 맘바처럼 절체절명의 상황은 아니었지만, 아침마다 나 역시 어떻게든 신체 기관에게 말을 걸면서 일어나자고 말을 했다. 그렇게 어떻게든 몸을 끌고 준비를 하다 보면 이게 뭐라고 그렇게 힘들었지 싶었다. 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다음날도 똑같이 침대에서 일어나는 데에만 나는 1시간도 훌쩍 넘는 시간을 써야 했다(일하는 시간이 너무 많다 보니 출퇴근 시간이 자유로워서 그나마 가능했다).


일도 마찬가지다. 하나하나를 떼어놓고 보면 그리 어려운 일은 없는데, 내 업무의 범위와 가짓수가 너무 많았다. 그 하나하나를 시작하는 게 각각 힘이 들었다. 어떻게든 한 가지 일을 시작하면 다시 집중이 되었다. 하지만 그 과정을 하루에도 몇 번씩 새로 해야 했고, 그때마다 나는 말 그대로 소진되었다. 일을 하며 나는 자주 악을 쓴다. 가끔은 몸이 덜덜 떨리고 숨 쉬기가 어려울 만큼 힘이 완전히 빠져나간다. 위가 너무 아파온다. 그럴 때면 당황스럽다. 이러면 뭘 할 수가 없으니까.


초등학교 5학년 때였나, 처음으로 물에 떴던 날을 기억한다. 수영장도 아니고 겨우 사우나 목욕탕이었다. 한 번도 물에 떠본 적 없던 나는, 안전하디 안전한 목욕탕에서 벽을 잡고 몸에 힘을 쭉 풀었다. 그 순간 몸이 둥실 떴다. 엄청난 유레카였다. 축구를 좋아하던 내게 그건 발리슛의 원리와도 비슷했다. 힘을 빼고 차야 일직선의 아름다운 슛을 할 수 있었다. 지금도 물에 뜨던 느낌, 좋은 슛을 차던 느낌을 재생하곤 한다.


힘을 빼는 것과 힘이 빠져나가는 것은 정반대의 일이다. 킬라그램은 왼손에 힘을 주었다가 푼다고 썼다. 힘을 풀어야, 다시 힘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힘이 빠져나가면 다시 힘을 줄 힘이 없다. 그때만큼 내 한계를 체감하는 순간은 없다. 그런 게 가장 두렵다. 신체 마지노선 탐색할 에너지까지 고갈되어 완전히 주저앉게 되는 일이. 갑자기 아무것도 할 수 없어지는 때, 내게 책임과 의무가 남아있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빠가 돌아가셨던 3년 전 여름이 기억난다. 나는 내가 조교를 맡았던 과목 팀플에서 팀장이었다. 발인 다음날이 발표날이었다. 장례식 동안 들여다보지 않았던 오픈채팅방은 발표 전날까지 잠잠했다. 장례식 일정이 모두 끝나고 집에 돌아와 카톡에 메시지를 남겼다. 제가 상을 치르느라 며칠간 연락을 못 드렸어요. 발표 준비된 게 없으니 괜찮으시면 그냥 제가 오늘 피피티 준비해서 내일 발표까지 다 진행하겠습니다. 모두 어색하게 대답을 했고, 나는 밤을 새우며 발표 준비를 했다.


다음날 대전에서 기차를 타고 학교로 올라가는 동안에도 피피티와 대본을 마무리했다. 코로나 시절, 그날은 그 과목의 첫 대면 수업날이기도 했다. 교수님은 모두에게 음료를 쏘고 싶다며 조교인 내게 부탁했고, 나는 지하철에서 카페를 찾아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학교에 도착해 1층으로 배달된 수십 잔의 아메리카노를 몇 번씩 계단을 오르며 4층까지 날랐다. 수업이 시작됐고, 한 팀씩 발표를 했다. 나는 그날 내가 피티를 제일 잘했다고 생각했다. 내가 실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다른 조들이 준비한 발표가 성의가 없었다. 그걸 보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저렇게 했어도 되는 거였나. 수업이 끝나자마자 다시 대전으로 내려갔다. 끔찍하게 피곤한 몸으로 지하철과 기차 안에서 아빠를 생각했다. 너무 미안했다.


가끔 나는 주먹을 최대한 꽉 쥐고 무언가를 해내려고 했던 것 같다. 그건 대단한 사람이 되는 일과도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성과를 달성하는 일과도 거리가 멀었다. 그냥 부끄럽지 않을 만큼만 내 자리를 가까스로 지켰을 뿐이다. 그렇지만 무언가를 작게나마 이뤘다고 느낄 때마다 이상하게 숨고 싶었다. 겨우 이거 가지고? 나는 내가 되고 싶었던 사람은 되지 못했다. 사실 정확히 내가 바라는 게 무엇인지 모르는 채로, 더 제대로 시도해보지도 않은 채로 20대를 보냈다. 한 가지 바랐던 것은 영화라는 산업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건 어쩌면 이룬 걸까? 이것을 하기까지도 나름대로는 애를 쓰며 살았다. 하지만 나는 내년에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 일이라는 걸 하고는 있을지 전혀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 불안해진다.


지금은 다만 주먹을 쥔 손을 펴고 싶다고 생각한다. 힘을 빼고 단순해지고 싶다. 그러면 의자가 떠오른다. 나무 의자를 좋아한다. 정확히는 나무 의자의 단순한 형태를 좋아한다. 앉는 일 외에 어떠한 군더더기도 허락하지 않는 정직한 모양. 앉아도 될까, 허공에 물어본다면 의자는 단지 그 대답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만 같다. 그러니 안심이 된다. 잘 앉으면 그만인 사물. 의자의 시선 위에 나의 시선을 얹고, 함께 바라보는 일 밖에는 할 수 없는 것.


합정역 지하철에서 내려 위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가 어쩌면 내가 가장 힘을 빼고 있는 시간이다. 그때만큼은 급하게 가지 않으려 한다. 최대한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멈춰 있는다. 1분도 되지 않는 그 잠깐의 시간이 평온함을 준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데도 무언가 나아가고 있는 느낌. 그저 그곳에 있으면 되는 것. 물론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린 뒤에는 잠깐의 시간도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나는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한다. 마감을 해야 한다. 그 사이에 처리해야 하는 다른 사업 업무도 많다. 하지만 압도당하고 싶지 않다. 의자 위에 가만히 앉아 팔을 올리고, 손가락에 힘을 줄 것이다. 그뿐이다. 그렇게 해나갈 것이다. 조금 버거울 때면 다시 힘을 풀고 심호흡을 하며. 버겁다는 말을 수백번 되뇌었지만, 곱씹어 보면 나는 지금 내 일을 좋아하는 것 같다. 분명 언젠가는 내가 이런 일을 했다는 걸 그리워하겠지. 나는 앞으로 무슨 일을 하게 될까. 점점 영화와 멀어지게 될까. 관객으로서 나는 만족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이제 나는 손가락을 움직이러 간다. 지금은 그거면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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