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카 발솜, 『대양의 느낌 - 영화와 바다』(현실문화)
책의 제목인 '대양의 느낌(oceanic feeling)'은 로맹 롤랑의 개념으로, 프로이트는 이를 빌려 '나와 외부 사이의 끊을 수 없는 유대감'이라 설명했다. 에리카 발솜은 이 은유적인 표현을 직유로 전환하며, 대양의 느낌을 "물의 기원으로 되돌려" 새롭게 사유한다.
그의 방법은 횡적인 영화사를 해체해 영화 속에서 바다가 재현되어 온 방식을 주제별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책의 아카이브는 단순히 영화 속 바다 이미지를 나열하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은 우리가 직면한 "생태적·인도주의적·정치적 위기의 시대에" 영화가 어떻게 '대양의 느낌'을 불러일으켜 새로운 감각과 연대를 촉발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데 목적이 있다.
첫 장의 주제는 '자연 그대로의 바다'다. 바다는 언제나 예측 불가능하다. 파도의 움직임, 물결의 반짝임은 인간의 의도와 무관하게 움직인다. 발솜은 이러한 바다의 특성이 영화와 닮아 있다고 말한다. 카메라는 ‘비인간적 자동기법’으로 인간의 의도 바깥에서 벌어지는 우연을 포착하는 기계다. 그런 점에서 바다란 곧 우연 자체가 물질화된 공간이다. 카메라가 바다를 찍는다는 것은, 영화가 본연의 설명 불가한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일과 같다.
발솜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모아나>의 '스플래시' 기술을 비판의 사례로 든다. 함수 계산을 통해 파도의 움직임을 시뮬레이션한 이 기술은 표면적으로는 완성도 높은 재현에 가까워 보이지만, 발솜에게 이는 바다의 우발성을 제거하려는 시도로 읽힐 뿐이다. 그는 이를 해수면 상승과 같은 "자연의 복잡성을 ‘해결’하겠다는" 인간의 불가능한 욕망과 겹쳐 보며, "계획, 계량, 예측 모델을 통해" 자연의 문제를 통제할 수 있다는 인간의 착각을 해부한다. 그러므로 바다의 예측 불가능성을 마주하고 있는 영화의 이미지들은 자연을 대하는 우리의 겸허한 태도를 일깨워준다.
이러한 시선은 바다의 '헤아릴 수 없는 깊이'를 다룬 2장에서 더욱 확장된다. 이번 장에서 발솜은 바다를 '완전한 이질성'을 품은 공간으로 다룬 영화 이미지를 분석하면서, "바다의 무질서함은 헤게모니적 가치관의 적정률과 합리성에 도전한다"고 설명한다. 바다는 미지와 불확정성을 간직한 원초적 공간이고, 우리가 바다를 통해 근원으로 회귀할 때 인간의 이성은 무효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1, 2장이 바다의 우연성과 깊이를 통해 인간의 합리성을 겨냥하고 자연의 회복을 강조했다면, 3, 4장은 바다를 재현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을 경계한다.
3장에서 발솜은 '연안 노동'을 다룬 영화들을 검토한다. 일부 영화는 산업화된 어업을 근대성의 상징으로 제시하고, 다른 영화는 반대로 노동자의 육체적 진정성을 부각하며 근대성에 맞서는 서사를 그린다. 전자와 후자는 변증법적인 시선으로 관점 사이의 긴장 상태로 존재하기도 한다. 그러나 발솜은 이러한 영화들이 공통적으로 “타자성의 매력에 의존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다시 말해 바다에서의 삶을 담은 많은 이미지들은 정작 그 안에 등장하는 지역 주민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깥의 관객들을 향해 제공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은 재현된 이미지 속에서조차 주변화된다.
그는 '포고 프로세스'의 영화를 대안적 사례로 제시한다. 캐나다 뉴펀들랜드 포고섬 주민들과 함께 제작된 이 영화에는 어업 현장의 장면이나 섬의 아름다운 해안을 포착한 이미지가 없다. 대신 영화는 복지·이주·협동조합 설립 등 지역 사회의 논의 과정을 기록했다. 완성된 영화는 다시 주민들에게 상영되어 또 다른 토론을 촉발했고, 실제로 어업협동조합 설립을 이끌어냈다.
발솜의 문제의식은 단순히 사회참여적인 영화의 필요성을 두둔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의 시선은 인간의 정체성을 배제하는 재현의 방식에 있다. 그는 4장에서 바다가 '대서양 노예 무역'의 항로였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그때 바다가 흑인의 존재를 어떻게 지워냈는지를 묻는다. 대서양 노예 무역을 다룬 유이한 할리우드 영화 두 편(테이 가넷 <노예선>, 헨리 해서웨이 <바닷속의 영혼들>)이 노예선을 단순한 배경으로 활용하며 노예제의 부채를 청산하고자 했던 미국의 욕망을 어떻게 품고 있는지를 들춰낸다. 발솜은 이를 통해 문명은 야만의 다른 얼굴임을 효과적으로 예증한다.
마지막 5장의 주제는 우선 '해상 운송'이다. 1950-60년대에 컨테이너화 된 해상 운송은 세계 경제의 양상을 근본적으로 재편했다. 그러나 선적 컨테이너는 우리 눈앞에 거의 드러나지 않으며, 우리는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발솜은 이렇게 컨테이너를 추상의 방식으로 재현해 온 여러 영화를 분석하며, "이 강철로 된 바다 괴물들"이 신자유주의적 무관심의 물질적 실체임을 밝힌다.
그는 이어 샤이나 아난드와 아쇼크 수쿠마란의 공동 프로젝트 <만에서 만으로 또 만으로>를 언급한다. 선원들이 직접 촬영한 영상과 그들을 담은 다양한 푸티지로 이루어진 이 영화는, 우리의 세계가 여전히 “몸의 물리적 작업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디지털 이미지와 추상화된 지표가 지배하는 시대에도, 세계는 여전히 육체적 노동 위에 세워져 있다는 점을 환기하는 것이다.
규모는 추상을 낳는다. 즉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의 물리적 조건은, 그것이 거대해질수록 이해 불가능한 차원으로 미끄러진다. 이는 우리가 기후위기 문제 앞에서 비물질화된 이미지로 도피하거나 그것을 무력하게 외면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발솜은 이 지점에서 "물리적 현실에 기반을 둔 렌즈 이미지가 할 수 있는 일"에 주목한다. 영화적 이미지는 우리가 세계의 "물질적 취약성과 대면"할 수 있도록 만든다.
『대양의 느낌 - 영화와 바다』는 바다를 단지 재현의 대상이 아닌, 우리가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이자 시선으로 인식하자고 제안한다. '대양의 느낌'이란 현실 감각이자, 우리를 감싸는 세계와의 연결을 자각하게 하는 경험이다.
"우리는 이 세상 밖으로 떨어질 수 없다"라는 책의 마지막 문장은, 바다가 인간과 비인간을 모두 구체적으로 결부시킨다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연대를 강조한다. 또한 바다를 하나의 상징으로 두는 대신 바다를 통해 얽혀 있는 우리의 관계망을 인식할 때, 영화는 윤리적·정치적으로도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도 들린다.
우리는 영화 속에서 바다 이미지를 수집하며, 혹은 현실의 바다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저마다의 '대양의 느낌'을 발견해갈 수 있을 것이다. 당신과 나의 감각이 서로 공명할 때, 우리가 회복하는 것은 어쩌면 다른 세계를 향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상상력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