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오토, 『100m.』(학산문화사)
우오토의 괴물 같은 장편 데뷔작 『100m.』가 넷플릭스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다. 100m 달리기를 주제로 하는 만화인 만큼 달리기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가 어떻게 구현해 낼지 기대하며 작품을 보았다. 애니메이션은 충분히 재미있었고, 만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연출적 쾌감도 있었다. 그럼에도 역시 무언가 부족했다. 처음 『100m.』를 읽었을 때 느낀 충격을 애니메이션에서는 체감할 수 없었다. 되려 그 충격의 정체가 무엇이었던 걸까 돌아보고 싶어 다시 만화를 펼치게 되었다.
가끔 스포츠 경기를 보다 보면 유독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살면서 가장 많이 본 스포츠가 축구이다 보니, 예를 들자면 '안필드의 기적'이라 불리는 18/19 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 리버풀과 바르셀로나 경기가 떠오른다. 1차전에서 1-4로 패했던 리버풀은 홈에서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3-0 스코어를 만들며 원정 다득점 원칙에 따라 역전에 성공한다. 역대급 역전골을 넣었던 베이날둠의 세레머니. 도저히 몸을 주체할 수 없어 보이는 그 장면에는 육체만으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광적인 흥분이 있다. 이때 그의 얼굴은 영혼이 몸을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을 치는 형상에 가깝다.
극적인 상황에서 골을 터뜨린 선수들이 그 기쁨을 주체할 수 없어, 몸을 찢어버릴 것처럼 달려가는 듯한 순간이 아주 가끔 있다. 그때 선수의 단단한 신체는 불순물 없는 온전한 상태의 감정을 모두 담아내기에는 부족한 그릇처럼 보인다. 선수는 있는 힘껏 몸을 뒤틀고, 점프하고, 주먹을 내지른다. 『100m.』를 읽으며 나는 그런 장면들을 자주 떠올렸다.
※ 스포일러가 있어요
『100m.』는 '전력질주'의 만화다. 동시에 전력질주 하는 만화이기도 하다. 전체 내용 중 '전력질주'라는 표현은 단 두 차례 등장하는데, 그것이 이 작품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장면이다. 다시 만화를 보며 이 표현을 곱씹었다. 전력질주. 말 그대로 온 힘을 다해 빠르게 달려 나간다는 뜻. 익숙한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말이 너무나도 생경했다. 도대체 전력질주라는 건 뭐지? 나는 전력질주를 해본 적이 있나? 아마도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온 힘을 다했던 때는 엄마의 몸을 가르며 나왔던 탄생의 과정에 있었을 것이다. 스스로 육체를 통제하지 못하고 이미 그것을 앞질러 버렸을 전력의 순간.
초등학생인 토가시는 달리기 재능을 타고난 아이다. 어릴 때부터 천부적으로 빨랐던 그는 달리기에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그것은 곧 그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에게 세상의 모든 문제는 "100m만 그 누구보다 빠르면 다 해결"된다. 그런 토가시 앞에 코미야가 나타난다. 코미야에게는 재능이 없다. "현실보다 괴로운 일을 하고 있으면 현실이 흐릿해지거든"이라고 말하는 코미야에게 달리기는 고통 그 자체다.
하지만 토가시는 코미야에게 알 수 없는 '열기'를 감지하고, 그에게 달리기를 가르쳐준다. 이윽고 학교 체육대회 날, 코미야는 100m 달리기 시합에 나선다. 출발하자마자 넘어진 코미야를 아이들은 비웃는다. 갑자기 토가시가 코미야를 조롱하는 친구의 턱을 전력을 다해 갈겨버린다. 홧김이었지만 그 폭행은 토가시가 처음으로 자신의 육체를 제어하지 못하는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그리고 코미야는 일어나 달린다. 이때 코미야의 발은, 만화의 네모난 페이지를 벗어나고자 하는 움직임으로 그려진다.
코미야에게는 정말 재능이 없었던 걸까? 얼마 후 중학교 육상 대회에서 우승한 니가미 선수 앞에서 토가시와 코미야가 달리게 된다. 토가시의 달리기를 본 니가미는 그의 재능을 극찬한다. 그러나 이어서 코미야의 달리기를 본 그는 경악한다. 폼은 엉망진창인데 기이하게 빠른 코미야의 주법을 두고, 니가미는 '지나치게 전력을 다하는' 주법이라 중얼거린다. 즉각 니가미는 코미야에게 달리기를 그만두라고 말한다. 심지어 언젠가는 육상이 그를 죽일 거라는 섬뜩한 예언까지 덧붙이면서.
코미야의 달리기에서 만화의 네모난 칸은 육체의 한계와 동일시된다. 그는 칸의 윤곽선 끝에서 그 벽을 부숴버릴 것처럼 달린다. 『100m.』 1권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압도적인 폭발력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코미야의 전력질주에는 몸의 임계점이 만화의 형식과 정면으로 충돌하며 극한으로 치닫는 에너지가 있다. 데뷔작인 만큼 정제되지 않은 우오토의 거친 그림은 오히려 그 질주를 박력으로 치환하는 연료로 쓰인다. (이 작품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 주저되었는데 내게는 글이라는 틀이, 갇힌 신체처럼 만화의 감각을 담아낼 수 없으리라 느껴졌기 때문이다.)
토가시에게는 신체 능력의 밸런스를 알맞게 활용하는 기술적 탁월함이 있다. 그러나 코미야에게는 육체 따위는 당장이라도 쓰레기처럼 내던질 수 있는 '전력질주'의 재능이 있다. 그리고 코미야는 토가시에게 그 감각을 전이시키기에 이른다. 1권 마지막 두 사람의 터널 경주에서 토가시는, 몸의 내구성을 계산하지 않고 무너짐으로 대항해 오는 코미야에게 압도당하며, 처음으로 '전력질주를 한다'고 느낀다. 이때 토가시는 피치, 리듬, 중심 이동, 균형의 계산이 아닌 혈관, 뼈, 냄새, 맛의 접합으로 달리기를 감각한다.
그러나 곧 코미야가 발의 뼈가 부러진 채로 달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토가시는, 늘 1등만 해오던 자신의 달리기가 부정당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으로 자각한다. 그때부터 토가시는 코미야의 환영에 시달린다. 언젠가는 추월당할지 모른다는 불안함과 만개하지 못하는 재능. 그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한 토가시는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육상을 포기하기 직전의 상태에 이른다.
『100m.』가 여느 스포츠물과 다른 점은 우선 코미야의 성장이 육체를 담보로 이루어지는 교환처럼 그려진다는 데에 있다. 나아가 이 만화에서 주인공은 꾸준히 성장하지 않는다. 다른 인물들 역시 방향을 상실한 채 달린다. 5권에 이르면, 10년 후의 토가시는 그저 그런 시 소속 선수가 되어 있다. 고등학교 시합에서 코미야에게 패배한 이후 토가시는 다시는 전력질주를 하지 못하는 선수가 된다. 기량을 유지하며 프로 생활을 근근이 연장하는 것이 그의 목표일 뿐이다.
100m 달리기는 다른 종목과 다르게 완급조절을 할 수 없는 운동이다. 0.001초 차이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극한의 세계에서, 10초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선수들은 모든 것을 쏟아내야 한다. 이곳에서 선수들은 달리는 목적을 잃으면 한순간에 허무로 가라앉는다. 이렇게나 예민하고 섬세하고 폭발적이고 허탈한 스포츠라니. 겨우 10초의 시간을 위해 무수한 나날을 바쳐야만 하는 선수들은 어떻게든 달리는 이유를 찾으려 발버둥친다.
현실을 잊기 위해 달린다던 코미야는 어느새 '위대한 기록'만을 탐하는 선수가 되어 있다. 너무나도 빠른 나머지 이미 허무에 잠식된 자이츠는 자신에게 대항할 경쟁자를 갈망한다. 그는 경쟁자가 없는 1등의 풍경은 꼴찌와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한다. 자이츠에 밀려 만년 2등을 해온 카이도는 '자이츠'라는 현실을 직시하고, 그것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달린다. 그의 달리기는 일종의 자기 세뇌에 가깝다.
라인에 섰을 때 보이는 풍경은 일직선의 길이다. 그곳은 자신과 싸우는 자리일까, 아니면 옆에 선 경쟁자와 맞서는 자리일까. 혹은 멀리서 자신을 응원해 주는 누군가를 향해 뛰는 것일까. 일본 육상 대회 남자 100m 결승을 앞두고 코미야가 토가시에게 던진 질문은, 만화가 우리에게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뛰고 있는 걸까?"
대회를 앞두고 기록이 상승하던 토가시는 선수 생활 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일본 육상 대회에서 결과를 낼 수 있다는 희망을 품는다. 그러나 많은 것이 맞아떨어져 가던 순간 그는 무릎이 파열당하며 대회에 출전조차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선수 생활 역시 더는 이어갈 수 없다. 그는 체념한다. "이 세상은 속도만이 다가 아니니까 굳이 인생까지 걸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그러나 토가시는 완전히 내려놓았다고 믿었던 자리에서 자기도 몰랐던 마음을 직면한다. 아직 뛰고 싶다는, 100m에 인생을 걸고 싶다는 마음.
이제 이야기는 2권에서부터 시작하는 토가시의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토가시가 육상을 포기하려던 순간에, 어떻게 그가 자신의 초심을 발견했는지가 이곳에 이미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육상부에 가입할 생각이 없던 토가시를 집요하게 붙잡는 인물은 선배 아사쿠사다. 그는 프로가 될 재능은 없지만, "뛰고 싶다는 마음에서는 도망칠 수 없으니까" 혼자 훈련을 하며 초라한 육상부를 지키는 사람이다. 이 만화 속에서, 그는 누구보다 있는 그대로 달리기를 사랑하는 이다.
토가시는 아사쿠사의 부탁으로 마지막으로 100m를 뛰기로 한다. 하지만 아무런 기대 없이 달린 자리에서 그는 뜻밖의 감각을 체험한다. 토가시는 아사쿠사를 떠올리며 달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 만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순수한 직관의 페이지가 이곳에 있다. 두 펼침면을 가득 채운 토가시의 달리기에는 집착도, 광기도 없다. 만화의 네모난 칸을 뚫어버리겠다는 기세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박차고 나가는 중이다. 윤곽선마저 사라진 공간 속에는, 토가시가 그 순간을 온전히 누리고 있다는 평온만이 깃든다. 그는 두 번째로 '전력질주를 하고 있다'고 느낀다. 그리고 자문한다. "왜 방금 전력을 다해 뛴 거지? 나는 왜 방금 빨랐던 거지?" 아마도 이 문장의 '왜'는 '어떻게'로 바꿔 적어야 할 것이다.
토가시는 마침내 그를 따라다니던 어린 코미야의 잔상과 처음으로 마주한다. "토가시. 달릴 셈이야?" "응. 당연히 진지하게." 이것이 달리기를 향한 토가시의 대답이자, 그가 발견한 초심이다. 그러니 반드시 돌아와야 하는 스타트 라인이다. 다음 페이지, 토가시는 이미 달리기 시작했다. 그곳에 있는 것은 달려 나가는 토가시가 아니라, 코미야를 박차고 이미 출발해 버린 그의 손이다. 여전히 사각의 경계는 견고하지만, 이 장면에서 작가는 토가시의 전신이 아니라 손만을 앞세운다. 몸 전체가 아니라 출발의 의지만이라도 틀보다 먼저 나아가게 하기 위해서. 만화의 형식이 허락한 최선의 탈주다. 운동회 장면에서 코미야의 발, 그리고 토가시의 손을 보며 느꼈다. 이 만화는 지금 전력질주를 하고 있구나.
토가시의 두 번의 전력질주. 코미야로부터 전이된 첫 번째 달리기는 한계를 지닌 신체를 탈각해 버리려는 광기의 질주다. 아사쿠사에게 감화된 두 번째 달리기는 달리는 순간에 온전히 속해있는 몰입의 질주다. 무엇이 맞는 것일까. 첫 번째 전력질주는 여전히 우리에게 묻게 한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기록을 위해서? 영광의 순간을 위해서? 극한의 감각을 누리기 위해서? 이 질문은 여전히 우리를 매혹시킨다.
다시 5권으로 돌아가 보자. 큰 부상을 당한 채로 코미야는 어떻게든 일본 육상 대회에 출전한다. 그는 더 이상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 프로 계약의 지속 여부는 그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는 단지 예선과 결선, 두 번 달리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결선 전날. 앞선 코미야의 물음 -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뛰고 있는 걸까? - 에 토가시는 답한다. "진지해지기 위해서."
코미야의 달리기는 저 첫 번째 전력질주를 닮아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결선을 앞두고 그는 '인간이 진심을 다할 때의 행복감'을 운운하는 토가시의 말을 자신은 그런 풍경을 본 적 없다며 일축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마지막 질주가 시작된다. 이번에는 코미야가 실력 이상의 힘을 끌어내는 토가시의 달리기에 점점 동화된다. 그가 처음 달렸던 이유처럼 '현실이 흐릿해진다.' 무의 자리에서 코미야는 '이기고 싶다'는 마음을 감각하고, 앞서 가던 토가시를 따라잡는다. 이번에는 토가시가 코미야를 이끈 것이다.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도착한다. 승패는 가려지지 않는다.
발이 부러져도, 무릎이 파열돼도 왜 그렇게까지 뛰려는 거야? 도대체 무엇을 위해 뛰는 거야? 이야기는 마침내 그러한 질문이 모두 여과되어 투명해지는 순간에 도착한다. 만화의 마지막, 두 사람의 표정은 말하고 있다. 모든 질문은 무의미해. 달리고 있는 순간만큼은. 끔찍한 고통과 순수한 몰입이 뒤섞인 채, 두 사람은 여전히 달리고 있다. 전력을 다해서. 진심을 다해서. 고정된 만화의 그림은 바로 이러한 순간을 붙박기 위해 존재한다는 듯이, 우오토는 토가시와 코미야의 아름다운 찰나를 포착한다.
자이츠는 이렇게 말했다. "100m는 순간에 인생이 응축된 것이다. 그 시간에서만 얻을 수 있는 고양감, 그 거리에서만 허락되는 풍요로움이 있다. 희망, 실망, 영광, 좌절, 피로, 만족, 초조, 달성, 희로애락. 전부 담겨 있으니, 최고의 10초를 맛봐라." 그들은 마침내 달리는 순간 알게 된다. 달리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런 이야기에 매료되지 않을 도리가 내게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