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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찬 Jul 07. 2022

6월 5일

어머니, 태우 갔어, 엄마가 할머니에게 말했다 할머니가 지금 맞닥뜨릴 밤의 크기는 무엇일까 이마에 주름도 다 펴지고 살아있던 어떤 때보다 편안한 얼굴이었어 직선과 사라짐이 동의어가 되는 세상에서 언젠가 일곡선의 죽음을 맞게 되리라 주위 모든 것이 늙어가고 늙어가고 하나씩 차례대로 늘그머니 슬그머니 느지막이 곧게 나는 아주 곱게 곧게 일그러진 채


내가 어머니한테 많이 의지해, 어머니가 아니라 내가 의지를 많이 하지, 엄마는 남양유업 친구들에게 말했다 엄마의 아버지 장례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식탁에 앉아 부조금을 정리하던 엄마 흐릿한 엄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어요? 그때 나는 엄마를 위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할머니, 이제 엄마가 딸이지, 바라게 되었다 할머니가, 오래, 살아있기를


나는 여전히 방법을 모른다


끔찍하지 산다는 게 밤이 너무 거대해서 진동이 되지 못한 묵음 천사백 년 동안 알려지지 않은 무덤 평화를 깬 침입자들 혹처럼 둥근 왕릉 위로 머리처럼 자라는 풀 아무것도 전해지지 않는다 진공 상태로도 우리는 기화될 수 있다 내 소중한 주름들 물음들 죽음들 모두 늙어가고 하나씩 묻어가고 차례대로 풍겨가고 우리 아빠 천국이 있다면 그건 삶일까, 그렇다면 기도를 멈춰야겠지, 삶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곳은 내게 아무것도 아니에요


블랙홀의 소리가 관측되었다 이명이 들린다 오른 귀로 우리 엄마 왼 귀로 우리 형 엄마, 엄마가 청주로 간다면 나는 대전을 잃을 것만 같아요, 엄마는 할머니마저 죽으면 대전을 잃을 것이다 귀로 귀로 태우 갔어, 어머니, 어디로 갔어요, 돌아, 갔어요? 빙글 부서지고 늘어지는 소리들은 어디로 어디로 오고감의 운동으로 나는 엄마를 보고 형을 보고 삶이 거처하는 작은 소음 안에서 웅크리고 나를 본다 웅크리면, 내가, 보인다, 망망대해 한가운데에 눈을 감고 싶다 한가로운 가운데 너무 많은 것이 있어 유년의 더깨 어깨가 짓눌린 새벽 내게도 평화가 올까 다음 다음 그것은 뉘앙스 뉘앙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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