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찬 Jul 24. 2022

고요함

고요함이 필요했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지 못해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는 작은 함. 각지고 단단한. 고요함을 응시하면 몸을 웅크리고 싶을 것이다. 고요가 잔뜩 든 고요함 안에서. 아니, 잔뜩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고요는 고요함의 내면/내부에 그저 있을 뿐일 테다.


예고 없이 침범해오는 무수한 소음이 못 견디겠을 때면 눈을 감고 고요함을 떠올렸다. 그 상자를 열기 위해서는 어떤 열쇠가 필요할까. 그건 귀의 모양을 닮은, 몸을 둥글게 만 어떤 모양. 고요는 듣는 것일까, 듣지 못하는 것일까. 고요함을 열기 위해 무언가를 들어야 한다면,  안에 든 것은 귀를 덮어주는 반투명의 고요일 것 같다. 고요함은 반드시 물질일 것이다. 연약한 고요를 지켜주기 위해 튼튼하고 꿋꿋하게 존재하는 물질.


고요, 라고 발음하고 귀로 그 소리를 듣는다. 그 뒤에 함, 의 여운을 붙이자 아주 작은 함박눈이 내리는 동안 멈춰있는 시공간이 보인다. 그것이 고요다. 곧 사라질 함박눈 한 송이를 위해 모든 풍경이 잠시 멈춰주는 배려. 그때 고요함이 담아낼 것은 함박눈의 소멸을 닮은 무엇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