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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찬 Oct 28. 2022

있지, 로 시작하는 긴 편지를 쓰고 싶다




새벽 5시, 잠에서 깬 엄마가 방에서 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가 출근을 준비하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언제나 그 소리의 표정이 보고 싶다. 외롭게 느껴진다. 잠에서 깬 척 방에서 나가 엄마에게 말을 건다. 나는 이른 새벽에 깼어요 엄마, 잠이 오지 않았어요, 말하지 못하고. 졸린 척 화장실이 가고 싶어 깼다 말한다. 몇 마디 얘기를 하고, 잔소리를 듣고, 출근 조심히 하라는 말을 하고 나면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진다.


분리수거를 하는 날이었다.  자고 일어나 씻고, 창문을 열고,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를 하고, 분리수거를 했다. 지난 새벽이 그 시간 동안 비로소 잠에 들었다. 아파트 사람들이 삼삼오오 나와 저마다의 동작으로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오래 지켜보고 싶었다. 아파트는 벌초 시즌인 듯했다. 깔끔해진 가지들이 꼭 구레나룻까지 밀린 중고등학생처럼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조금 웃겼다.


텅 빈 집에 들어오니 집안 곳곳이 너무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곳을 오래 지키고 있던 자리와 그곳의 사물들. 그들이 공평하게 나눠갖는 햇볕의 다정을 닮고 싶었다. 볕과 곁. 햇볕은 닿는 것, 감싸는 것, 내려앉는 것. 만지려 하지 않아도 이미 만지고 있는 것. 위로가 된다. 언제나.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러지 못할 걸 알면서도.


저번에 본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허무마저 와락 감싸안는 다정에 관한 이야기였다. 영화를 보며 많이 울었지만, 이제 나는 다정함 역시 실패할 수 있다는 걸 안다. 다정에는 언제나 방향이 있었다. 내게 온 다정을 받아주지 못해 미안하기도, 내가 보낸 다정이 가닿지 못해 괴롭기도 한 밤을 거치며, 나는 실패한 사랑을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냥 하염없이 다정해지고 싶을 뿐인데, 그게 왜 그렇게 힘든 걸까. 다정이 시든 자리에서는 다시 허무가 고개를 든다. 무엇이 되지 않고도, 혼자가 된 채로도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러나, 나의 살아감은 무엇이 될까, 여전히 그런 생각 한다.


새벽에는 축구 경기를 틀어놓았다. 오늘은 축구를 보는 게 견디기 어려웠다. 텅 빈 공간에 네모난 선을 긋고, 골대와 둥근 공을 가져다 규칙을 만들고, 편을 나눠 승부를 겨루고, 그들을 보며 목이 터져라 응원을 하는, 아무것도 없던 자리에서 90분을 만들어 살아내는 것. 나는 그렇게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집안 구석구석을 찍었다. 사물이 되고 싶었다. 낡아가고 싶은 것 같다. 늙어가는 게 아니라. 늙어가는 건 무섭다. 엊그제 엄마는 내게 텅 빈 집에 우두커니 혼자 있을 때 감정을 이야기했다. 9년 뒤면 일이 끝나고 그 뒤로도 20년은 더 살아야 할 텐데, 내가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그게 참 아득하더라구. 엄마는 울먹였다. 내가 대전을 떠날 수 있을까. 지금 이 시기를 끝없이 유예하고 싶었다. 딸이라도 있었으면 더 나았을까, 왜 딸들은 엄마랑 수다 떨고 그런 게 있잖아, 말하는 엄마에게 조금 더 살가운 아들이 될 수 있게. 죄책감을 덜 수 있게. 내가 어떤 의미가 될 수 있게.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 입원해있던 2~3달의 시간은 엄마가 태어나 처음으로 혼자 살아보는 시간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 짧은 시간이 엄마를 약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는 것도. 나는 엄마한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조용히 숨을 쉬며 엄마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 손이 아주 조금은 햇볕을 닮았으면 했다.


엄마, 자취를 하며 방에 혼자 있는 시간마다 나는 자주 아득해졌어요.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너무 까마득했어요.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살아감을 발명해 갈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2달 동안 나갔던 야간 철도 일이 끝난다. 지난달 신호수를 했을 때 나는 작업 시간 내내 혹시 올지도 모르는 기차를 감시했다. 시야의 끝이 어둠에 묻힌 철도를 보다 보면, 내가 지금 기차를 감시하는 것인지 기다리는 것인지 헷갈렸다. 쉬는 시간에 플랫폼 위에 누워 하늘을 봤던 날이 있다. 연산에서는 별이 잘 보였다. 별을 보며 손으로 별자리를 이어보던 사람들을 상상했다. 함께 있고 싶었을까. 이야기가 되는 순간 우리는 조금 덜 외로워지니까.


사물의 형태를 쓸어본다. 사물의 마음을 그려본다.

어떤 기다림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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