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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인 Oct 04. 2020

여행의 모든 순간 온전히 있기 위해 글을 쓰기로 했다.

*Day 2 /  20200925 금요일

#그레이마우스 @Greymouth


새벽에 큰 비가 내렸다고 일어나자마자 오빠가 이야기한다. 잠귀 어두운 나는 어김없이 "아 그랬어?" 대답한다. 어제저녁 그레이마우스 숙소에서 잠이 잘 안 와 뒤척이다가 늦게 잠들었는데 나보다 일찍 잠든 오빠는 부지런히 일어나 샤워를 하고 있었다. 자고 일어나니 기운이 회복되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싶었는데 오늘은 이 낯선 동네에서 뭔가를 찾아 나서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체크아웃할 준비를 일찍 마치고 식당으로 내려가서 커피와 핫 초콜릿, 누텔라와 스낵으로 간단하게 아침 요기를 했다. 오빠는 사진 정리, 나는 다이어리를 쓰고 나서 뒤늦게 그레이마우스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았다. 그레이마우스(Greymouth)는 탄광 지역으로 유명하고 아직까지 석탄 산업이 주를 이루고 있다. 아주 오래전에 이 곳에 큰 금이 나와서 많은 사람들이 금을 캐기 위해 왔었다고 한다. 우리가 하룻밤 머무른 백팩커스도 예전에는 사람들이 많이 오갔던 이 지역의 유명한 호텔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텅텅 빈 방과 으스스한 분위기로 백패커인 우리에게 씁쓸한 인상을 남겼다.


그래도 여전히 사람들이 즐기는 이 지역의 맛은 바로 맥주다. Monteith's Brewery라는 양조장과 레스토랑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책에서도 추천했을 뿐만 아니라 백팩커스 매니저도 우리에게 이 레스토랑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제저녁에 갔으면 좋았을 텐데 못 가보았으니 기차 타기 전에 점심을 먹기 위해 갔다. 생맥주를 테스트해보고 싶었던 나는 3가지 맛(필스너, 흑맥주, 청포도 사이다)으로 테스터를 주문했다. 오빠가 먹고 싶은 후라이드 치킨이랑 같이 주문했는데 정말 너무 만족스러웠다. 뉴질랜드 와서 한국만큼 맛있는 치킨은 처음이다. 어제저녁부터 허술하게 먹은 나는 가벼운 맥주에도 정신이 살짝 알딸딸했다.

Monteith’s Brewing 맥주 회사





#여행하는 방식에 대하여-


오빠는 여행하면서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블로거나 유튜버를 하면 정말 잘할 것 같은데 정말 열심히 찍고 모두 개인 소장이다. 반면에 나는 사진 찍는 것을 즐겨하진 않는다. 눈으로 담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눈으로 담기 바쁘다. 내가 느낄 수 있는 육감으로 최대한 그 순간을 누리고 싶다. 그래도 오빠가 나를 사진으로 담아줄 때 행복하다. 내가 보고 있는 아름다운 것들을 오빠가 카메라에 담아줄 때 너무 고맙다. 하지만 오빠도 때로는 내가 먼저 오빠를 사진에 담아주고 같이 "저거 찍자"하면서 오빠의 사진 활동(?)을 격려해주길 원한다. 나도 오빠가 어떤 순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함께 온전히 있어주길 바랄 때가 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서로가 각자의 여행하는 방식을 존중해주며 자신과 상대방을 행복하게 느끼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그레이마우스의 시계탑 앞에서.




#말이 필요 없는 트레인알파즈 기차 @Greymouth to Christchurch


말이 필요 없는 풍경이지만 많이 적어야 될 것 같은 우리의 첫 뉴질랜드 기차 경험.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캠퍼밴 업체에서 전화가 왔다. 온라인으로 체크인을 먼저 해달라는 재촉 전화였다. 아차 했던 나는 기차를 타자마자 체크인을 하기에 바빴다. 다행히(?) 기차가 20분 연착되어 그 시간에 체크인을 할 수 있었으나... 기차를 타고 가면서 업체에서 또다시 전화가 왔다. 차 보험을 들지 않았던 우리에게 뉴질랜드 3000달러를 보증금으로 걸어둘 수 있는 카드를 다시 입력해 달라는 연락이었다. 이제 여행비용으로 3000달러 남겨두었는데 그걸 보증금으로 걸어두자니 암담했다. 생각해 보니 신용카드도 챙겨 오지 않았던 우리는 후회막심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를 의논하느라 기차 풍경을 멍 때리며 바라볼 수가 없었다. 게다가 기찻길이 통하는 많은 구간이 No service 여서 데이터도 사용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는 마지막 업체와의 전화에서 "How can I do now?"라고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하며 그냥 지금 기차를 타고 있는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머리가 복잡하고 스스로에게 괜히 화도 났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나에게 주어진 이 시간, 지금 지나쳐가는 많은 풍경을 눈과 가슴에 담으며 아무 생각하지 않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고프로까지 "나는 이만 꺼져줄게."라고 작별 인사를 하며 우리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저 보고 느끼고 자유하라고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았다. 그렇게 도착한 크라이스트처치.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는데... :-)   

우리가 가는 곳 어디나 미리 준비해주신 무지개:-)
내사랑 미스터 담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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