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도박이 가져다준 선물

유튜브 채널 도박엔딩 인터뷰 이야기

by 플로쌤

지난 주말, 나의 생애 첫 책 <도박과 이혼하겠습니다>를 읽은 분으로부터 제의를 받아 유튜브 영상을 찍었다. 유튜브 채널 이름은 '도박 엔딩'이고, 그 안의 프로그램 명은 '복면 타자'이다.



이 채널에서는 도박에 빠졌다가 가까스로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온 이들이, 어떻게 다시 일상의 행복을 찾게 되었는지 적나라하게 풀어놓는다. 그렇기에 나는 이 초대를 망설임 없이 수락했다. 내 책의 주제와도 닿아 있고, 나의 출간 소식을 알릴 좋은 기회도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앞두고 며칠 동안 사전 질문지를 들여다보며 고민에 잠겼다. 이런 얘기를 하면 좋을까? 아니, 저런 얘기를 더 궁금해하지 않을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청취자들이 듣고 싶어 할 이야기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고 싶었다. 책에 쓴 얘기들이 짧은 인터뷰를 통해 잘 전달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일단 찍어서 업로드되면 두고두고 남을 영상이 될 것이므로 나는 아내 박 여사에게 연습 삼아 내가 대답할 내용을 미리 말해보았다. 박여사는 약간의 거리를 둔 채로 나의 대답에 대한 조언을 해 주었다. 임기응변 식으로 일처리를 하는 나, 미리 철저한 준비를 하는 아내, 극히 다른 두 사람의 스타일을 적절히 버무리면 좋은 인터뷰 준비가 되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원래의 내 방식과 다르게 미리 준비를 하다 보니(지나고보니 준비라고 하기엔 너무 부실했다.) 부작용이 생겼다. 처음엔 잘하고 싶은 욕심 따윈 크게 없었고, 그저 나의 얘기를 솔직하게 전달하자는 심정이었는데 인터뷰 날짜가 다가올수록 자꾸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었다.



마침내 그날이 왔다.
인터뷰어는 ‘쌍촌 김’, 또는 ‘마카오 김’이라는 별칭을 가진 분이었는데, 유튜브 영상에서 보다 실물이 훨씬 더 잘 생기고 옷차림이 멋스러웠다. 그의 단도박 기간은 나보다 6년 정도 더 오래되었다고 했다. 단도박모임을 다니다 보면 회복의 여정을 먼저 가고 있는 사람들을 선배 협심자 또는 선행자라고 부른다. 그분들에게서 자기 내면에 대한 깊은 성찰, 삶을 대하는 태도 같은 정신적 성장에 대해 많은 것들을 배운다. 그가 실제로 도박중독자였고, 더군다나 배울 것이 많은 선배 협심자분이 나를 인터뷰한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면접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 대하는 스탠딩 카메라와 45도 각도로 비추는 조명 앞에서 괜히 의기소침해졌다. 입고 간 셔츠도 마음에 들지 않아 겉옷을 그대로 입은 채로 인터뷰에 응했다. 거기에다 산타 가면을 쓰고 영상을 찍었더니 인터뷰 내내 땀이 줄줄 흘렀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질문에 대답을 할 때 마치 정답이 있는 것 마냥 순간적으로 머릿속으로 검열하며 대답하는 내 모습이 느껴졌다. 그래서 인터뷰 내내 이미 했던 말을 약간 수정해서 다시 말하곤 했다. 자기소개부터 마지막 인사까지, 계속해서 '더 잘할 수 있었는데'라는 마음이 남았다.


가장 아쉬웠던 건,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였다.


“도박을 멈추고 나서, 좋아진 점이 있다면요?”


나는 수많은 답 중에서 엉뚱하게도 맨 먼저 몹씨 개인적이고 원초적인 대답을 했다.(어떤 대답을 했는지는 유튜브 영상이 업로드 되지 않아, 스포일러가 될 것이므로 아쉽게도 다음에 공개하기로.)


그 말을 내뱉는 순간 나 자신도 우스웠고, 유튜버 선생님도 예상 밖의 내 대답에 피식 웃으셨다.
그건 진심이었지만, 듣는 사람들이 재밌게 생각할 지는 몰라도 도박을 멈추어야만 하는 당위성에 대해 크게 공감하며 감동해 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이것 역시 나의 검열이자 더 수준 높은 대답을 하고 싶은 욕구일지도 모르겠다.

도박에 빠져 있던 시절 나 자신의 육체와 정신의 세포 하나하나까지 고통스러웠던 기억, 그리고 도박이 멈추고 나서 느꼈던 안도의 감정들을 생각한다면 몇 시간을 이야기 해도 모자랄 터인데, 그 수준의 대답 밖에 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며칠 동안 계속 후회가 되었다. 아무튼 그 뒤로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지금 다시 그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훨씬 더 깊고 넓게 대답하고 싶다.


단도박을 하며 내게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며 대화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되찾았다는 것이다. 과거엔 죄책감과 수치심이 나를 집어삼켰다. 지금은 가족에게, 주위 사람들에게 했던 온갖 거짓말과 정상적이지 않았던 행태를 멈추었기에 떳떳하다.


그리고 가정이 무너지지 않고 남아있다는 것, 그 자체가 가장 큰 선물이다.
아내와 아이들과 보내는 평범한 저녁 시간,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도박에서 멀어지며 다시 손에 넣은 진짜 보물인지 모른다.


빚을 빨리 갚아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난 마음의 평온함, 잠들기 전 숨이 탁 막히는 불안감 없이 잠을 청할 수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그리고, 단도박 모임에서 만난 수많은 인연들.
그들은 평범한 삶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를 알게 해 주었고, 함께 울고 웃으며 이 길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새롭게 가르쳐준다.


도박은 잠시동안 나와 내 가정을 망가뜨렸지만 파괴하지는 못했다. 이 모두가 단도박 모임을 만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도박엔딩 #복면타짜 #유튜브채널인터뷰 #도박과이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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