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도박은 ‘의지’가 아니라 ‘포기’에서 시작된다

회복프로그램 1단계 : 도박에 무력하며 정상적으로 살 수 없음을 시인

by 플로쌤

GA 모임에 처음 참석하는 중독자들의 마음가짐은 제각각이다. 대부분은 스스로의 선택이라기보다 가족에 이끌리다시피 나온다.


참석자들은 표면적으로는 모두가 같은 말을 한다.


“도박을 끊고 새로운 삶을 살겠습니다.”


하지만 그 말이 어디까지 진심인지는 조금만 들여다보면 금세 알 수 있다.


나 역시 그랬다. 2019년, 처음 GA라는 곳을 알았을 때 나는 진심으로 단도박을 결심한 사람이 아니었다. 아내의 간섭을 누그러뜨리고, ‘도박 안 하는 척’을 하기 위해 GA에 다녔다. 모임에 몸은 와 있었지만 마음은 늘 콩밭에 가 있었다. 점점 참석 횟수도 줄었다.

급기야 “모임에 다녀오겠다”고 집을 나선 뒤, 지하철 플랫폼이나 차 안에서 한두 시간을 앉아 도박을 하다 귀가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렇게 6개월 동안 이중생활을 했다. 숨겨두었던 계좌의 잔고는 결국 0원이 되었고, 빚은 다시 늘어났다. 이미 억대의 빚이 있던 상태였음에도 말이다.


이미 도박의 대가는 처절했지만 이 번엔 마음 깊은 곳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이러다 정말 내 인생이 여기서 끝날 수도 있겠다”는 공포.

그 순간도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 아니라, 내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이기적인 두려움이었다.

그때가 내 인생의 ‘바닥’이었다.



누군가에게 "바닥치기"는 자살 미수일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부모와 자식의 연이 끊어지는 날일 수도 있다. 형태는 다르지만 공통점은 하나다.


‘다시 도박을 하면,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올 기회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


사람은 영적인 동물이라 같은 말을 해도 다르게 느껴진다.


“이제부터 단도박을 하겠습니다.”


이 말이 입에서 나올 때, 중독자의 표정과 말투에는 진심이 묻어난다. 지금 이 사람이 정말 단도박의 첫 단계라 불리는 ‘인정’의 문턱에 서 있는지, 아니면 여전히 계산 중인지를 말이다.


나는 도박 중독자임을 시인합니다.


이 고백은 결심이 아니라 포기다.

도박 앞에서 나는 무력하며, 더 이상 혼자 힘으로는 이길 수 없고, 단도박을 유지할 힘조차 없다는 인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포기의 순간이 되어야 비로소 회복의 여정은 시작된다.

단도박은 강한 의지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완전히 내려놓았을 때, 그때서야 길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