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도박의 시작 : 포기단계
살면서 나는 내 능력을 과대평가해 왔다.
공부한 것보다 성적이 괜찮게 나오면 ‘나는 머리가 좋은가 봐’라고 생각했고,
연애엔 젬병인 내가 지금의 아내를 만난 걸 보면 ‘여자 보는 눈은 있나 봐’라는 식이었다.
문제는 이런 착각이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심사숙고해야 할 시간을 짧게 만들었다는 데 있다.
지금껏 그랬듯 내 인생은 어떻게든 잘 풀릴 거라는, 근거 없는 낙관에 기대어 살아온 것이다.
포기하지 마라.
어떤 경우에도 희망을 가져라.
나는 이 말을 삶의 신조처럼 붙들고 살았다.
하지만 세상에 어떤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다른 모든 좋은 것을 얻겠다는 생각은, 도둑놈 심보에 가깝다. 정확히 말하면 무식함의 발로다.
굳이 ‘기회비용’이라는 어려운 말을 꺼내지 않더라도,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은 결국 다른 하나를 선택하지 않는다는 뜻이니까.
이렇게 추상적이고 두루뭉술한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 이유는,
도박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며 — 나 역시 5년 동안 그랬듯 —
이 단순한 진실을 깨닫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도박을 하면 결과는 둘 중 하나다. 잃거나, 따거나.
문제는 땄을 때다.
더 따고 싶어 계속 베팅하게 된다. 설령 승률이 51퍼센트로 기울어 있다 해도, 도박장의 수수료는 늘 간과된다.
도박자의 심리, 도박장의 구조, 수수료, 먹튀….
여러 이유로 결국 패배를 맛보게 되는데, 그때 “내가 졌다”라고 인정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대부분은 이렇게 말한다.
“계산 잘해서 하면 이길 수 있어.”
“이제껏 졌으니 이번엔 꼭 이길 거야.”
희망회로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돈이 다 떨어져도 또 다른 희망을 찾아낸다.
대출이 있다.
친한 친구가 있다.
부모님은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마지막 밧줄을 기어코 찾아낸다.
그리고 끝내, 더 이상 돈을 구할 곳이 없어졌을 때에야
“내가 미쳤었구나. 이제 죽음 말고는 해결책이 없는 것 같아.”
라며 자포자기한다.
그때는 이미 늦었다.
본인은 물론, 가족 모두가 병에 걸린 뒤다.
중독이라는 병, 그리고 중독자의 가족병에.
상식과는 다르게,
도박에서만큼은 포기하는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다.
일찍 포기할수록 정상적이고 평온한 일상이 보상처럼 따라온다.
하지만 편안하고 일상적인 삶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이 말과 논리가 그저 소귀에 경 읽기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