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그림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학창 시절부터 사진에 미쳐 10여 년 이상 카메라를 둘러메고 동네 골목을 헤집고, 산으로 계곡으로 풍경을 찍으러 다녔다. 2천 년에 디지털카메라가 나오지 않았다면 나의 광적 집착은 꽤 오래 더 갔을 것이다. 당시 칼라 필름을 사용할 때지만 흑백의 묘미에 빠져 인화까지 직접 하며 즐거움을 누렸다.
나는 어느 것에 한번 관심을 가지면 집착이라고 할 정도로 집중하는 편이다. 그림도 그렇다. 그 후 갤러리를 방문하고 미술관을 다니면서 그림에 빠져들었다. 사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나 스스로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듣고 보고하는 것이다.
직접 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큰 행운이었다. 아니 새로운 세계를 보는 듯한 그런 인상을 받았다. 학창 시절 동안 보고 배운 것의 대부분이 서양미술에 집중되어 명화를 보았기 때문에 그림은 더 새로웠는지도 모르겠다.
사진 뷰를 통해 보았던 느낌과 작가의 생각을 통해 걸러진 풍경은 같으면서 전혀 다른 느낌이다. 화가의 작품을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춘천 근화동 일몰, 20210925
시험을 보기 위해 그림의 역사와 작가를 외워야 했던 괴로움이 아니라 재미다.
“미술 시간의 추억으로 남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만들었던 군함 모형. 아마도 소나무를 깎아 배 몸체를 만들고 옥수수 대공을 잘라 함포와 구조물을 만들어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던 것 같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던가에는 여성잡지를 오려 붙여 모자이크로 스핑크스를 만들어 유일하게 A 학점을 받았던 일.”
그때는 정말 며칠간 밤을 새우며 밥 굶어가며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조몰락 거리는 일에 대한 재미가 지금의 그림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스스로는 미적 감각이나 소질이 없다는 것을 이미 깨달았지만, 그림을 보고 즐기는 일에 대한 흥미는 점점 더 커가니 분명 그러한 것이다.
그림을 보고 감상 글을 쓰고 작가와 대화를 통해 좀 더 깊이 작품을 알아가는 시간들이 즐겁다. 그것이 현재 그림을 사랑하게 만드는 유혹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