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이나 갤러리, 아트페어 등을 방문하거나 그림을 보면서는 마음의 부담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그림을 즐기게 된다.
그림에 대한 거창한 해석을 할 필요가 없다. 작품의 해석은 평론의 몫이다. 평론은 냉철하게 바라보고 때로는 작품에 금칠을 하고 작은 허물을 잡아 크게 만들어야 하는 역할을 자처하기에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일반 대중이 그림을 바라볼 때는 그냥 당당하게 자신의 시간으로 바라보면 된다.
“재미있다.
뭐 이래. 나도 그리겠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이것도 그림이야?” 이 모든 것이 관객의 시선이다.
관객은 그렇게 작품을 바라보고 마음으로 느끼고 말로 표현하면 된다. 작가를 의식할 필요도 이 그림이 비싸고 유명하고를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타인의 눈을 의식한 감상을 하는 순간 나는 그림을 좋아서 보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 보고 있는 것이다. 모나리자의 그림 앞에서 미소가 예쁘니 뭐니 할 필요가 없다. 그냥 마음에 안 들면 옆에 있는 사람의 미소가 더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는 당당하게 그림에 다가가 감상하는 용기를 가지자. 아무 곳에서나 자신의 마음으로 시각으로 그림을 보고 감상의 기분을 즐겨라. 누군가 이야기한 색감이니 구도니 어느 작가의 그림이니 하는 것은 잊어라. 그것이 자신의 건강에도 좋다. 체면치레의 작품 감상은 자신의 마음만 아프고 서럽게 만든다.
그동안 허물을 뒤집어쓰고 바라보던 환상을 버리고 나면 더 많은 그림이 보일 것이다. 작가의 이름을 버리고 보고, 유화니 한국 화니 판화니 하는 것을 버리고, 몇 천억이니 몇 십만 원이니 하는 가격을 잊으면 진정 행복한 그림이 눈앞에 있을 것이다.
언제나 쓰고 있던 두꺼운 색안경을 벗어던지고 자신의 눈으로 작품을 바라보자. 내가 좋아하는 작품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보일 것이다. 그림은 내가 행복하기 위해 보는 것이다. 남과 나누는 행복이 아니다. 오직 자신만의 존재를 위해 이 그림이 태어났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진정 좋아하는 작품일 것이다.
수많은 작품 속에 갇혀 있으면서도 어느 것이 좋은 작품인지 알 수 없는 것은 작품의 허상에 가려진 안개를 걷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뜻한 햇살이 비칠 수 있도록 창문을 환히 열어 놓아야 한다.
내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놓자. 좀 더 당당해질 수 있도록. 당당해질수록 스스로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훌륭한 작품을 만날 확률이 높아진다. 좋은 작품을 보는 눈이란 자신만의 철학이 있을 때 가능하다. 우리 모두 작품 앞에서 당당하고 담대해지자.
* 한국미술재단 아트버스 카프 ArtVerse KAF 2022.4월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