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우표, 마티스>
명화 감상,
어느 곳의 미술관이든 실내에 들어서면 압도적으로 위압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 대부분 넓은 공간의 높은 천장이다. 평소에는 느끼지 못하는 넓은 공간에 걸려있는 작품은 고개를 들어 쳐다보아야 하기도 하고 한쪽 벽면에 걸려있는 작품의 수가 너무 많아 무엇을 먼저 보아야 할지 고민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배치는 때로 큰 벽면에 한두 작품만 걸어 놓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곤 한다. 바로 선택의 폭을 인위적으로 좁혀 놓아 내가 판단하기보다는 전시자의 요구 때문에 나는 강제로 그것만 보았다는 심리적 보상? 일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그림 중 어느 것이 맘에 들고 어느 것은 그냥 그런 것인지도 결국은 그날의 심적 변화에 맡긴다. 때로 거대한 명화를 보면서 디테일한 것까지 흩어 보기도 하고, 때로는 소품을 보면서 너무 세밀한 작업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무의미한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러나 결국 어쩌면 미술관에서 본 많은 그림은 많은 그림들은 결국 어느 것도 남아 있지 않고 다시금 책을 보던가 인터넷을 통해 다시 자료를 보았을 때에야 선명하게 다시 다가온다는 것이다.
내가 미술관에서 본 작품 중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오래전 프랑스 니스의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있는 마티스 미술관에서 본 원색의 여인이 앉아 있는 작품이었다. 간결하지만 원색을 통해 너무나 강렬한 선을 남겨 놓았다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 순간 종이 오리기를 통해 붙여 놓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림을 본 이후 여러 작품을 더 보았지만, 그보다 더 강렬하게 머리에 새겨진 그림은 없었다. 나는 그 이유를 아직도 모른다.
또 일본 우에노 공원에 있는 미술관을 방문했을 당시, 어두침침하게 조명을 밝힌 미술관의 분위기에 너무나 숙연하게 그림들을 볼 수밖에 없었던 기억도 그 미술관을 기억하게 만들고 작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작품을 위해 최소한의 빛만으로 감상하게 하겠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처음 들어갔을 때 꼭 원시 동굴에 들어온 듯한 적응시간이 필요했던 미술관 관람은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미술관은 그런 것 같다. 수많은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비교하기도 하고 그 독특함을 즐기는 공간이다.
그러면서 명화란 이래서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남아 있는 것인가 하는 그런 것.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는 것,
무언가 그렇다고 믿게 만드는 것,
시간이 흘러서 명화가 아니라 누군가를 자극하고 그 자극이 사회에 영향을 미칠 때 명화는 그렇게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미술관에서 본 어느 작품이 그때는 의미 없었을지라도 어느 순간 모두가 알고 있는 작품이었다면 더 강하게 다가오는 그것은 군중심리와 다름이 없다. 나에게 명화는 결국 그 당시 어떤 감동, 의미를 주었는가. 남겼는 가다.
202104 블로그 글 수정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