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흐르는물 Jun 04. 2022

소양강 수몰지역 위 화실, 김차섭&김명희 작가

평화 공간

         

김차섭&김명희 작가님 작업공간은 춘천시 북산면 내평리 옛 초등학교 폐교 시설입니다. 전화를 드리고 방문을 드렸더니 흔쾌히 시간을 내주셨습니다. 공간은 수풀로 가득해서 풀 속을 헤쳐 건물로 들어가는 듯한데, 언덕 위 높은 곳에 건물이 위치해 있네요. 건물 앞에 두 분이 미리 나와 계셨습니다. 가파른 계단을 가로질러 올라가니 반갑게 맞아 주십니다.     


이런 오지(?)에 화가 부부가 있다는 이야기가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이상하기도 했지만, 학교 위치를 보니 이해할 만도 했습니다. 주변에 10여 가구가 있지만, 건물은 도로변에서는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었던 같아요.    

옛 폐교 건물은 오래된 건물답게 옛 스러움이 느껴지는 공간으로 실내는 옛 모습이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어 삐걱대는 마룻바닥 정취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춘천시내에서 이곳까지는 자동차로 1시간 거리입니다. 두 분은 소양댐 수몰지역인 내평 국민 학교터에 자리 잡은 지 30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마을이 수몰되면서 사람이 떠나고 학교가 폐교된 곳, 길도 제대로 없는 오지마을 폐교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엔 참 어려운 선택이었을 텐데 결심이 대단하셨네요.   

화가는 뜨거워야 한다는 말? 에 휴전선이 가까운 강원도 여러 지역 폐교를 찾다가 우연히 이곳을 발견하고 당시에는 민간인 출입조차 어려웠던 폐교에 자리를 잡았다고 합니다. 요즘도 미국을 오가며 여름이면 이곳을 지키고 계시는데 80이 넘은 백전노장의 강인한 의지와 열정이 느껴집니다.     


폐교 3칸 교실은 한 칸을 생활공간으로 사용하고 두 칸은 각자 작업 공간으로 활용하고 계시네요. 작업 공간에는 그간의 작품들과 현재 진행 중 작품들이 조화를 이루며 역사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현장을 보여주고 있어요. 일종의 박물관 느낌이 드는 공간 같았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세계지도였는데요. 거실 같은 생활공간에 벽면을 가득 채운 지도 위에 대한민국을 표시한 커다란 표시(?)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세계 중심은 우리라는 깊은 의식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이곳에 처음 자리 잡은 후, 모 방송국에서 폐교 활용 방안에 대한 취재를 하여 방영을 하였는데, 우리나라도 인구가 줄어들면서 폐교활용이 문제가 될 것을 예상해 그 활용 가능성을 작가들이 활용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리려는 의도였다고 하네요. 두 분께서 외국 폐교활용 사례를 보고 이곳에 정착했듯이 지금은 많은 곳의 폐교가 다양한 문화예술 공간으로 활용되어 정착되어가는 단계라고 할 수 있지요. 앞서간 선각자셨어요.  

   

그러나 두 분께서는 황당한 일을 겪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는데요. 폐교를 활용한 화가 성공스토리가 전국 방송을 타고나서 도둑이 들어 작품을 도난당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오지에 누가 훔쳐갈까 했는데 그런 일을 당했다고 하네요. 지금은 물론 보안장치가 잘 되어 있지요.     


그동안 이곳에서 자리 잡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는데 30년을 한결같이 이곳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두 분의 창작 열정과 작품 사랑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겠지요. 처음엔 마을 사람들과 화합을 위해 동네 사람들의 3시간씩 걸리는 시내 나들이를 자기 차량에 태워서 집까지 데려다 주기도 했다고 하니 주변 주민들과도 사이가 좋으신 거지요.     


요즘은 이곳에 미술관을 지어 그동안 창작하신 두 분의 작품을 전시하고 오랫동안 모아 온 기왓장 등 문화유물도 보여주고 싶다고 합니다. 자금여건상 어려움이 있지만 시간을 가지고 꾸준히 추진해 보시겠다고 합니다. 행정에서도 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차섭 (Tchah sup)작가님 작품 이야기를 들으니 우리 민족에 대한 자부심과 역사에 대한 이해 그리고 우리들이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 의식에 대한 생각이 확고합니다. 그것을 작품 속에 녹여내기 위해 애쓰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말씀하시는 순간순간 눈빛과 행동이 그것을 증명해 주시더군요.    

 

작가 그림 속 무덤인 말무덤과 마상배(馬上杯-말 위에서 술을 마실 때 쓰던 잔)를 쥔 손 그림은 강인한 우리 기마민족을 상징하고 그 기상을 일깨우는 의미를 담은 작품 같았습니다. 말과 마상배가 같이 있는 그림은 말이 쓰러졌다가 일어서는 모습으로 넘어져도 일어서는 불굴의 민족혼을 이야기한다고 하네요.     


또 세계지도를 거꾸로 그려 지금 세상이 서구인들 자기중심에 의해 만들어진 하나의 조형일 뿐이라는 것, 그것은 어느 날 미국에서 중국에서 만든 나침판을 보면서 얻은 지식이자 깨달음이라고 하는데요. 그가 본 나침판 위에 동자상이 손으로 가리키는 곳에는 북(北)이 아닌 남(南)이라고 쓰여 있었답니다.


지금의 나침판이 북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은 예전 서양에서 항해 중 북극성이 유일하게 움직이지 않으니 그것을 목표로 해서 항해를 했고 그래서 북이 중심이 되었지만, 그 이전에는 남이 중심이었다는 것을 예전 나침판이 증명하는 것이라고 하네요. 이런 이야기는 신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재미있는 작품 속 이야기와 연결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어쩌면 우리가 한반도라는 이름으로 대륙으로 나가는 길이 막혔다는 표현조차도 잘못된 것이 아닐까요. 바다라는 커다란 공간을 생각하지 않고 육지에 얽매여 있는 사고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재 세계지도를 거꾸로 보면 드넓은 대양이 펼쳐져 있다는 것을 금방 알지요. 그렇지만 우리는 한반도 반쪽 지도를 놓고 호랑이를 닮았네, 토끼를 닮았네 하는 말로 국토를 좁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벽에 걸려 있는 교복을 입은 자화상 배경엔 우리 현실을 일깨우기 위한 미국과 구소련 독수리가 얼룩 사슴을 공격하여 뜯어먹는 모습인데 약육강식의 혼란 속에 우리가 처한 현실을 보여주기도 했고요. 손에 든 도자기는 우리 혼, 역사를 상징한다고 하네요. 강한 틈바구니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강인한 정신이 느껴집니다. 자화상의 굳게 다문 입술을 통해 그 강인함을 읽을 수 있겠습니다.     


또 하나 재미있는 작품은 그들 생각과 이민자로서 미국 땅에서 억압받는 이민족들 입장을 표현하기 위해 문장을 바꾸어 다른 뜻으로 해석한 작품입니다. 미국 생활 중 자주 가던 커피숍의 종이컵에는 로마 신화시대 그림과 글자가 인쇄되어 있었다. 거기에 쓰여 있는 문구(It's our pleasure to serve you)를 (It's our pleasure to torture you)로 바꾸어서 작품으로 만들었다고 하네요. -"당신에게 이것을 제공할 수 있어 기쁩니다"를 "우리는 당신께 고통을 줄 수 있어 기쁩니다." -     


전시장에 찾아온 어느 분(그분은 한국전쟁에 참전하기도 한 참전용사로 한국을 사랑하는 분이었다고)이 그랬다는군요. 우리는 당신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데 당신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몰랐다. 그런 것 같습니다. 내 이익(좋은 것들)이 남에게는 반갑지 않은 불편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지요. 특히 이국에서 생활은 항상 불편하고 약자일 수밖에 없는 슬픔을 지닐 수밖에 없겠지요.     


그리고는 매일 일기를 쓰듯 커피를 마신 후 그 컵에 하루 일상을 그림으로 남기는 그림일기를 쓰고 계신다고 하네요. 정말 멋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일상 속에서 그것을 나를 자각하게 하는 또 다른 수단으로 활용할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요. 범상치 않은 작가만의 생각, 다르게 볼 수 있는 사고능력이기에 가능하겠지요.

    

회화 작품과 판화를 같이 하시는 작가는 처음엔 회화만 했는데 사석원 작가님 소개로 어느 날 판화를 하여 전시에 출품하게 되고 첫 전시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고 합니다. 독일에서 가져온 프레스기도 그대로 있고 동판도 있는 것을 보니 에칭을 굉장히 좋아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회화 작업을 하시는 김명희 작가님 방은 깔끔하게 정돈된 아련한 추억이 스며드는 공간이었습니다. 김차섭 작가님과 부부이시지만 작품 세계는 전혀 다르게 나아가는 듯합니다. 화실에는 부친이 젊었을 때 사진과 모자가 걸려있어 애틋한 연민의 정을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부친께서도 그림을 좋아하신 컬렉터였다고 하십니다.  


외국생활 중에는 남편을 위해 직장 일하다 이곳에 자리 잡으면서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하셨다고 하네요. 우리나라도 여성작가분들이 많이 계셨지만 남자들에 비해 제대로 알려진 분들이 많지 없지요. 그런 면에서 본다면 김명희 작가도 우리 미술계의 한 획을 담당하고 있는 여성 원로 작가시지요. 앞으로도 누구의 가족이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미술계에 남아있기를 기대합니다. 우리가 발굴하고 기록하여야 할 의무이기도 하겠지요.


녹색의 옛 칠판 위에 작업을 하는 김 작가님은 주로 사람들 모습과 풍경을 많이 그리시는데요. 대부분 추억 가득한 작품이 마음을 심쿵하게 만듭니다. 모네 그림을 연상하게 만드는 연못 그림은 바로 작업 공간 옆에 있는 작은 연못 풍경인데요 실제 공간을 옮겨다 놓은 듯 자연의 풍성함이 느껴지는 그림입니다. 큰 나무가 연못에 비치고 바람에 부러진 나뭇가지가 연못에 담겨있는 그것은 살아있는 생명체였습니다.     


풍경화와 인물에서도 금방이라도 옆에서 말을 걸어올 듯 한 느낌이 드는 작품이 주는 정서적 안정성 같은 것이 있습니다. 인도에서 만났다는 아이 얼굴, 그리고 이 학교에 다니고 마을에 살았을 아이들을 추억하며 그렸다는 잠자리채를 든 남녀 아이는 정말 행복하고 다정해 보이는 모습입니다. 사람의 눈이 많은 것을 표현한다고 하지요. 그런 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표정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그냥 몸으로 느끼는 것이지요. 아마도 작가가 떠올리는 귀여운 아이들의 이미지와 상상이 만들어낸 모습이 작품으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요.


그런 마음은 작가 말에서도 느껴지네요. 가족을 사랑하고 그림을 사랑하고.... 처음 미국으로 가서는 생활조차도 어려운 여건 속에도 각자 역할에 충실하며 오직 그림만을 위한 일에 매진하고 그리고 결국은 수년만에 자리를 잡아 나중에는 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는, 그것은 승부욕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남다른 의지가 자신만의 색을 찾게 한 것 같습니다.    


다른 작가분들과 다른 것 중 하나가 작품 제작을 칠판에 한다는 것이 특이하지요. 크고 작은 칠판에 그려진 모습이 색다르고 뭉클하게 다가옵니다. 칠판에 그린 아이들의 표정이 살아있습니다. 유화나 수묵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습니다. 파스텔이 주는 푸근한 색감이  분위기를 더 자연스럽게 만들어 주는 듯합니다. 학교 칠판이라는 추억의 한 사물이 전혀 다른 용도로도 사용될 수 있구나 하는 점에서 작가의 상상력은 어디까지 일까 한 번 더 생각하게 합니다.    

 

김차섭 선생님께서 마지막으로 꼭 보여주시겠다고 내놓으신 것이 있으십니다. 운철과 은으로 만든 마상배(馬上杯), 그리고 만리장성에서 얻었다는 기와 한 조각입니다. 이런 것에서 느껴지듯이 두 분 마음속엔 우리 민족의 웅대한 기상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그것을 끝없이 작업으로 표현하려는 의지가 느껴집니다. 휴전선은 만리장성 연장선이라는 의미? 있는 말, 그리고 시간이 흐르더라도 미술관을 건립하겠다는 말씀에서 작가로서 또, 역사의 한 자락을 잡고 오신 원로 예술인으로서 역할과 의지가 담대함을 보았습니다. 감사한 만남, 오후 시간이었습니다.



*20210903 오후, 두 분을 내평리 작업실에서 만난 후 시내로 나오는 길에 승용차 안에서 끄적여 본다.


*

https://naver.me/x4aswDTb

http://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1198385&fbclid=IwAR1uvWyabNhu9E-tFV7LAB1ZhPziE1Xwfp9rI-D4QHliBrkWJNtt31MLapc



매거진의 이전글 어른이 되어 버린 아이, 송지은 작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