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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물 Jun 13. 2023

관계의 틀을 벗어야 앞으로 간다.

자유로움 속에 발전이 있다.

1.  

두 사람만 있어도 모임을 만든다고 각종 모임과 단체가 많다. 사회생활을 하며 서너 개의 모임을 갖는 것은 기본일 것이다. 비슷한 모임이 몇 개씩 있어 차이가 무엇인지 구분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 소위 세력을 구성하는 것이다. 작가들도 자신들의 입지를 키우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모임을 결성하고 활동하며 때로는 시대의 주류로 인정받았다.

 

언젠가 원로화가 중 한 분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자신은 각종 전시회나 단체의 책임을 맡지 않으려 한다. 감투를 쓰고 각종 이권에 개입하며 자신의 작품이나 팔려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아귀다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가가 작품을 하지 않고 정치를 하는 순간 작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단체 활동을 시작하는 순간 자신이 작품 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란다.  또, 자신은 화랑에 작품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화랑에 예속되기 때문이란다. 오직 작품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보인다는 것이다. 결국 타협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후배 작가들에게 쓴소리도 잘하고 마음이 맞지 않는 일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리고는 오직 작품에 매달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화실에서 작업한다. 작가는 오직 작품으로 경쟁해야 하며 매일같이 작업하지 않으면 화가가 아니란다. 그런 의지와 실천으로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낸다.      


현실적으로 보면 이런 작가는 제도권 내에서는 비껴가 있는 비주류일 뿐이다. 어쩌면 끼워주지 않아 왕따 된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선, 후배 작가들과 교류를 통해 그 나름의 단단한 인맥을 형성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다만 그 인맥을 활용해 자기 세력화를 하지 않고 자기중심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가는 언제가 자신의 작품이 세상에 드러날 것이라고 말한다. 작가가 감투를 탐하고 끼리끼리 문화를 만들어 서로만의 리그를 한다면, 최종에는 그 틀에 갇혀 작가로서 가치를 잃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진정한 작가는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이지만, 어디서 답을 찾을지는 모르겠다. 시대에 따라 작가는 권력과 돈의 힘이라는 논리에 순응하고 반발하기도 했지만, 결국 후대에 남아있는 것은 작품이라는 것이다. 오늘 이 시대의 작가들도 시간이 흐른 후 작품으로 그 결과를 평가받을 것이다. 어느 것이 옳고 그른지는 후대의 관점일 뿐이다.     


지금도 어느 단체나 모임을 만들지 않고 각자의 작업을 하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작품을 알리고 있는 작가들이 의의로 많다. 그런 점에서 과거나 현재에 있어서도 어느 것이 옳고 그르고 라는 관점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자신의 생각과 방식대로 자신의 작품을 꾸준히 하는 이들이 존경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2.

지역, 학연, 사상 등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진 예술 단체가 활동한다. 같은 분야의 단체도 몇 개씩 만들어져 대표성을 이야기한다. 단체가 만들어지는 것은 좋은 현상이나 폐쇄적인 행태는 이기주의 집단을 형성한다. 때로 스스로 자신의 분야를 발전시키려는 목적보다는 정부나 지역 이권에 개입하여 금전적 이익을 얻는 목적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더해지면 지역사회에 다른 인물이 진입하는 장벽을 세우게 되고 발전과는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끼리끼리의 집단성만 키워서 자기만의 이익이나 주변을 자신의 손아귀에 쥐고 흔들려는 몽상에 빠진다. 지역 문화예술 행사에 전국단위의 예술인 초청이나 신인들의 참여를 저해하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도 바로 이런 이기적인 지역주의 집단 패거리 의식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더 나은 것은 받아들이고 지역 주민들에게도 더 좋은 문화예술을 소개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 변화가 필요하다. 그들만의 리그를 위해 활동하는 단체는 의미가 없다. 지역의 크고 작은 전시회, 아트페어, 문화행사에 지역작가와 아울러 타 지역 예술인의 참여를 의무 비율로 정하여 좀 더 다양한 작품을 관람하게 해 줄 필요가 있다. 지역 주민들을 언제까지 편중된 문화예술만 접하도록 할 것인가. 스스로 안 된다면 행정에서 지역사회에서 그런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 지역에서 전시회, 축제 등이 열리는 것이 얼마나 되는가. 그만큼 주민들이 문화 예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대도시에 비해 훨씬 적다는 것이다.    


전국 단위 또는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지역에서 관람하고 지역의 예술인들에게도 자극과 기폭제가 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진정한 자기 예술을 위해 노력하는 작가들이 더 주목되도록 해주어야 한다. 폐쇄성을 벗어나 지역 예술인의 작품 수준이 상향될 때 지역의 문화예술도 한층 더 발전을 거듭할 수 있다.

개인의 발전, 동질성을 통해 변화를 추구하는 모습을 보일 때 지금의 단체도 후대에 기록될 것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예술단체가 활동했지만 이름 없이 사라지고 연속성을 유지하는 이름은 얼마나 되는가. 조직은 변화와 발전을 이루기 위해 구성되고 해체되는 것이다.



3.

장벽을 만들지 말자. 폐쇄된 공간은 홀로 남는다. 이기주의를 없애자. 내 지역 선후배 친인척 등은 삶의 인연이다. 그 인연을 통해 더 많은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사회다. 하나의 틀에 갇혀 다른 이들과 관계가 느슨해지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 동양, 서양, 백인, 흑인 하면서 자신의 우월감을 내세우고 편협된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알고 있지 않은가. 과거 힘을 앞세워 유린하던 행태가 편 가르기 아닌가. 그런 습성이 남아 있어 하나의 울타리를 만들고 울타리 밖의 존재를 배척하는 행태를 가지고 있다. 자신도 그 울타리를 벗어나면 똑같은 처지에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얼마 전 문화예술을 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나온 이야기가 있다. 어느 기관 공모에 참가했는데 그 지역 출신이 아니어서 안되었다는 듯한 뉘앙스였다. 지역의 행사는 그 지역 출신이 해야지 왜 관계없는 외지인이 와서 하려 하느냐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는 후문이다. 진실과 거짓을 떠나 아직도 편 가르기를 하고 그것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려 하는 이들이 있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컸다. 지역 발전을 위해서는 지역에 있는 사람들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다양한 경험과 좋은 것을 받아들여야 더 발전할 것이 아닌가. 지역 출신이라는 명분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주민을 위한 것인가? 논리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


소위 끼리끼리 문화는 위험하다. 좁은 테두리 안에서 서로 격려하며 잘했다고 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외부로부터의 유입을 막는다면 더 이상 커 갈 수 있는 여지는 줄어든다. 문화예술 부문도 이런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역 예술인을 위한다는 명분이지만 결국은 경쟁력을 상실하게 만든다.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세계 속에서 나를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한 시점이다. 넓은 곳에서는 경쟁할 필요가 없다. 좁은 공간이기에 서로 비교하고 경쟁의식을 보인다. 더 넓은 곳을 바라보자. 예술의 턱을 없앨 때 우리는 더 넓은 공간으로 나갈 수 있다.



 * 20161214 글 수정 옮김

* 대문사진; 신동권 화백 작업실에서 물감이 굳어진 모양, 20230610

  - 두터운 물감을 껍질벗기듯 들어내자 다양한 색이 보인다. 처음 겉면은 마지막 단색뿐이었는데 밑면을 들춰내니 그동안 쌓여온 물감층이 드러났다. 이면의 화려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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