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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물 Dec 06. 2022

기록화, 권력자의 향유 그리고 관객

합스부르크 왕가 소장품


마리아 크리스티나 대공의 약혼 축하연, 요한 카를 아우어바흐, 1773년,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20221128 사진)


Banquet to Celebrate the Engagement of Archduchess Maria Christina, Johann Carl Auerbach, 1773, oil


위 작품은 1766년 4월 2일 오스트리아 빈의 호프부르크 왕궁 레오폴트관에서 열린 마리아 크리스티나 대공과 작센 공작 알베르트의 약혼 축하연 장면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빈 미술사 박물관 특별전(2022.10.23~2023.3.1)으로 열린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에 전시되었다. 가로 1.9m, 세로 2.3m의 커다란 기록화로 600여 년간 유럽을 호령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많은 전시작품 중 유난히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빽빽하게 들어찬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하여 이야기를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이 화려한 작품을 보면 좀 특이하게 보이는 것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축하하는 자리인데 황실 가족만 음식 앞에 앉아 있고 초대손님은 공간 가득하게 서성이고 있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바로 ㄷ자 모양의 식탁 뒤로 어울리지 않는 검은 휘장이 쳐져있다. 모든 것이 황금으로 빛나는 곳에 검은 휘장이라니 아이러니하다.


작품 속 화면은 황실 전체와 초대받은 귀족들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공간 밀집도로 본다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도 답답해 보이지 않는 것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구도로 건물의 높은 천장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배치를 보면 식탁을 중심으로 빙 둘러싼 모습을 하고 있다. 정중앙에는 요제프 2세(크리스티나 오빠) 황제 부부가 앉았고, 축하연 당사자인 크리스티나 대공과 작센의 알베르트 공작이 황제의 오른쪽(그림 왼쪽)앉아있다. 좌우에 왕위 계승 순위에 따라 7명의 남녀 대공들이 앉았고 왼쪽 맨 끝에는 작센의 클레멘스 왕자가 앉아있다. 얼마나 화려하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왼쪽 아래에는 악사와 가수가 노래를 부르며 흥을 북돋우고 있다. 오른쪽 아래부터 중앙 식탁까지는 음식을 나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끊임없이 음식이 조달되고 있는 모습이다. 이 음식을 나르는 사람들은 시종이 아니라 귀중족에서 특별히 선발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당시에는 황실의 행사에서 황실 가족들은 공개적으로 식사를 했다고 한다. 여기도 황실 가족만 앉을 수 있는 식탁이 마련된 것이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이 식탁에는 총 76종의 음식이 나왔다고 한다. 오스트리아 빈 궁정(18세기)에서 주로 즐기던 음식은 송아지 슈튜, 양고기, 구운 닭과 거위, 푸른 송어, 샐러드, 레몬 케이크, 애플 크럼블 등이었다고 한다. 사용하던 식기 또한 순금으로 제작된 것이다.


그림 속에 테레지아 여왕 모습이 없는 것은 5개월 전 세상을 떠난 남편 프란츠 1세 황제의 애도 기간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회장 중앙의 검은 휘장도 황제의 애도 기간이기 때문에 설치된 것이라 한다. 마음속 애도는 하면서 화려한 복장에 화려한 연회를 진행하는 모습에서 당시 황실의 문화를 엿볼 수 있다. 


그림 전체적으로 배치된 인물을 보면 초대받은 사람들은 줄지어 나란히 서서 식사하는 장면을 바라보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맨 아래쪽과 중앙 탁자 부분을 보면 이 홀은 무대장치처럼 단상으로 만들어져 있는 듯하다. 황족이 앉은 중앙 식탁이 주변보다 높게 설계되어서 전체적으로 앉아 있는 사람들과 서있는 사람들의 높이가 비슷해 보이게 만들었다. 중앙 아래쪽에는 화려한 의상을 입은 여성이 계단을 올라가는 자세를 취하고 있고, 옆의 검은 옷을 입은 여성은 위쪽의 남성에게 팔을 잡혀 끌어올려지는 모양을 하고 있다. 또 중앙 테이블 끝자락에서 음식을 나르는 사람은 한 발을 계단 아래에 내려놓고 음식 접시를 받아 드는 모양새에서 추측할 수 있다.


이런 기록화가 있음으로 해서 우리는 수많은 세월의 흐름에도 당시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특별전과 함께 바로 옆 전시관에서도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이다. 왕실의 중요 의식과 행사를 그림과 글로 기록해 놓은 것이다. 그 일부분을 보면서 기록물의 가치를 생각해 본다.

* 의궤는 왕실의 결혼식과 장례식 같은 국가의 중요한 의식과 행사나 여러 가지 사업 등에 관한 내용을 그림과 글로 기록해 놓은 책이다. 후손들이 행사를 치를 때 참고할 수 있도록 차례와 방법 등을 자세히 남겨 놓았다.  



특별전 포스터



* 국립중앙박물관, 빈 미술사 박물관 특별전(2022.10.23~2023.3.1)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을 관람 후

* 20221129일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전시 자료(사진, 글)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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