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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물 Sep 12. 2024

아무 데도 없는 나라, 황효창 작가

개나리미술관, 2024.9.6~28

효창 작가의 작품 속 주인공은 자신이자 피에로다. 작가는 인형을 매개체로 하여 세상의 슬픔과 아픔, 기쁨과 사랑 등 희로애락을 표현한다. 작품 속 피에로의 눈동자는 관객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언제나 먼 곳을 바라보듯 다른 곳을 향한다. 마음을 읽힐지 두렵기 때문이다. 시대의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그의 작품 속에는 사회에 대한 비판과 애정이 녹아있다. 때로는 직접적으로 때로는 이상향을 그리듯 세상을 묘사한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그동안 표현했던 작품의 일부 중 자화상과 춘천의 이미지 등이 과거 작품과 함께 올해 작업한 작품 일부를 전시했다. 그중 춘천의 밤 풍경인 소양 2교와 봉의산은 도시의 상징이다. 그 상징성을 통해 작가는 상상과 현실 속의 아름다움을 그려냈다. 


봉의산은 녹음 짙어지는 봄 풍경이다. 새가 날고 사람들이 날아다닌다. 맑은 호수와 푸른 산의 기운이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나타난다. 자연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미 자연의 일부가 되었고 봉의산은 사람들을 품고 기다려주는 둥지가 되었다. 춘천의 상징인 봉의산은 소양강이 감싸고 흐르는 도심의 중앙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들이는 중심이다. 세월의 흔적만큼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곳이다. 작가는 그런 봉의산의 기운이 만들어내는 평화로움을 드러냈다. 


또 다른 작품인 노을 짙어가는 교회가 있는 풍경과 소양 2교의 모습은 넉넉한 공간의 풍경을 따뜻하게 드러낸다.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어 행복한 세상. 오늘도 익어가는 저녁노을 속에 가족을 만나 즐거움을 나눈다. 도시는 평화롭고 가정은 행복하다. 익어가는 노을은 그 평화의 상징이다. 누구의 간섭도 배제되는 오직 너와 나 우리 가족만의 시간, 도심은 각자의 삶을 그렇게 평화롭게 꾸며주고 있다. 이런 풍경은 작가의 춘천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다.

풍경과 다르게 작품 속 화면을 가득 채운 피에로는 세상을 향한 감정의 창이다. 피에로의 몸짓 표정 그 모든 것이 관객을 향한 대화의 시도다. 작품 속 무표정한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서 선 피에로의 삶은 과연 행복할까. 그 가면 속에 숨어있는 피에로는 과연 누구의 모습으로 살아가는가. 하나의 사회를 짚어보고 세상을 아우르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피에로는 작가 스스로가 가고자 했던 길을 가지 못한 마음속 이상향에 대한 대리자다. 피에로의 시선을 통해 세상을 보고 세상에 말을 건다. 자화상조차도 피에로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도 그와 같을 것이다.


피에로를 통해 세상과 이야기하는 작가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다. 형식과 절차 세상의 이목에 초월하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나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비판적이고 도전적이며 때로는 사랑 가득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작품을 통해 관객과 대화를 시작한다. 그의 작품은 이상향이 묻어있다. 현실 직시 적이지만 그 직설적인 것만이 아닌 그 이면의 세계에 대한 꿈을 담았다. 아픔 속에 사랑이 있고 그 사랑 속에 슬픔이 묻어 있다. 그 표현의 대상이 피에로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피에로의 초점 잃은 공허한 눈빛이나 색안경을 낀 채 세상을 바라보는 위선적인 모습에서 비판과 체념 그리고 더 분투하기를 바라는 의지의 표현이 있다. 마스크를 통해 단절된 세상에서 인류애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듯 창궐하는 코로나로 인해 인간이 감춰야 하는 것은 얼굴뿐만이 아니라 코로나를 통해 자신이 더 많은 것을 얻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경계하고 있다.


이렇듯 그의 작품은 지역에서의 삶과 세상에 대한 비판과 동조 그리고 미래의 꿈에 대한 이상향을 담아낸다. 연륜을 더해 가면서 그의 작품은 그 깊이와 넓이를 더해간다. 그 내면세계의 탐구에 대한 의지는 더욱 커질 것이다. 그의 작품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즉, 우스꽝스러운 표정의 피에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습이자 아바타일지도 모른다. 관객이 바라보는 작품을 통해 작가는 그의 속 깊은 이야기를 서슴없이 던진다. 관객은 어떻게 그 이야기를 받아들일 것인가. 그래서 그런지 그의 작품을 보면 마음 한편이 아픔으로 다가온다. 언뜻 깨닫지 못했던 그 무엇인가가 다가오는 듯한 가슴속 애림이다.


위선과 거짓, 진실을 구별하지 못하는 세상의 혼탁함을 인형이라는 매체를 통해 피에로의 모습으로 나타낸다. 소리 질러도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부여잡고 피에로의 모습으로 나의 절박함을 깨달음을 이야기한다. 그의 작품이 조금은 무겁고 쉬이 다가가기 어려운 듯이 느껴지는 감정의 기복도 내가 지닌 마음의 울림이 공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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